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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May 12. 2022

드라마가 영혼의 구원을 말한다고? 나의 해방일지

나는 아직 당신이 괜찮아요

대학 때 읽은 드라마 작법 책에서 '드라마는 대중의 욕망과 판타지를 만족시켜야 한다.'라는 글을 읽은 적 있다. 요즘 사람들의 판타지라면 무엇일까?


아마도 내가 온전히 이해받거나 사랑받는 것이 아닐까?


각박한 사회를 사는 우리는 작은 친절에도 두려움이 앞선다. 이 사람이 나를 물로 보고 호구로 삼진 않을까, 뒤통수를 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탁 놓고 마음을 주기가 힘드니 인간관계가 괴로워진다. 방어와 수비에 익숙해지고 껍데기를 만들며 마음을 자꾸 거래하기 시작한다. 내가 해준 만큼 너에게 받기를 원한다. 제대로 받지 못하면 마음을 닫게 되고 관계가 피로해진다.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에 등장하는 구 씨는 이 모두를 경험했다. 유흥업소 사장이었던 그는 함께 살던 여자를 잃고 그녀의 오빠에게 업소마저 접수당한다.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그는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기도 어려울 정도로 지쳐 산포 마을로 흘러 들어온다.


반면, 산포 마을 염 씨 가족의 막내 미정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사랑하던 남자에게 돈을 뜯기고, 그 남자는 전 여자 친구에게 가버렸다. 회사에선 능력 없는 상사의 희생양이 되어 갑질을 당하고 산다. 말 그대로 호구의 삶을 살고 있다.


드라마는 이 두 사람이 만난다면?이라는 물음으로 시작되는 이야기에 가깝다. 감정과 관계의 막장에 도달한 두 사람은 각각 어떤 선택을 할까? 과연 그들의 삶은 채워질 수 있을까?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구 씨는 이름조차 알리지 않고, 염 씨 가족일을 도우며 인간관계를 최소화한다. 그가 겪은 인간관계는 모두 질림이고 파국이었다. 곁에 있던 여자마저 뻔한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하는, 다른 도시인처럼 껍데기로 치장된 삶을 살았다. 껍데기 속에 자신을 꽁꽁 숨긴 채 가장 가까운 사람인 구 씨에게조차 속내를 들키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과는 죽음이었다. 고양이가 죽어도 며칠을 슬퍼하던 여린 구 씨는 여자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 모르는 그는 자신을 들개처럼 방치한 채 그저 술로 하루를 보낸다.  



미정은 그런 구 씨에게 자신을 추앙하라고 말한다. 구 씨는 '추앙'이란 단어를 검색해본다. respect, worship 등의 의미가 나온다. 존경과 숭배. 지극히 종교적인 이 단어는 사랑과 다르다. 사랑은 이기적이다. 어쨌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고백을 하고, 내가 베푼 사랑만큼 받을 것을 기대한다.


반면 추앙은 나의 결심이며 절대적이며 이타적이다. 미정은 구 씨에게 추앙을 말하고, 자신도 구 씨를 추앙한다면 둘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며 당돌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상대의 들개 같은 삶을 알게 되었어도 괜찮다, 더 가보자고 말한다.


이 순간 미정에게 구원자의 이미지가 겹쳐지며 떠오른다. 지하철안에서 느닷없는 미정의 외침에 산포마을에 구 씨가 내리게되고 그 우연같은 필연은 구씨의 목숨을 구했다. 모든 걸 잃고 마을을 들개처럼 떠돌 때 마주친 미정의 모습 성모를 연상 시듯 그려진다.


미정의 언니가, 역사책에서 본 남편의 떨어지는 머리를 받아낸 여자의 이야기를 하고, 성모 마리아가 아들 예수의 못 박히는 전 과정을 함께 했다는 이야기를 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구원은 주고받는 사랑에서 오지 않는다. 온전히 '받는 여자'가 됨으로써, '받아냄'으로서만 구원이 있다.



우리의 판타지는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사람, 주는 것 이상 혹은 주는 만큼이라도 받는 사랑이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과감하게 구원은 내가 먼저 받아내는 것이 답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가능케 만드는 것은, 사랑을 퍼주기만 하면서도 인간을 한없이 긍정하는 동네 언니 현아의 말처럼, '결심'이다.


미워할 이유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랑할 이유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기에 한 존재를 온전히 추앙하는 것은 나의 결심에 달렸다고 말한다.


미정은 베풀고 받아내면서도 세상 모든 사랑을 원하는 현아에게서 한발 더 나아가기로 한다.


누군가 비어버린 감정의 우물을 가득 채워주길 바라는 욕망을 내려놓고, 곁에 있는 누군가를 채워주기로 결심한다.


나는 아직 당신이 괜찮아요. 더 가봐요

그 결심으로 타인의 존재를 오롯이 받아내는 삶만이 당신을 채워주고 구원하며 해방시키리라는 걸, 놀랍게도 TV 드라마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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