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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Sep 03. 2015

Chapter1-6. 아이가 스마트폰을 봐도 되는 이유

이야기와 미디어

스마트폰의 피해자는 아이가 아닌 부모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다. 엄마 아빠는 스마트폰과 TV를 보여주며 끊임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징징대는 아이의 요구와 피로감에,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면서 되뇐다. '아... 또 무너졌어... 나는 아이를 훌륭하게 키울 자격이 되는 부모일까?'


아동학이 아니라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공부한, 그리고 더 신뢰를 떨어트리는 고백일 수 있지만 TV산업 한복판에 종사하는 제게 답변을 할 자격을 주신다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물론이죠! 아이가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고, 스마트폰이나 TV를 봐도 괜찮습니다."


잠깐..... 음? 뭐라... 구요?


이 정도로 미덥지 않으시다면, '제 아이도 그렇게 키우고 있습니다...'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잉? 그럴 리가 있나요? 스마트폰이나 TV는 자극이 심하고 일방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어서 아이들 두뇌가 덜 발달한다는 '과. 학. 적. 인' 결과와 '전. 문. 가.'들의 연구가 매일같이 기사로 나오는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직업 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 거 아닌가요?'


 ...라는 건강하고도 비판적 사고를 지니고 계시다면, 이제 재밌게 글을 읽으실 준비가 되셨습니다. ^^


이야기는 '책'이 아니다.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알고 계시는지...

내가 기억하는 오즈의 마법사는 동화 속 공주처럼 예쁜, 주디 갤런드 주연의 흑백영화다. 다소 어설픈 분장의 양철 나무꾼이 기억나고, Somewhere over the rainbow~로 시작되는 명곡은 이야기와 한몸처럼 기억되는 노래다. (지금도 흥얼흥얼)


1939년作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디 갤런드


반대로 14편에 이르는 연작으로 출간된 오즈의 마법사를 읽은 기억은 없다. 이런 경험은 사실 흔한 편이다. 인어공주나 백설공주를 디즈니 버전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피터팬을 연극이나 뮤지컬로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게 어떤 이야기인지 알고 있다. 도로시가 왜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는지, 사자와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의 고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 이유는 책으로 읽은 사람이나 영화로 본 사람이나 매체가 달랐을 뿐 이야기는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


이야기하는 인간 Homo Fictus에게 중요한 것은 이야기이지, 매체는 그 다음이다. 그런데 우리는 책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이야기=책이란 공식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놀랍게도 그 둘은 결코 같은 것이 아니다. 미국의 유명한 서사학자 시모어 채트먼은 이야기를 스토리와 담론으로 구분했다. 우리가 뭉뚱그려서 알고 있던 이야기가 사실은 스토리와 매체의 두 가지 요소로 조합돼 있단 뜻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레스토랑에서 심플하게 '스테이크 주세요~'라고 하지만, 실제로 나오는 건 스테이크와 스테이크를 담는 그릇이란 말이다. 어떤 곳은 철판 위에, 어떤 곳은 따뜻한 접시에 예쁘게 플레이팅을 해주지만, 우리가 먹는 게 스테이크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처럼 이야기 역시 '이야기의 내용'과 이를 담는 '그릇, 음식을 담아내는 플레이팅 방식'이 구분된다는 뜻이다.


채트먼의 (당연해 보이는) 구분은, 실제로 어떻게 전혀 다른 매체를 접했는데 동일한 스토리를 공유하고 있는지, 또 하나의 스토리가 어떻게 영화나 드라마, 연극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준다.


무엇보다 아이와 사람에게 이야기가 필요하다는 대전제에서, 그릇을 먼저 고민하는 방식은 그 우선순위가 잘못된 게 아닐까...라는 통찰을 전해준다.  


그럼에도 우리가 독서와 책이란 '그릇'에 매달리는 이유


어린 시절부터 못이 박히게 "책 읽어라,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나는 그때마다 경양식을 떠올렸다)라는 말을 들어왔다. 그리고 TV보지 마라... 인터넷 하지 마라... 이런 말도... 그런데 요즘 학생들이 공부하는 방식은 어떤가요? 어린이집 부교재는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 때에는 디지털교과서, 미래의 언어라는 코딩 교육까지 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중고등학생이 인강(인터넷 강의)을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보고 있다고 혼낼 부모는 없다.


이처럼 우리는 '매체중심의 사고'가 아니라, 냉정하고 합리적으로 '내용중심의 사고'를 하고 있다. 또한 아이들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고 삶의 배경이 되는 IT환경에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왜 아이들에게 책이 좋고, 스마트폰은 나쁘다라는 주장이 당연한 듯 통용되는 걸까?


사실 스마트폰과 TV가 해로운 수만 가지 이유는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 잠시만 이런 짓궂은 상상을 해보자.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과 똑같은 세상이 있는데 비디오 게임이 먼저 발명되어 주류로 자리 잡고, 뒤늦게 활자가 가득한 책이 나타났다.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독서 열풍에 휩싸여 게임은 내팽개치고 독서만 하고 있다. 학부모와 교사, 교육전문가들은 과연 무어라 말할 것인가?

영상과 음향효과, 3D로 구현되는 세계관과 근육촉진이 되는 비디오 게임과 달리, 책은 문자를 해독하는 뇌의 일부분만 사용하게 되므로 감각기능이 저하되고, 여러 명이 즐길 수 있는 게임과 달리 아이들은 고립된다. 한 방향으로만 진행되는 책은 주입식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능동적이 아니라 수동적이 된다.

(Everything Bad is good for you(해로운 게 좋은 거예요) / 역서 : 바보상자의 역습 by 스티븐 존슨 中)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익살맞은 저자가 말하고 싶은 건 실제로 책이 해롭다거나, 게임이 더 우수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단 '독서가 최고!'라는 공식이 전 세계 문화권에 너무 깊이 새겨진 나머지, 앞으로 살아갈 새로운 문화와 혁신적인 매체에 대해 지나치게 완고한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꼬집고 있는 것이다.  


특히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는 책=독서=공부라는 도식이 성립되어 있다. 아이에게 이야기를 읽어준다고 책을 들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공부'란 생각이 앞선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저도 반성합니다) 만약 그런 마음이 앞선다면, 아이는 귀신같이 엄마 아빠의 의도를 알아챌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책에 대해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리는 날이 올지 모른다.


스테이크(이야기)를 맛있게 먹는 방법


기왕 스테이크로 비유를 했으니 계속해보자. 이야기가 스테이크라면, 책, 스마트폰, TV는 그릇이다. 아이입장에선 '지글지글' 신기한 소리를 내는 철판(스마트폰)에 더 마음이 끌릴 수 있고, 평범한 흰색 접시(책)가 따분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스테이크가 소중한 영양공급원이 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뜨거워서 손을 델 수 있으니 철판 스테이크는 무조건 안돼!'라기 보단, 테이블 매너와 스테이크의 맛을 즐기는 법을 가르치는 게 올바른 접근이다.


실제 스마트폰이 아이의 정서나 뇌 발달을 해친다는 연구의 이면에는, '중독'이라는 무서운 단어가 뒤따른다. 스마트폰 중독만큼, '독서나 활자중독'역시 나쁠 수 있다. '중독'은 병적인 지나침을 의미함으로 어떤 경우에도 나쁘기 때문이다. 실제로 또래들, 엄마 아빠와 놀며 다양한 경험과 세계를 경험해야 하는 아이가, 방에서 골똘히 책만 읽고 있다면 정말 걱정스럽겠죠?  


이러한 유아기의 '중독'이 발생하는 이유는 대부분 환경적 무관심이나 방치에서 비롯된다는 혐의가 짙다. 우리는 연구결과만 보고 쉽게, 스마트폰이나 TV는 나빠!라고 말하지만, 연구설계의 이면을 따져봐도 그럴까?  아이가 스마트폰을 봐서 성장발달이 뒤쳐지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신체활동과 경험을 등한시 한 채) 지나치게 오랜 시간 동안 스마트폰에 노출될 정도로 무관심한 육아환경이라는 조건이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그건 스테이크를 어떤 그릇에 담는가의 문제보다 앞선, 훨씬 본질적인 문제가 아닐까?


이야기는 흐른다


다행스럽게도 이야기는 흘러 다닌다. 결코 하나의 매체에 종속되지 않는다. 이야기는 그만큼 원시적이고 강력한 '초능력 슈퍼파워'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아프리카의 어떤 아이는 오즈의 마법사를 티셔츠 그림에서 만날 수 있고, 남미의 아이는 연극에서 만난다. 미국에선 영화관에서 만나고, 우리나라 아이들은 책으로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각 나라의 아이들은 한 자리에 모여서, 오즈의 마법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 놀랍고 흐뭇한 광경이다.  


우리는 물론 매체의 장단점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은 매체가 아니라 이야기가 주는 힘, 상상력이다. 그림을 보는 아이는 상상을 한다. 저 허수아비는 어떤 걱정이 있을까? 연극무대에서 도로시가 '저것 봐! 날개 달린 원숭이야!'라고 외치면, 아이들 머릿속에선 조잡한 인형이 아닌, 무서운 날개 달린 원숭이가 날아다닌다.  


미디어 연구에서 마주치는 기이한 예언자, 마셜 맥루한도 어떤 미디어가 적극적인 상상을 필요한가의 여부로 쿨미디어와 핫 미디어의 구분법을 주장했다. 물론 그는 건조한 기술중심주의로서의 미디어를 말한 것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이론을 이야기 육아에 인용한다면 깜짝 놀라시겠지만, 뭐...너그럽게 용납하시겠죠? 그의 매체에 대한 경구들은 가끔 고개가 갸웃거리긴 하지만, 사람들의 상상력에 주목한 발상은 과연 설득력이 있다. 


그러니 오즈의 마법사를 책으로 읽을 수도 있고, TV나 스마트폰으로 볼 수도 있음을 인정하자. 엄마 아빠의 역할은 스마트폰을 건네며 좌절감을 느끼는 게 아니고, 아이가 영양분이 풍부한 이야기를 골고루 잘 섭취하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그런 전제하에 이야기의 힘을 믿어보자. 다만, 함께 차에서 '썸 웨어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르고, '와.... 저 사자는 무섭게 생겼는데, 왜 저렇게 겁이 많지? 정말 웃긴다...', '엄마가 예뻐? 도로시가 예뻐?'라는 질문을 던져보자. 빵을 함께 먹으며, '이건 구름빵인가? 몸이 둥둥 떠올라~'라며 아이를 번쩍 안아 하늘을 나는 경험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주자.


Somewhere over the rainbow~


아이가 놀이와 대화로 경험한 스토리는 훨씬 다채로운 공감각적 이미지로 마음에 자리하게 될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시네마 천국>의 주인공처럼, 엄마 아빠와 함께 공유한 그 이야기뿐 아니라 모닥불처럼 자신을 감싸 안았던 따뜻한 정경을 추억하고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훗날 우리의 아들 딸들이 소설, 영화, 수필, 드라마, 연극, 뮤지컬, 게임,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된다면, '사랑하는 엄마!, 그리고 사랑하는 아빠에게!'라는 문장을 제일 앞에 써넣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것은 수많은 유명 작가들이 부모님과의 추억과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와 같다. 완성되어가는 한 인간으로서의 궁극적인 자긍심이고, 자존감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나는 따뜻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이에요...  세상의 바람에도 결코 쉽게 꺾이지 않습니다. 고개를 떨굴 때면 부모님이 유산으로 물려준 견고한 땅이 보이니까요... 나는 바로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야기는 결코 스마트폰이나 TV 따위에 굴복하지 않는다. 이야기는 흐른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아이를 이야기에 태우고, 힘차게 노를 저어 가자! 무지개 너머 어딘가...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향해....




새벽 6시15분에 데이브 형이 나를 깨웠다. 문밖에서 조용히 부르면서 어머니가 곧 떠나실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안방에 들어가보니 형은 어머니의 침대 곁에 앉아 어머니에게 '쿨' 한 개비를 물려드리고 있었다.... 나는 데이브 옆에 앉아 담배를 넘겨받고 어머니의 입에 대어드렸다....침대 옆에는 초판 이전의 교정쇄로 묶은 <캐리>(스티븐 킹 자신의 소설) 한권이 놓여 있고 여러 개의 유리잔이 그 모습을 반사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한 달쯤 전에 에설린 이모가 소리내어 읽어준 책이었다.

어머니의 눈길이 데이브와 나, 데이브와 나, 데이브와 나 사이를 오락가락했다....우리는 번갈아가며 어머니께 담배를 물려드렸다. 담배가 필터까지 타들어갔을 때 내가 꽁초를 눌러 껐다.

"내 새끼들."

<On Writing / 유혹하는 글쓰기 中 by 스티븐 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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