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마술을 합니다

필로마제야 레터

by 박영균

2026. 01. 11.


"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사람들은 마술을 단순한 속임수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술을 엔터테인먼트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술을 사회성과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주는 도구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마술을 어린 아이들이나 좋아할 법한 유치한 놀이라고 말합니다. 한 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국어사전에서는 마술이라는 단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재빠른 손놀림이나 여러 가지 장치, 속임수 따위를 써서 불가사의한 일을 하여 보임. 또는 그런 술법이나 구경거리.(표준국어대사전)" 마술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요소인 '현상', '기법', '연출'이 담긴 아주 정확한 정의입니다. 하지만 오늘 저는 마술에 대한 조금은 다른 정의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세계가 충돌하며 발생하는 스파크”


왼손으로 동전을 들고있는 마술사를 상상해봅시다. 이제 마술사는 동전을 다른 손으로 건네주는 척하면서 손기술이나 장치를 사용해 몰래 동전을 바지의 뒷주머니로 빼돌립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관객은 여전히 동전이 손 안에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마술사의 입장에서 동전은 더 이상 손 안에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마술사는 관객의 세계를 자신의 세계와 분리시킨 셈입니다. 이제 관객은 '손 안에 동전이 존재하는 세계'에 있고, 마술사는 '손 안에 동전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마치 사기꾼들이 피해자들을 교묘하게 설득해서 근거없는 믿음을 주입하는 장면과 겹쳐보입니다. 비밀스러운 기술을 사용해서 상대방에게 거짓 정보를 제공해, 자신이 있는 세계과 상대가 있는 세계를 분리시키는 거죠. 마술사와 사기꾼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부분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술사들은 그 어떤 사기꾼도 하지 않았던 선택을 기꺼이 내립니다. 바로 분리된 두 세계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지요. 위의 예시에서는, 손을 펼쳐 손이 비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 ‘손 안에 동전이 존재하는 세계’에 있던 관객은 순식간에 ’손 안에 동전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로 이끌려옵니다. 두 세계가 충돌하고 합쳐지는 순간, 관객의 마음속에는 어떤 스파크가 일어납니다. 동전이 마치 사라진 것처럼 느껴지고, 그 과정에서 관객은 혼란스럽지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것이 바로 ‘신기함’입니다.


마술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도 그러한 관점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술의 본질은 세계관의 충돌이고, 마술사의 역할은 필연적으로 관객의 세계를 뒤흔들고 이리저리 충돌시키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관객이 살아온 안정적이고 편안한 세계의 법칙은 너무 간단히 부정당하죠. 그 과정이 충분히 즐겁거나 매력적이지 않다면, 마술사는 그저 관객의 세계를 망가뜨리는 불청객일 뿐입니다.


하지만 과연 한 사람의 세계는 언제나 안정적이기만 할까요?


생각해보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의 세계는 무너지고 재구성되기를 반복해왔습니다. 갓난아기는 자신의 온 세상이었던 어머니가 자리를 비웠을 때 세계가 무너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삶은 이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더 넓은 세계 속으로 자신을 던지죠. 충분히 자란 이후에도 그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세계와 자신의 세계가 충돌하는 것을 경험합니다.


어쩌면 마술을 보며 느껴지는 신기함은 한 사람의 세계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색다른 감정과 닮아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게 됐을 때의 쾌감. 나와 비슷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여러가지 복잡한 감정.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와 만나 충돌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아름답고 복합적인 스파크인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우리가 마술을 보여주지 않아도 각자만의 방식으로 마술을 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설사 그가 단 한 번도 카드를 섞어본 적이 없더라도, 자신의 세계를 힘껏 부딪히고 스파크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어떤 의미에서는 마술적인 삶의 태도를 살아가는 사람인 셈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혜(sophia)를 사랑하는(philo) 이들의 모습을 보고 철학(philosophia)이라는 단어를 새로 만들었습니다. 충돌과 스파크로 대표되는 마술적인 삶의 태도를 사랑하는 우리의 모습을 어쩌면 누군가는 이렇게 부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정으로 마술을(mageia) 사랑하는(philo), 필로마제야(philomageia)라고요.


여러분은 오늘, 어떤 '충돌'을 겪으셨나요?

그 과정에서 어떤 '스파크'를 목격하셨나요?


필로마제야, 박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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