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술적 순간.txt

마술인의상상

by 박영균


“카드 한 벌을 준비했습니다. 52장 모두 서로 다른 카드입니다.”


마술사는 관객 중 하필이면 당신에게 다가옵니다. 당신은 당황하지만 주어진 역할을 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까요.


“지금부터 카드를 섞어주세요. 어떤 카드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도록 말이에요.”


카드를 능숙하게 섞을 수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평소에 보드게임을 좋아한다면 모를까. 그런 취미가 없었던 당신은 카드를 받아듭니다. 당신은 몇십 장에 달하는 무수히 많은 종이 조각 뭉치를 불규칙적으로 뒤섞습니다. ‘내가 지금 제대로 잘 하고 있는 건가?’ 의구심이 들지만 마술사가 특별히 별 말을 하지 않고 있으니 괜찮은 거겠죠.


“그 동안 저는 여기에 무언가를 적어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마술사는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은 후, 테이블에 뒤집어 내려놓습니다. 당신은 수첩의 내용이 궁금했지만 볼 수 없습니다. 여전히 당신은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카드를 섞어야하는거지?’ 라고 생각할 때 즈음, 마술사가 당신에게 다가와 말없이 손을 내밉니다. 아,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뜻이겠죠. 당신은 카드를 다시 마술사에게 돌려줍니다. 마술사는 카드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당신에게 다가와 어깨를 가볍게 터치하면서 말합니다.


“지금부터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해주셔야합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어려운 일을 시키지는 않을 겁니다. 이쪽으로 오셔서, 본인이 스스로 섞은 카드의 맨 윗 장을 보고 그게 어떤 카드인지 기억해주세요.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보여주어서는 안됩니다.”


당신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주어진 일을 해냅니다. 다시 한 번 당신은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른 관객들 모두가 느낍니다.


“기억하셨으면 그 카드를 중간에 넣고 섞어주세요.”


마술사는 당신을 포함한 모든 관객들을 향해 말합니다.


“카드를 잘 섞어주셨고, 한 장을 보고 기억했습니다. 그 카드가 무엇인지 알고있는 사람은 이 공간 안에 단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카드를 잊지 않기 위해 머릿속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는 동안 마술사는 수첩을 집어듭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전에, 저는 수첩에 무언가를 적어두었습니다. 정확히는, 어떤 카드의 이름을 적어뒀습니다.”


마술사는 당신과 정반대편에 앉아있는 관객에게 다가가 수첩을 펼쳐진 상태 그대로 건넵니다. 곧바로 이어서 당신을 바라봅니다. 당신은 수첩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잠시 카드를 잊어버릴 뻔하지만, 금방 다시 떠올리는데 성공합니다.


“고른 카드의 이름을 큰 소리로 말씀해주세요.”


“8하트”


수첩을 든 관객의 얼굴에 놀라움이 퍼집니다. 대체 무슨 내용이 적혀있길래? 마술사는 수첩을 그대로 다른 관객들이 볼 수 있도록 보여줍니다. 거기에는 굵고 선명한 글씨로 8하트가 적혀있습니다. 어떻게 미리 당신이 카드를 섞은 후에 8하트가 있을 걸 알 수 있었던 걸까요? 마술사는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있었을텐데, 그게 무엇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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