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은 아니지만
퇴근길이면 시원한 콜라 한 잔이 땡긴다. 집 앞 편의점에 들러서 펩시 제로 한 병을 집어든다. 계산대 앞에는 중학생에서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듯한 남학생이 빵을 계산하기 위해 지갑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이미 신용카드 한 장이 들려있었고, 뒤이어 두 번째 신용카드를 꺼내려고 하고 있었다. 아이고, 두 번째 카드도 잔액이 부족하다. 다급하게 핸드폰 화면을 두드리더니 그는 체념하고 다시 음식을 되돌려놓으려했다. 나는 그 장면을 멀뚱멀뚱 바라보고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선의가 반드시 나에게 선의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선한 행동은 종종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착한 척'이고 '관심 받기 위한 행동'이고 '위선'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더 흐르자 나는 선의가 반대로 배신당할 때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나 많은 영웅들이 지금도 폐지를 줍고있는가. 얼마나 많은 악인들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있는가. 남을 도우는 이들은 남을 돕지 않는 이들보다 고통받는다. 어린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결국 나는 이렇게 믿기로 했다. "선한 자는 반드시 벌을 받을 것이다." 타인에게 베푼 친절, 약자에게 베푼 호의,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배려. 그것들은 절대로 내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선행에는 대가가 따른다.
선한 자는 반드시 벌을 받을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이타적인 행동이란 결국 '타인을 위하는 척하면서 스스로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행위'이다. 친절과 배려는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행태'이다. 그들은 선한 사람이 벌을 받기를 원할 뿐만이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선행은 추악한 본모습을 가리는 가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겉과 속이 똑같이 악한 사람에게 환호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나쁜 사람일지언정, 너희처럼 거짓말쟁이는 아냐." 슬프지만 그들 말대로 선행은 반드시 벌을 받을 것이다.
결국 나는 이런 어른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착한 사람들이 세상을 더 낫게 만든다고 믿지 않는다. 이타심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친절하게 사람들을 대해도,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믿는다. 세상이 아직 따뜻하다는 것을 열심히 주장하는 공익광고들도 마치 담배 회사의 광고처럼 선행의 가치를 과도하게 부풀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가 이런 어른이 되었다는 슬픈 증거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선행을 베푼다. 어떤 사람은 인생을 바쳐서 약자를 돕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일상 속에서 사소한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분명히 벌을 받을 것임을 알면서도 선행을 선택하는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고작해야 '내가 좋은 사람이 된 것같은 기분' 하나뿐인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기분'에 중독되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마치 술이나 담배, 마약처럼. 이타적인 행동이 가져다주는 고양감은 무척이나 중독적이어서, 한번 경험한 사람은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한다. '고맙습니다.' 라는 인사를 단 한 번이라도 들어본 이들이라면 그 기분을 다시 느끼기 위해 얼마든지 벌을 받을 각오를 할 수 있다.
식당을 나서면서 좋은 하루 보내라고 인사할 때마다, 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잡을 때마다, 연장자에게 지하철 자리를 양보할 때마다, 벌을 받을 것이라는 불길함이 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이 모든 선행(또는 위선)이 언젠가 나 자신을 파멸로 이끌겠지. 어쩌면 죽은 후에 저 밑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와 같은 죄를 지은 이들과 함께할 것이다. 그들이 저 위에서 그들과 같은 믿음을 지닌 이들과 함께하는 동안.
나는 계산대에서 떠나려는 그 학생을 멈춰세웠다. 그리고 직원에게 내 카드를 내밀었다. 학생이 들고있는 빵은 고작 3500원이었다. 그 학생은 연신 내게 고맙다고 이야기했다. 그 학생은 하루의 야식을 손에 넣었고, 나는 고작 3500원짜리 자기만족을 손에 얻었다. 선행은 반드시 벌을 받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렇다고 믿는다. 얼마나 많은 친절함이 배신당했던가. 얼마나 많은 배려가 공중으로 흩어졌던가. 언젠가 우리는 우리의 위선의 대가를 치를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도저히 이 기분을 끊을 수가 없다.
여기, 오늘도 선행을 저지르는 우리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