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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Dec 09. 2021

카사블랑카

미션 임파서블과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하루키는 어떤 책을 읽기에 딱 맞는 시간과 장소가 어딘가에 존재하는 법이라고 얘기했다. <카사블랑카>는 아마도 그런 어딘가가 아닐까? 북아프리카 모로코 카사블랑카에는 릭의 카페 아메리카나가 있다. 밖은 전운이 감돌아도 카페에는 샘의 흥겨운 피아노 소리가 흐르고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턱시도와 드레스로 멋을 낸 신사숙녀는 버번위스키와 칵테일을 마시며 주사위를 굴린다. 마치 후회라곤 전혀 없는 사람들처럼.


영화 <카사블랑카>는 시니컬한 매력의 '험프리 보가트'와 톱니바퀴처럼 정치하게 떨어지는 멋진 이야기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영화를 명화의 반열에 올린 것은 '일사'란 캐릭터에 있다. '잉그리트 버그만'은 그녀의 아름다움이 최고에 달했을 때 '일사'를 연기했다. 흑백 화면을 뚫고 나오는 그녀의 아름다움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전혀 퇴색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일사'가 갖는 묘하면서도 강력한 매력은 수많은 캐릭터 창조의 전형이 되었다.


<미션 임파서블 : 로그네이션>에 등장한 '일사'와 하루키의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의 여주인공 '시마모토'가 그렇다. 이 둘은 모두 <카사블랑카> 일사가 품고 있는 신비로움과 수수께끼의 아우라를 안개처럼 몸에 휘감고 있다.


미션 임파서블의 '일사'는 MI6와 신디케이트를 오가는 스파이로, IMF에 속한 에단 헌트 입장에선 그녀가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 모르는, 혼란스러운 존재로 그려진다. 게다가 이름뿐 아니라, 외모와 스타일 역시 잉그리트 버그만과 유사하도록 연출하고, 주요 사건의 배경을 카사블랑카로 그려내며 <카사블랑카>를 노골적으로 오마쥬 한다.   

일종의 로맨스 소설이라고 할만한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선 더욱 구체적이다. 남자 주인공은 댄디한 옷차림을 갖추고 자신의 원칙에 따라 솜씨 좋게 재즈 바를 운영해나간다. 주로 칵테일과 양주를 파는 고급 술집이고 수준급 연주자들이 공연을 한다. 결혼한 그에게 접근한 여자는 '시마모토'. 어린 시절 친구지만 남자가 깊이 사랑했던 여인이다. 그녀는 늘 예고 없이 나타났다가 몇 달간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남자는 그녀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왜 지금에서야 나타났는지, 또 어디로 사라지는지 알지 못한다. 소설의 말미에 남자는 밴드에게 <스타 크로스드 러버스>를 연주하지 말라고 한다. 그러자 피아니스트가 말한다. "어쩐지 영화 <카사블랑카> 같은데, 사장님" 그리고 그는 가끔씩 남자를 보면 농담처럼 <카사블랑카>의 주제곡, <애타임 고스 바이>를 연주한다.


공장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쏟아지듯 만들어지는 수많은 영화와 소설 가운데 '일사'처럼 매력적이고 강렬하며 신비로운 캐릭터는 드물다.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기 싫다며, <카사블랑카>에 남겠노라 애원하는 '일사'의 진심이 어떤 것인지 여전히 우리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릭(험프리 보가트)은 그녀를 남편과 함께, 억지로 비행기에 태워 보내며 말한다.


"maybe not today, maybe not tomorrow, but soon and for the rest of your life"

"어쩌면 오늘, 어쩌면 내일은 아닐 수 있어. 하지만 곧, 아니 남은 삶 전체를 후회하며 보낼지 몰라"


하지만 릭은 확신할 수 있었을까? '일사'가 그에게 남긴 마지막 사랑의 진실을? 다만 릭이 신사이자 현명했던 점은 그가 그녀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결정에 있다. 그는 그녀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그 지점에서 나머지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미션 임파서블의 '일사'도, 국경의 남쪽의 '시마모토'의 정체도 우린 알 수 없다. 다만 그녀들은 사랑한다고 말했고 상대방은 그것을 믿기로 결정했을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갈구하는 진심이나 사랑도 확신이 아닌 결심으로 성립되는 것이며 나머지는 운명에 맡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쿨한 태도임을 '일사'는 알려주는 게 아닐까?


우리가 해야할 일은 정해져있다. 이제 '일사'는 떠나갔다. 남은 것은 카사블랑카에 있는 릭의 카페로 가는 것뿐. 고급 여송연을 입에 물고, 마시지도 않을 칵테일을 피아노 위에 올려놓는다. '샘'에게 '애즈 타임 고즈 바이'를 부탁하고 결심으로 만들어진 사랑을 추억하며 카사블랑카의 밤을 보내면 된다. 마치 후회라곤 전혀 없는 사람들처럼...


https://youtu.be/8SwM9L061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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