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의 원전에는 무슨 내용이 있을까?

칼 융의 심리유형

by 뮤즈노트



전에는 '너 혈액형이 뭐야?'를 물었다면 요즘은 '너 MBTI 해봤냐?'를 묻는다. 악수를 나누며 상대의 온기를 파악하듯 마주한 사람이 대략 어떤 성격인지 파악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혈액형 성격 구분법이 우생학적 기원을 갖고 있고, 인간의 성격이 4가지뿐이라는 점에서 불신을 쉽게 초래하는 데 반면, MBTI는 4X4, 총 16가지의 유형을 갖고 있고 그 유명한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 기반한다는 데서 혈액형보다는 더 신뢰감을 준다.


MBTI는 모녀 관계인 브릭스와 마이어스가 개발한 유형별 지표(Myers-Briggs-Type Indicator)의 줄임말이다. 이 두 사람은 칼 융의 '성격유형'이라는 책을 근거로 삼아 분류를 시도했다. 현재 MBTI를 치면 나오는 아래 서비스의 경우에는 MBTI 분류법에 더해 성격과 학업의 관련성을 연구하는 방법론으로 사용된 '성격의 5 요인 모델'(Big Five personality traits)을 활용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MBTI 검사는 무료지만, 기업체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직원 간 궁합이나 개인 MBTI별 조언 위주의 프리미엄 서비스는 유료로 수익을 만들고 있다.


https://www.16personalities.com/ko/%EB%AC%B4%EB%A3%8C-%EC%84%B1%EA%B2%A9-%EC%9C%A0%ED%98%95-%EA%B2%80%EC%82%AC


위에서 말했다시피 MBTI의 원조는 칼 융의 심리유형이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분석심리학의 창시자, 집단 무의식, 프로이트의 짝꿍처럼 붙어 다니는 칼 융이 쓴 책은 무슨 내용일까?


일단 유명한 학자가 쓴 책이 심심풀이 땅콩처럼 쉬울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이 책은 심리 유형 분야에선 가장 유명한 책 중에 하나이니, '너 INFJ지? 꽤 재밌고 복잡한 친구로구만...'같은 쉬운 설명은 기대해선 안된다. 칼 융은 의사로서 다양한 임상 사례를 연구한 과학자인 동시에 동서양 철학과 신화, 종교를 깊이 연구한 최정상급 인문학자이기 때문이다.


칼 융은 19세기와 20세기에 걸친 삶을 살았다. 당연히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시대적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그 시기는 인간의 주인이 주체성과 의식, 이성이란 생각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을 때였다. 이 시기의 사상가들을 흔히 구조주의자라고 부른다.


인간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생각을 할 때, 그것은 무의식, 경제적 계급, 문화, 이데올로기 등 인간 사회를 지배하는 구조의 영향 아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모종의 구조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지,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지배한다고 보지 않았다. 이 책에서도 칼 융은 집단 무의식을 심리 유형과 연관시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은 언제나 인간의 전체 역사를 안고 다닌다.
그 사람의 구조안에 인류의 역사가 쓰여있는 것이다.

목차부터 질리게 만드는 그의 탐구욕을 보라


당연히 칼 융은 당시의 지식인들이 분류한 성격유형도 체계적으로 검토하며 책을 쓴다. 대표적으로 근대를 문 닫고 현대를 열어젖혔다고 평가받는 니체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니체에 대해선 이 글 이전에 읽은 푸코의 감시와 처벌 참고)


칼 융은 니체가 이야기한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적 상태로부터, 이 책의 주요한 구분법이라 할 수 있는 외향과 내향, 이성적 유형과 미학적 유형, 사고 및 감정과 직관 및 감각의 구분을 적용하며 이끌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과를 꼽으라면 외향과 내향의 구분을 들 수 있다.


칼 융이 보기에 대개 사람들은 두 가지 종류로 구분되며, 다른 학자들도 이름만 다를 뿐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즉 누군가 내 바지에 물을 엎질렀을 때, '바지를 세탁소에 맡겨야 하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나는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 걸까?'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관심이 대상으로 쏠린다면 외향이고, 관심이 자신의 심리 작용으로 쏠린다면 내향이 된다.


그러나 내 생각에 칼 융 심리 유형의 성과는 다른 곳에 있다. 외향과 내향이라는 이원론적 구분법은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성격 구분은 니체처럼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으로도 해석이 가능하고, 이성과 감각, 물자체와 현상 세계, 현실과 이데아, 경험주의와 합리주의 등으로도 어느 정도 치환이 가능해 보인다. 이러한 이원론적 사고의 틀은 역사를 들여다보면 언제든 발견될 수 있다.


반면, 그의 성격유형이 갖는 재밌는 성과는 첫째, 유형 구분에 있다기보다는 음과 양의 이치처럼 이 두 가지 성격이 서로를 견제하고 보완하고 있다는 통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괴테가 심장의 확장과 수축의 원리로 세상을 바라본 것처럼, 외향과 내향의 심리활동이 규칙적으로 교체됨으로써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했다. 외부 상황과 내적 성향에 따라 조금씩 한쪽의 메커니즘이 우세하게 보일 뿐 절대적인 유형은 없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동양의 음양의 원리, 조화와 보상의 균형을 떠올리게 하며, 다양한 정신적 질병도 그 근저에는 깨진 균형을 회복하려는 무의식적 보상 행위란 측면으로 이해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두 번째 통찰은 외향과 내향에 더해 사고, 감정, 감각, 직관 유형을 만들면서도 이를 주요 기능과 보조기능으로 구분해 낸 것에 있다. 성격 유형이 TS(사고 감각형)나 FS(감정 감각형)으로는 사용될 수 있어도, T의 반대인 F가 함께 사용되는 TF(사고감정형)은 안된다는 것이다. 외향적이면서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사고형과 감정형이 똑같은 수준에서 이뤄지는 개인이 있다고 해도 이는 미발달 한 상태를 의미할 뿐이라고 보았다. 이 덕분에 INFJ처럼 순서와 위계에 따라 성격을 설명하는 지금의 MBTI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물론 당시 그가 책에서 다루고 있는 성격분석은 J/P가 빠져서 2X4, 총 8개 성격유형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이러한 성격유형을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사회적 심리로 파악하는 데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외향적 사고유형을 설명하면서 과거의 물질주의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어난 신지학적 사고를 비판한다. 텔레파시라든가 영체의 충돌 같은 신지학적 사고들은 모든 것을 호르몬 분비나 뇌구조로만 설명하려는 물질주의 사고만큼 위험하다고 바라본다. 즉 개인의 심리 차원뿐 아니라 개인들이 모여 만들어낸 집단적, 사회적 사고의 차원까지 해당 이론을 적용하려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통찰을 그의 주요한 성과로 꼽은 이유는 뭘까? 과학적이어서일까? 아니면 MBTI를 만들 수 있어서일까? 모두 아니다.

MBTI는 재밌지만 칼 융이 보면 깜짝 놀라서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칼 융의 이론은 스스로도 인정했듯이 엄밀성 측면에서 과학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의 심리학 이론들이 DNA로 물려받은 유전적 기질과 성격을 구분하는 데서부터 헷갈려하듯이 누군가의 성격을 단정 짓거나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칼 융의 심리유형이 빛을 발하는 부분은 스토리텔링을 통한 인간 심리를 그려내는 좋은 도구가 된다는 점이다.


스토리텔링의 캐릭터는 크게 주인공과 악당으로 나뉠 수 있고, 이를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로 나누기도 한다. 칼 융의 이론처럼 이 둘은 하나의 사안에 대해 서로 다른 관점을 지닌 인물로 표현이 된다. 나쁘게 말하면 적대적이지만 좋게 말하면 상호보완적인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덧붙여 사고와 감정, 감각과 직관의 주요 기능과 보조기능의 위계는 캐릭터 표현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어벤저스나 오션스 일레븐처럼 같은 목표를 향해 모인 캐릭터들도 서로 다르게 그려낼 수 있도록 해준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악당 혹은 영웅이 출현하게 된 사회적 심리가 영화 혹은 소설 속에서 그려지면서 콘텐츠는 풍부한 사회적 비유와 상징을 획득하게 된다.


결국 칼 융의 심리 유형은 MBTI라는 재미로 보는 성격 테스트로서도 충분한 의미를 갖겠지만 조금 더 심오하게는 우리가 즐기는 콘텐츠 작법에 끼친 영향에서 그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배트맨과 조커, 어벤저스와 타노스,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의 성격 유형을 재미 삼아 구분하다 보면 깜짝 놀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참, 그나저나 어떤 회사에서는 MBTI로 사람을 가려 뽑는다기도 한다는데 그건 구직자에게 오히려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회사는 믿고 거를 수 있으니까요.


인간이 편의적인 몇가지 유형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믿는 회사가 종업원을 노동기계가 아닌 인간적으로 대우해줄리는 없고, 경험을 통해 한 인간이 발전하거나 다듬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고 믿는 회사에서 개인적 성장이 될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만 모여있는 조직은 온갖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회의 역동적인 흐름과 동떨어진 채, 궤도를 이탈한 불꺼진 인공위성처럼 표류하게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일하면 안될 회사를 걸러내는 지표로서의 MBTI라니, 이 역시 칼 융의 의도치 않은 공로로 돌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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