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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Sep 29. 2015

Chapter2-4 부족한 아이가 주인공이다.

동화창작의  4법칙

주인공은 왜 낯선 곳으로 떠날까?


우리는 첫 번째로 배워본 O의 법칙을 통해,  '이야기는 떠나면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인공은 일상적인 곳을 떠나 아주 특이하고 이상한 낯선 세계를 여행한다. 그 여행의 의미는 성인식이나 통과의례였으며, 이는 '성장'뜻한다.


그런데 주인공은 왜 떠나는 걸까? 무조건 떠나야 한다니, 떠나긴 해야 할 텐데...

앞선 글대로 인생이란 스스로 떠나기도 하지만, 떠밀려 가는 것이기도 하는 것이니... 그저 그러려니 해야 할까?


하지만 어떤식으로 떠나게되든 놀라운 공통점이 발견된다. 아래 예시를 보자.


도로시는 회오리바람에 떠밀려 고향을 잃었다. 도로시는 고향을 되찾아야 한다. 헨젤과 그레텔 역시 숲에 버려졌지만,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어공주는 뭍으로 올라가 사랑의 대상인 왕자님과 만나야 하며, 백설공주는 못된 마녀 품에서 왕궁과 아버지를 되찾아야 한다. 어떠세요? 뭔가 알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오지 않으시나요?


결핍과 욕망이 낳은 주인공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주인공의 결심으로 떠나든, 그렇지 않든 공통의 구조가 드러난다. 그것은 그들에게 부족함이 생겼단 사실이다.


고향과 집, 사랑과 아버지를 잃었다는 건, 부족함, 다른 말로 결핍을 뜻한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주인공이 이러한 부족함(결여)을 깨닫는 데에서 출발한다. 결핍은 자연스럽게 (채우고 싶다는) 욕망으로 이어진다. 이 욕망은 이야기 전체를 흥미진진하게 끌고 가는 힘이 되는 동시에 목표까지 선명하게 제시해주는 마법 같은 힘을 갖는다.  


수백 가지 민담을 토대로 그 이야기 구조를 정립한 블라디미르 프로프는 이를, 이야기 최초의 상황에서 주인공의 동기가 되는... 독특한 기능으로 이해했다. 그는 '부재'나 '결여', '부족함', '결핍'과 같은 다양한 용어로 이 원리를 설명한다. 이 결핍과 욕망이란 연료 없이는 이야기란 자동차가 움직일 수 없다.


그러니 동화창작의 두 번째 법칙이 '결핍'과 '욕망'의 자리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동화창작 0의 법칙 : 이야기는 떠나면서 시작된다.

동화창작 1의 법칙 : 주인공에겐 절실한 부족함, 결핍이 하나(1) 있어야 한다.


결핍과 욕망... 그리고 성장의 방정식


그렇다면 창작의 두 번째 법칙인 '결핍'은 첫 번째 법칙인 '성장'이란 주제와 어떻게 연결될까?


우리 앞에 똑같은 모양의 컵이 놓여있고, 제각각 다른 양의 물이 담겨 있다고 해보자. 이 때 물을 가장 많이 담을 수 있는 컵은 무엇일까? 당연히 가장 적은 양의 물이 담겨 있는 컵일 것이다.  눈치채셨겠지만, 여기서 컵은... 결핍된 상태의 주인공이며, 물은 욕망이 끌어가는 주인공의 투쟁이고, 물이 가득 찬 상태로의 변화는 '성장'을 뜻한다.


결국 '결핍'이 클수록 강력한 욕망을 낳고, 더 큰 '성장'을 안겨주는 셈이다. 적어도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완벽해서가 아니고 도리어 부족하기에 이야기의 중심축이 될 자격을 갖춘다. 그들은 이 결핍을 메꾸기 위한 투쟁의 과정 속에서 훌륭한 인간으로 완성되어 간다.


미국의 내러티브 전문가 크리스토퍼 보글러는 이 원리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웅이라는 원형은 정체성과 완전함을 찾아 헤매는 에고를 표상한다. 완전무결하고 전일한 인간 존재가 되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수호자, 괴물, 조력자를 대면하게 된다... 우리에게 부여된 심리적 차원의 임무는 이렇게 변리 된 부분들을 무게중심으로 통합하여 완전한 일자(一者)가 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주인공은 비어 있는 컵을 닮아있다. 완벽하지 않으며, 늘 무언가가 부족한 상태에 놓인다. 그들은 자신에게 결여된, 잃어버린, 부족한, 불충분한 무언가를 발견했기에, 물이 가득한 컵과 같은 완전한 상태(=일자)가 되고 싶어 하는 욕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굳이 일상을 떠나 낯선 곳을 향해 터프한 여행길에 오르는 이유는 놀라울 만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도로시는 돌아갈 고향이 사라졌고, 양철 나무꾼에게는 심장이 없고, 사자에겐 용기가 부족하며, 허수아비에겐 지혜가 결여되어 있다. 부족함을 깨달은 순간,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일상을 떨칠 용기를 갖는다. 고향을 되찾고 싶고, 심장과 용기와 지혜를 욕망한다. 결핍에서 출발한 욕망은 구체적인 행동을 낳고, 행동이 이야기를 만든다. 도로시도 나무꾼도, 사자와 허수아비도 일상을 떠나 노란 벽돌 길을 따라 걸어간다. 바로 결핍과 욕망, 성장의 방정식이 적용된 예다.


주인공의 성장과 아이의 성장에 대하여...


지금까지 존재한 수많은 이야기꾼들은 알고 있었다. 주인공이 결핍을 극복하고 성장하는 과정에 이야기의 성패가 달려있음을... 그런데 따지고 보면 부모 역시 다르지 않다. 이 지점에서 이야기 창작자로서의 고민과 실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의 고민 절묘하게 만난다. 요컨대 이야기는 삶의 모방이라는 말을 반복하지 않더라도, 우리 아이든 이야기 속 주인공이든 잘 '커나가는 데'(성장)에 인생 혹은 이야기의 성패가 달려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창작의 두 번째 원리까지 배운 마당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따를 법도 하다.

  

'동화 속 주인공이 성장하기 위해 결핍이 필요하다면, 혹시 우리 아이에게도 결핍이 필요한 걸까요?'   


부족함 없는 아이와 부족함이 필요한 아이 사이에서...


가난했던 전후시기를 벗어나 70,80년대 고도성장기를 지나온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요즘 애들은 풍족하게 자라서인지, 부족한 걸 몰라...'


좀 따분한 말씀이긴 했지만, 옛 어른 들도 '결핍'의 효용을 분명히 알고 계셨던  듯하다. 먹을거리가 부족한 때를 경험하게 되면 음식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장난감이 부족하게 되면, 돌멩이로 공기놀이며 비석 치기 등 창의적이고 사회적인 놀이를 만들어 놀게 된다. 결핍은 좋은 면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을 근거로 '우리 아이에게도 결핍이 필요하다!'라고 대답하긴 어려운  듯하다.

그러니 앞선 질문은 어렵다. 이해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실행이 어렵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엄마 아빠는 자녀가 부족함이 없는지 늘 살피고, 결핍을 채우려 최선을 다한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육아 쇼핑 목록을 챙기고 육아서적을 읽는다. 아이가 자라면서는 월령에 맞는 교구와 교육프로그램을 찾아다닌다. 저희 집도 이제는 못쓰는 장난감이 한가득이에요... ^^


이처럼 세상 모든 엄마 아빠가 아이만큼은 결코 부족함이 없도록 키우려는 심리는 비슷하다. 사랑하기 때문이고, 냉혹한 사회가 어떤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배려하거나 기다려주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는 더 그렇죠? 부족한 주인공이 멋진 시험을 이겨내고 완전한 사람에 가까워지거나 창의성을 발휘하게 된다는 건 우리 현실에선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다. 당장 내 아이가 장난감이 부족해서, 성장단계에 필요한 무언가가 결여돼서, 뒤쳐지거나 열등감을 느끼는 상황을 견딜 수 있는 부모가 있을까? 그런데 이런 입장도 문제가 있다.


결핍을 참지 못하고, 채워주는 육아에서는 필연적으로 모든 책임이 부모의 것이 된다.


인터넷과 책들을 통해 쏟아지는 과. 학. 적. 인 육아 지침은,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신기루와 같다. 애착관계 형성이 잘못된 게 아닐까?  맞벌이하느라 아이와 놀아주지 못한 게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닐까? 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데 형편상 못 보낸 우리는, 아이의 인생을 망쳐버린 게 아닐까? 육아의 피로감에 죄책감이 더해지면서 견딜 수 없는 나날이 시작된다.  


주인공의 결핍이 이야기를 만들고, 성장하게 한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아이 인생에는 결핍이 없어야 하는 사회... 부족함 없이 커야 하는 아이와 부족함이 필요한 아이의 딜레마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결핍과 욕망에 대한 해석


프랑스의 학자 라캉은 인간의 근원적 '결핍'과 채워지지 않는 '욕망'에 대해 파헤쳤다. 그는 인간이 끊임없이 욕망에 시달리는 이유를 탐구하면서, 동전의 반대쪽과 같은 근원적 결핍은 무엇일까?를 고민했다. 당연히 인간으로서 출발선에 서는 시점... 바로 아기에게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말을 아직 못하는 아기는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 단계(거울단계 : 전에 공감에 대한 글에서 나온 거울신경세포와 닮은 이름이죠?)에서는 '나'와 '다른 사람'의 구분이 모호하다. 거울 속의 나처럼, 내 눈에 보이는 옆집 아기, 엄마 역시 '나'라고 믿어버리니, 옆집 아기가 '와왕'하고 울음을 터트리면 따라서 운다. 내가 목마르면 엄마도 목마르리라 생각하고 자신이 먹던 물을 건네기도 한다.   


이처럼 나와 외부 세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기에게 당연히 엄마는 세계의 모든 것이자,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따라서 아기가 인식하는 세계는... 어쩌면 부족함이 없는(정확히는 '진짜 결핍'을 인식하지 못하는) 세계다. 물아일체의 세계라고 할까요? 하지만 그것은 아기의 인식이 만들어낸 상상이자 허구의 이미지다. 따라서 라캉은 이를 상상계라고 부른다.


그런데 아기가 말(언어)을 배우게 되면, 싫든 좋든 낯선 세계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낯선 세계란... 우리가 사용하는 말(언어)처럼,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존재했던 사회질서, 문화적 관습이 있는 '사회'(상징계)다. 이 여정을 통해 아기는 자신과 엄마가 동일하지 않은 존재임을 깨닫고, '방앗간 집 둘째 아들'...처럼 사회적 관계로서의 '이름'과 '방앗간 집 아들은 떡을 먹어야지 빵을 먹으면 안돼!'(^^)같은... 제약에 놓인다. 아기의 욕망은 이제,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했던 '이름'의 지배를 받는다.


이 즈음 아이도 영리하게 전략을 수정하는  듯하다. 이젠 엄마와의 동일시 대신, '엄마의 모든 것'이 되고 싶어 한다. 아이가 엄마 아빠와 대화하는 때에 끼어들어 느닷없이 물을 달라고 떼를 쓰는 이유는(물이 테이블에 있는데도 말이죠), 물을 마시고 싶은 욕구 때문이 아니고, 관심을 오롯이 가져와 엄마의 모든 것이 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낯선 세계에서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깨닫는다. 내가 결코 온전히 엄마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엄마도 사람이고, 사람에게 있는 근원적 결핍을 '내가' 채워줄 수 없음을... 그렇게 아이의 좌절은 해결 불가능한 결핍과 욕망이란 이름으로 무의식에 자리한다.


이처럼 거울단계의 아기든, 사회인이 된 성인이든, 인간은 모두...'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기에'  해결될 수 없는 근원적 결핍과 욕망의 순환미로에 갇힌 존재라는 것이 라캉의 생각이었다.  


엄마의 욕망에 갇혀 떠나지 못하는 아이...


엄마와 아빠는 아이에게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욕망한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인간의 욕망이란 온전히 채워질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아이에게 좋은 장난감을 사줘도, 아이가 반에서 1등을 해도, 명문대에 들어가도, 좋은 직장, 훌륭한  배우자를 얻어도... 아이의 근원적 결핍은 말할 것도 없이, 엄마 아빠의 갈증은 메워질 수 없다.


인간 인식의 출발점이 거울에 비친 허상을 나와 동일시하고, 그 허상이 진짜라고 믿었던 상상계에서 시작됐음을 떠올려 보자. 거울 속 대상이 아니라, 거울 밖에서 지켜보는 내가 진짜라는 것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다면, 즉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객관적인 관찰자의 눈으로 지켜보지 않는다면, 상상계와 상징계가 뒤섞인 현실의 비극은 연장될 것이다.  


거울에 비친 허상은 진짜 같지만 허상일 뿐이다. 허상의 특징은 자꾸만 모습을 바꾸는 데에 있다. 더 좋은 장난감, 교육환경, 더 좋은 스펙... 그러나 우리가 손에 쥐는 것은, 박남수 시인의 노래처럼 '매양 쏘는 것은 피에 젖은 한 마리 상(傷)한 새에 지나지 않는'... 비극과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엄마 아빠가 이를 외면하고 인정하려 하지 않을 때... 문제는 발생하게 된다. 왜냐하면 아이는... 떠나려던 걸음을 멈추고 엄마(아빠도 마찬가지죠)의 헛된 욕망에 부응하려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 걱정말아요. 제가 엄마의 결핍을 채워 드릴게요...'


가엾은 이 아이는 착하다. 커가는 동안 단 한 번도 속을 썩이지 않을지 모른다. 부모의 기대치에 한 치도 부족함 없이 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아이는 출구 없는 가혹한 미로에 갇힌다. 낯선 세계로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일상에 갇혀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스스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오로지 부모의 덧없는 욕망을 대리하는... 거울 속의 허상과 같은 이미지로 남게 될 것이다.  


결핍과 욕망, 성장의 '진짜' 이야기


앞서 말한 이야기를 정리하며 라캉의 이론에 상상력을 덧붙여서 이해해보도록 하자.  


상상계는 비록 환영과도 같지만 부족함이 없는 세계다. 이것은 이야기에서 주인공의 일상에 대응한다. 하지만 말을 배우고 세상 이치를 깨달으며 채울 수 없는 결핍이 발생한다.


결핍은 모두에게 찾아오는 것이지만 주인공의 대응방식은 다른 인물과 다르다. 그는 이 결핍의 상태를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깨닫는다.' 이제 일상이라는 상상계를 떠나, 상징계라는 낯선 세계를 탐색한다. 그리고 상징계가 준  되풀이되는 결핍과 욕망의 수레바퀴 속을 헤매겠지만, 실재계를 꿈꾸는 투쟁을 계속하게 된다.


진짜가 있는... 실재계는 모든 결핍이 사라지고, 욕망이 충족된 약속의 땅이지만 그 땅은 죽음 혹은 죽음과 가까운 모험을 각오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세계다. 그러나 주인공은 혹은 우리 아이는 꿈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죽음 같은 고난이 닥쳐와도 굽히지 않고 꿋꿋이, 타인의 욕망 저편에서 전복과 저항을 꿈꾼다. 라캉이 말한 '실재와 만나는 즐거움'으로서의 '주이상스'는 어쩌면 바로 이런 '진짜를 찾아가는 여정'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 아빠의 인생이 아름다워야 할 이유...


너무 먼 곳을 돌아왔다. 자, 이제 다시 질문을 되새겨 보자.


'혹시 우리 아이에게도 결핍이 필요한 걸까요?' 그런 결핍은 어떻게 알려줘야 할까요?  


엄마 아빠의 답은 어떠해야 할까? 그것은 정답 찾기의 질문형태로는 답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데에  동의할 것이다.  엄마 아빠가 해야 할 것은, 아이의 결핍과 욕망보다는 부모로서 혹은 인간으로서  나의 욕망을 투명하게 들여다 보는 데에 있다. 


우리는 먼저 인정해야 한다. 나의 욕망과 결핍의 정체가 채워질 성질의 것이 아님을... 더 나아가 아이를 이용해 채워질 수 없는 것임을... 그 다음 내가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믿고, 안달하는 여러 조건들이 실제론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이제 스스로 질문을 던질 때가 왔다.  


"우리 아이의 그리고, 나의... 근원적 결핍과 욕망을, 모조리 채우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아이의 결핍과 욕망을 해결해줄 수 없다는 의미는 결코 무력함의 인정이 아니다. 그것은 엄마 아빠도 아이와 다를바 없는... 인생이라는 이야기의 여행자임에 대한 깨달음이다. 타인이 만들어낸 욕망을 욕망하며 살지 않고, 깨어있겠다는 결심이다.


저 너머 무지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주인공은... 그러니 아이보다 언제나 엄마 아빠가 우선이다.

엄마 아빠가 힘찬 날갯짓으로 날아오를 때, 아기새도 날아오른다.


아이에게 다 해주지 못한 자책감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엄마 아빠가 자기 인생의 멋진 주인공으로 살아야 할 이유다.




라캉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통합된 주체를 '나는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는 식으로 바꾼다. 바라보기만 하는 '나'가 아니라 보여짐을 당하는 '나'도 있다는 주체의 객관화이다...


보여짐을 모르는 주체는 왜 위험한가. 그것은 아직도 거울단계에 있는 주체이기 때문에 대상을 실제로 믿고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고착에서 벗어나 대상이 허구임을 깨닫고 다시 또 연기된 대상을 향해가는 것,
대상으로부터 탈출하는 것,

끊임없이 대상에서 벗어나는 '반복'없이 삶은 지속될 수가 없는 것이다.
<자크라캉 욕망이론, by 권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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