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필로마제야 레터

by 박영균

2026. 01. 25.



마술은 욕망을 비추는 거울


모든 마술 현상 안에는 사람들의 욕망이 담겨있습니다. 마술사들은 그러한 갈망을 공연의 형태로 해소해주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도 있죠. 사람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마술은 중력이라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를 담고있습니다. 무언가를 없애는 마술 안에는 불쾌한 것의 부재에 대한 바람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마술 안에는 유익한 것의 존재에 대한 바람이 담겨있죠.


무수히 많은 종류의 욕망이 존재하지만 그 모든 욕망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바로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고자 하는 마음'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것들을 가장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까요?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지구상의, 아니 우주 전체의 존재가 결코 피할 수 없는 아주 강력한 법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시간의 흐름'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각자의 속도는 다를 수도 있지만(고마워요 아인슈타인!) 방향은 모두 동일합니다. 누구나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죠. 먼 미래에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달라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현재까지 모든 물리학적, 수학적 증거는 '시간은 되감을 수 없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우리는 누구나 시간을 되돌리는 상상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되돌려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하는 상상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했던 모진 말을 주워담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내 인생에서 후회되는 선택을 번복할 수도 있겠죠.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어쩌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었겠죠. 그럴 수만 있었다면 지금처럼 슬픈 일을 겪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지금과 똑같은 삶을 다시 한번 살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하는 이들은 도저히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시간을 되돌린다는 소망은 단순히 물리법칙을 거스르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죠. 그건 아마도 '두 번째 기회'에 대한 우리의 바람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선택을 번복할 수 있는 기회.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 우리는 언제나 놓쳐버린 기회를 뒤돌아보며 살아간다는 반증이기도 하죠.


저 역시도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만약 시간을 되돌려 대학생 때로, 고등학생 때로 돌아간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과거로 돌아간 저는 지금과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대학 생활을 좀 더 충실하게 마무리했을 수도 있겠죠. 어쩌면 마술 동아리의 다른 부원들이 그러했듯 마술은 적당한 취미로 남긴 채 사회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마술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릅니다. 정말 제가 최선을 다한다면 어쩌면 어머니가 저를 낳았던 나이에 저 역시 어떤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과연 그렇게 다시 도착한 2026년에 '나'는 어디 있을까요? 마술을 좋아하고, 마술 모임을 좋아하는 '나'는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나와 같은 유전자를 지니고 나와 같은 몸과 얼굴을 지닌 전혀 다른 존재가 이 세상 어딘가를 살아가고 있겠죠.


우리는 우리가 내린 모든 선택의 결과물이다.


아무리 인정하기 싫어도 반드시 받아들여야만하는 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내린 모든 선택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좋은 선택뿐만이 아니라, 나쁜 선택 역시도 우리 자신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합니다. 그때 그렇게 아파하고 후회하고 불운했기 때문에 비로소 얻은 것들이 지금의 우리 안에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먼 미래, 후회로 가득찬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를 바꾸고자 했습니다. 발전된 과학기술 덕분에 그는 자유롭게 아무 제한 없이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고, 그렇게 그는 그의 인생의 모든 후회와 오점을 지울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새로운 삶을 얻게 되죠. 하지만 그렇게 얻은 두 번째 삶에서도 그에게는 여전히 후회가 남아있습니다. 이제 그는 또 다시 '세 번째 기회'를 얻기 위해 시간여행을 시도합니다. 그렇게 그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삶을 자꾸 반복해서 살게 됩니다. 다음에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과 같은 희망에 빠진 채로.


어차피 시간을 되돌리는 것은 현대 과학기술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은 마술사들이 시간을 되감는 현상을 연출하려고 애쓰는 거겠죠. 하지만 진짜 마술은 시간을 되감을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 과정 속에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사소한 선택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어쩌면 혹시 모릅니다. 먼 미래의 내가 그토록 간절하게 되돌아가고 싶었던 '과거'를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중인지도요.



당신은 과거의 어떤 기억을 되돌리고 싶으신가요?

그 기억은 지금의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필로마제야, 박영균




보너스 : 필로마제야를 위한 마술 영상


오늘의 주제는 '시간을 되감는 마술'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생각했을 때 시간을 되감는 현상을 가장 잘 표현한 두 가지 마술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하나는 이훈 마술사의 '타임트래블' 액트입니다. 시간이 돌아간다는 장면 하나로 전반부의 많은 것들이 사실은 의도되었음이 드러나는 액트죠. 어쩌면 잔뜩 실수를 하고 무대를 내려올 수밖에 없었던, 마술사라면 누구나 '되감고 싶은' 어떤 경험 덕분에 이런 명작 액트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더 매직스타 | 이훈 | 미방분 디렉터스 컷 | 쿠팡플레이 | 쿠팡


다음은 패트릭 쿤의 액트 일부에 사용되는 'TimeLine'입니다. 앞선 액트가 '마치 시간을 되감을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보여주고 있다면, 이 마술은 정말로 관객과 마술사가 함께 시간을 되돌아가게 됩니다.


Magician Manipulated FIRE and TIME | Patrick Kun




필로마제야 레터 최신호를 바로 받아보세요!

https://philomageia.stibee.com/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마술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