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마제야 레터
2026. 02. 08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로운 건 싫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인류 역사상 어떤 시기보다 더 많은 '연결' 속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우리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과 SNS의 등장은 인터넷 혁명을 우리의 일상 속으로 더욱 더 깊숙히 끌고 들어왔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다시 잠들기 직전까지 우리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사람과 연결된 채로 살아갑니다.
만약 다른 우주의 생명체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일까요? 모든 사람은 각자만의 개인화된 최첨단 계산 기계를 갖고있고 그 기계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무선 통신 체계로 연결되어있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정보를 공유할 수 있죠. 마치 개미가 서로의 페로몬 냄새로 연결된 것처럼, 인류는 인터넷이라는 촘촘한 그물망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 인류가 서로 연대하고 함께 도우며 평화롭고 따뜻한 시대를 살고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읽는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인간들을 분명히 연결시켰습니다. 하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인터넷상의 정보는 우리로 하여금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스마트폰과 SNS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일상을 주고받을 수 있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우리는 자기 자신과 상대방을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수히 많은 관계 속에서 피로감을 느끼면서도 진정으로 교류할 수 있는 친구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두 가지 목소리가 동시에 존재합니다. 한 쪽에서는 타인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끊임없이 경고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저들이 내 약점을 잡고 이용할지도 몰라. 나 스스로를 좀 더 숨겨야해. 의심하고 경계하고 숨겨야해." 다른 한 쪽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관계를 희망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나의 약점을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이제 숨기는 것도 지쳤어. 더 이상 나 스스로를 숨길 필요가 없는 관계를 원해."
어쩌면 그래서 사람들이 생각을 읽는 마술, 즉 멘탈 마술(Mental Magic)에 그렇게 흥미를 갖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속마음을 숨기고 싶어하는 동시에 은근히 들키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접적으로 해소되는 거죠. 실제로 멘탈 마술은 요즘 전 세계 마술계의 공통된 유행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언더그라운드 마술 커뮤니티에서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멘탈 마술이죠.
멘탈 마술에서 핵심적으로 사용되는 트릭 중 하나는 바로 관객이 꽁꽁 숨겨놓은 비밀스러운 정보를 알아내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마술사*들이 더욱 불가능한 상황에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기법을 연구하고 있죠. 정교한 손기술을 익히는 이들도 있고, 첨단 기술을 이용한 장치를 고안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포러 효과**, 또는 확증 편향***과 같이 실제로 존재하는 심리 효과를 이용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순히 불가능해보이는 상황에서 관객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정보를 빼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마치 유능한 해커가 철통같은 보안을 뚫고 서버에 은밀하게 침투하는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죠. 하지만 마술사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야합니다. 해커의 역할은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지만, 마술사의 역할은 관객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보고 그걸 엔터테인먼트로 승화시키는 것니까요.
* 다른 장르와 달리, 멘탈 마술을 전문적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을 따로 멘탈리스트(Mentalist)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구분하지 않고 마술사라는 명칭으로 통일했습니다.
** 포러 효과(Forer Effect) : 누구에게나 해당될 법한 모호하고 일반적인 설명을, 개인적이고 정확한 설명처럼 받아들이는 효과, 바넘 효과(Barnum Effect)라고도 알려져있습니다.
***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 개인의 가치관이나 신념,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 또는 태도.
비눗방울 안의 사람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인지 능력이 만든 세계 속을 살아갑니다. 인지할 수 없는 부분은 우리의 세계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죠. 만질 수 없는 물체, 들을 수 없는 소리, 맡을 수 없는 냄새. 인간의 인지 능력은 유한하기에 우리의 세계는 그렇게 넓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 주위를 둘러싸고있는 얇은 비눗방울같은 모습일지도 모르겠네요. 다행히 비눗방울의 막은 무척이나 투명해서 마주보고있는 상대방이 어떤 표정을 짓고있는지, 어떤 행동을 하고있는지, 어떤 음색으로 소리를 내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가가지는 못하죠. 우리의 연약한 세계가 '뾱'하고 터져버릴지도 모르니까요.
다른 사람의 세계에 함부로 드나드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본능적으로 우리의 세계에 다가오는 사람을 경계하는 것도 그런 이유죠. 하지만 몇몇 똑똑한 이들은 상대방 몰래 그의 세계로 숨어든 후 필요한 정보를 몰래 빼돌리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얻어낸 정보를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사용했습니다. 사이비 교주나 사기꾼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하지만 마술사는 다릅니다. 마술사가 정보를 빼돌리는 이유는 그를 더욱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죠. 심지어 그 대가로 바라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엔터테인먼트 뿐이죠.
대가 없이 상대방의 세계를 궁금해하는 행위를, 몇몇 이들은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어쩌면 멘탈 마술의 비밀은 '정보를 어떻게 얻어내느냐' 따위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진정으로 멘탈 마술의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사랑이 필요한 것일지도요.
필로마제야, 박영균
보너스 : 필로마제야를 위한 마술 영상
오늘의 주제는 '생각을 읽는 마술'이었습니다. 오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술 공연자이자 심리 일루셔니스트 서 멘탈 마술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마술사, 데런 브라운(Derren Brown)의 2019년 TED 퍼포먼스(또는 강연) 영상입니다. 단순히 정보를 읽어내는 것이 아닌 관객들의 삶을 읽어내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Mentalism, mind reading and the art of getting inside your head | Derren Brown | 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