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도종환 시인님.
저는 당신께선 잘 모르시겠지만, 당신이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지역구 옆마을 산골마을에서 당신 소식을 듣고 지낸 범인입니다.
그 범인이 아니고 그 범인입니다.
오늘 추모제에 참석해서 우는 눈빛으로 운명이란 시를 쓰고 읽은 당신을 보고 나니
편지를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 대해 소개하자면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학생시절부터 당신의 시를 읽고 자란 세대의 일원입니다.
왜냐면 교과서에 실려 있었거든요. 접시꽃 당신.
그 시를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서정적인 시는 어쩐지 뒷머리를 긁고 입으로 외우고 작가의 심정 쓱 읽고 페이지 넘기던 무심한 시절이어서 그런지, 태평하던 2007년 이전에는 그 시도 당신도 내게 이름만 있을 뿐 별로 알고 있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종환 시인께서 국회의원에 도전하고 입성했을 때, 솔직히 응원하지는 않았답니다.
시인이 국회의원하려고 시를 열심히 쓴 건가? 하고 콧방귀만 뿡뿡 뀌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것도 참 치기와 질투 어린 기억에서 샘솟습니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성공하고 싶어 안달하던 나이였어요.
그런 당신이 제게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던 건,
작년 하순 쯤, 당신이 발행하신 한 시집에서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때쯤 바뀌지 않은 세상에 학을 떼고 질려 있었습니다.
제 친구들은 헬조선을 탈출하겠다고 모두 직장에 다니며 돈을 모으곤
그 돈을 종잣돈으로 해외로 뿔뿔히 나갔고,
저도 한국을 떠나 있었습니다.
저는 노란 밴드와 함께 멀리멀리 여행을 하던 중이었고 곧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솔직히 '살고 싶은 나라'로 돌아간단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 즈음 당신은 시집을 냈고, 그 시집은 제게 많은..... 감정을 주었습니다.
시집의 시들이 그냥 글로만 보이지 않았어요.
한줄한줄 읽기가 힘든 시도 있었습니다.
입말로 내뱉을 때마다 눈물 어리게 하는, 그리고 지치게 하는,
나 자신의 매일에서 뉴스에서 마주쳐야 했던 폭력과 강압과 조롱과 슬픔이
시라는 매체에 고스란히 실려 있던
순간,
도종환 시인이 국회의원이 되어서 맞이했던 건 명예롭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성공한 삶이 아니었단 걸 그제서야 깨달았던 겁니다.
그건 좌절의 기억이고 슬픔의 기억이고 치욕의 기억이었습니다. 누굴 향한 슬픔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조롱하는 이들 너머에 도사리는 권력의 그림자가 때로는 목을 조르는 듯 아팠습니다.
그런 나날을 시민을 대표해 온 몸으로 통과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요. 어떤 삶일까요?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절필하지도 않고, 참혹한 이 시절을 그대가 다시 퍼올려 시로 만들어 냈다는 것은...
내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용기였고 힘이었습니다. 제게 <사월바다>는 그런 시집이었습니다.
살아간다는 건 파도치는 밤과 같은 것.
사위가 보이지 않는 밤, 앞으로 1보 전진, 뒤로 2보 후진, 또 뒤로 후진 또 뒤로 후진. 때때로 전진.
우리가 그렇게 살아간다는 걸,
오늘, 역사적인 운명의 날을 또다시 지나보내며
당신께 편지를 씁니다.
그 시집, 써줘서 고마웠습니다. 많은 위로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시를 써주세요.
당신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