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뮤즈노트 Sep 16. 2015

Chapter 2-2 이야기는 떠나면서 시작된다

동화의 4가지 창작법칙

#1. O(영)의 법칙 : 이야기는 떠나면서 시작된다.


이야기를 만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는 눈을 반짝거리며 아기새처럼 이야기가 떨어지길 기다린다.


'잠깐, 그런데... 어떻게 시작하지?'


이런 막막함을 겪어보셨다면, 너무 답답해 마시라. 그 신호는 엄마 아빠가, 이미 창작의 과정에  본격적으로 입문했다는 증거다. 첫 문장의 막막함은 곧 이야기를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창작론에서는 문장 그 자체에 방점을 찍고, '첫 문장이 모든 것이야!'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문학으로서의 '첫 문장'은 다분히 곱씹어 볼만한 이야기지만, 여기서는 일단 무시하기로 하자.


우리에겐 현실적 목표가 있다. 눈 앞에 있는 아기새를 만족시키는 일이다. 비평가와 독자를 내리누를 압도적 첫 문장이 아니라,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하지?'란 지극히 현실적 고민에서 출발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이야기는 떠나면서 시작된다!'


엄마나 아빠가, 만약 '토끼'나 '호랑이', '정글 속 소년', '왕궁에 사는 공주님'을 주인공으로 삼기로 했다면, 그 누구든 상관없다. 일단 떠나는 걸로 시작해야 한다. 토끼는 굴에서 연기 때문에 쫓겨 나오고, 호랑이는 사냥꾼을 피해 밀림을 나와야 한다. 정글소년은 깊은 밤에 익숙한 길을 잃어야 하고, 왕궁에 사는 공주님은 마녀 때문에 쫓겨나야 한다...


어디에서 어디로 떠나 가는가?


동화든 영화든 어떤 것이든 좋다. 잠시만 이야기의 초반부를 떠올려 보자. 백설공주는 부모님께 사랑받았고, 인어공주는 언니들과 즐겁게 헤엄치며 살았다. 반지의 제 프로도는 호빗축제를 즐기고 있고, 겨울왕국의 엘사와 안나는 굳게 닫힌 성안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주인공의 삶은 다르지만, 그들의 집은 안전한 세계다. 혹은 큰 행복은 없을지 모르지만 익숙한 곳이다.


우리는 그곳을 일상의 세계라 부른다. 


그러나 그들의 '일상'은 결코 길지 않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주인공은 '운명처럼' 익숙한 장소를 떠나, 낯선 곳에 도착한다. 이상한 난쟁이들이 사는 숲, 익숙한 바다가 아닌 낯선 땅, 괴물들이 우글거리는 진흙 구덩이나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세계...


이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기괴한... 일상의 경계 너머에는 비현실적이며, 낯선 세계가 있다.  


일상과 낯선 세계... 인간의 마음속에, 세계는 크게 두 가지 모습으로만 존재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언제나 일상의 세계에서 낯선 세계로 떠난다.


'떠나는 이야기'의 의미


일본의 비평가 오쓰카 에이지는 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런 이야기의 기본구조(저자나 캠벨은 이를 '갔다가 돌아오는 회귀구조'로 설명합니다...)'발달 과정에 있는 어린이의 두뇌와 감정이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형태'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엄마 없다~ 엄마 여깄네~'같은 까꿍놀이만 봐도 그렇다. 까꿍놀이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나타나는 단순한 동작만으로도, 엄마가 있는 상태(익숙함)에서, 엄마가 없는 상태(낯선 상황)로의 떠남을 정확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이가 원초적 즐거움을 느끼며 '까르르' 웃는 건 당연하다.


'떠나는 이야기' 구조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양식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들인데,  꿈, 종교의식, 축제, 신화는 모두가 '(익숙한 세계 혹은 현실에서) 떠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패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람이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 이야기 구조에 친숙하며, 또 이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왔음을 알게 하는 증거들이다.


실제로 '떠나는 이야기'는  과거뿐 아니라, 오늘 우리의 삶에도 반복되고 있다. 육아휴직이 끝난 엄마가 눈물을 훔치며 어린이집에 맡긴 아이... 첫사랑의 감정에 빠진 사춘기 소녀.... 신병교육대에서 심난한 첫날 밤을 보내는 신병... 인생의 흔한 단상이지만, 이것은 모두 일상 혹은 익숙한 감정으로부터 '떠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우리가 '떠나는 이야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이야기는 삶의 모방이기 때문이며, 삶은 '떠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O(영)의 법칙 : O을 닮은 이야기, 하지만 결코 O이 아닌 이야기

 

하지만 '떠나는 이야기'가 보편적 삶의 모방이나 마음의 모방...이란 의미에 그치는 걸까?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동그라미(O)를 그려놓고, 그 원을 따라 <분리>, <입문>, <회귀>의 세 단계를 제시했다. 이야기 속 영웅은 이 표준궤도에 따라 세 단계를 겪는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익숙한 세계를 떠나(분리), 낯선 세계에 도착하고(입문), 다시 돌아오는(회귀) 것을 뜻한다.


'떠나는 이야기'의 진짜 의미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일상에 발을 딛고 살던 주인공이 낯선 세계로 떠났다가 돌아온다. 그는 엄청난 보물을 보상으로 받거나, 용을 무찌를 전설의 칼을 들고 오지 않았을 수 있다. 이때 그가 얻은 것은 O(영)에 가깝고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일상에 머물던 과거의 그가 아니다.


그의 내면은 그 과정을 통해 성장했기 때문이다.


조지프 캠벨을 비롯한 학자들은 '떠나는 이야기'의 진짜 의미를 '통과의례' '성인식'에서 찾는다... 사람은 일상을 벗어날 때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집 아이도, 사춘기 소녀도 신병도... 필연적으로 전과는 완벽하게 다른 세계 속에서 새로운 '감정'과 '경험'을 얻게 된다. 그곳은 빛, 냄새, 촉감, 소리... 모든 것이 다르며, 그만큼 모든 것이 새로운 세계다. 물론 슬플 수도, 기쁠 수도,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은, 익숙한 일상에선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한 공기가 마음으로 흘러들어 순환한다는 점이다. 성장의 기회는 그렇게 찾아온다.


요컨대 대부분의 매력적인 스토리가 '떠나는 이야기'를 사용하는 의미는 간단하다. 인생은 '(일상 혹은 익숙한 감정으로부터) 떠나는' 구조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며,


성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일상을 떠나 데' 있기 때문이다.


'떠나는 이야기'를 아이에게 만들고, 들려준다는 의미...


아이에게도 일상이 있다. 늘 보는 광경과 안락함을 느끼는 장소가 있다. 익숙한 베란다 밖 풍경, 꼬리가 없어진 공룡과 색연필로 가득 찬 스케치북들... 그런 일상이 점차 신선함을 잃어가기 시작할 즈음, 아이의 마음에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장난감을 위해 차가운 마트 바닥에 드러눕는 아이만 봐도... 그쵸?^^


하지만 일상의 세계를 떠나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우리가 직업을 바꾸거나, 결혼을 하거나, 혹은 이민을 가는 결정은 어렵고 한편으로 두렵다. 아이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풍경 너머가 몹시 궁금하고 가보고 싶지만 두려움이 앞선다. 아이가 엄마나 아빠 팔을 끙끙대며 잡아끌며 새로운 장소를 탐험하는 이유는 이처럼 호기심과 두려움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떠나는 이야기'에는 이 두 가지 모습이 골고루 등장한다. 용감하게 떠나기로 결심하는 주인공이 있고, 떠나기 싫었지만 억지로 떠나게 되는 주인공도 있다. 엄마 아빠 모두가 알다시피 그런 것이 삶이다. 엄마 아빠가 동화를 만들어줄 때, 굳이 모든 주인공이 용감하게 길을 나서지 않아도 되는 이유이며, 또 아이에게 무조건 용기 있게 시도하라고 다그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가 낯선 세계를 경험하는 모습은 대견한 반면, 안쓰럽기도 하다. 부모는 그 순간을 참기 어렵다. (신발 신느라 끙끙대는 것만 봐도 대신 해주고 싶더라구요..)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부모 스스로가 그 세계로 직접 뛰어들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아이의 낯선 세계는 엄마 아빠에겐 이미 익숙한 일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엄마 아빠가 아이의 세계에 침입하는 순간, 아이가 경험해야 할 세계는 무너지고 일상의 빛으로 탈색되어 버린다.


그리고 통과의례와 성인식을 스스로의 힘으로 치르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로 남는다.


'떠나는 이야기'를 만들고, 들려주는 마음가짐은 따라서 특별한 게 아니다. 엄마 아빠가 아이에게 '떠나는 이야기'를 접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고, 이를 통해 부드럽게 삶의 방식을 시뮬레이션할 기회를 오롯이  선물하는 것... 그 뿐이다.


아이는 때가 오면,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낯선 세계로 떠날 준비를 할 것이다. 그 때 엄마 아빠는 아이의 등을 두드려주거나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자.


때론 안쓰럽고 때론 아프겠지만,


그것이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임을 인정하자... 

그것이 또 엄마 아빠가 아이를 통해 성장하는 것임을 받아들이자...

고통스러운 육아는, 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선물해준 성장의 기회임을 깨닫자...


엄마 아빠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언제나, 또 오로지, 그 뿐이다.   



민속 의례에서는 산속이나 동굴 등 이쪽 편으로부터 격리된 장소로,
신화나 옛날 이야기의 주인공은 죽음의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참가자는 건너편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것을 통해
갈 때와는 다른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스토리 메이커 中 by 오쓰카 에이지>


* 다음 화에서는 O의 법칙 실전작법편이 이어집니다...라고 하니, 역시 학원강사 같군요... ^^


도서구매 링크 :  

http://goo.gl/ixcYJ6

        

매거진의 이전글 Chapter1-6. 아이가 스마트폰을 봐도 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