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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Jul 11. 2021

젊음의 무신경함, 그리고 선물로서의 상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젊음은 특정 시대를 뛰어넘어 공유되는 특징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말대로 그것은 무신경함이다. 무신경함은 이기적이라거나 부주의함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가끔 강의에서 마주치는 대학생들, 회사에서 마주하게 되는 무신경한 젊음을 보면 역시 그 시절의 내 젊음이 떠오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무신경하게 반응하고 상처를 준 젊음을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청춘의 특징이 과연 나쁘기만 한 것인가? 또 그 무신경함이 낳은 잦은 실연과 실패, 우리가 상처를 주고받은 기억들이 미안하고 자책할만한 일인가? 여기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젊음에 남겨진 보편적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에 앞선 물음에 진지한 해석을 전해준다. 


영화 속 우에노 주리의 말처럼, 별로 훌륭하지도 않고 평범하고 무신경한 남자 주인공은 걷지 못하는 장애인 여자를 만나게 된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만남은 연민으로 이어지고 이내 사랑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 작은 장롱 속에 틀어박혀 스스로를 바닷가 조개껍데기처럼 방치하던 여자는 처음으로 깊은 심연에서 벗어나 무서운 호랑이와 같은 현실의 뭍으로 올라선다. 


당연히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다.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비겁함이 부끄러워 엉엉 우는,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만나지 말아야지 다짐하는 깊은 상처를 갖게된다. 그 상처는 못나고 못됐었고 무신경했던 젊은 날의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되어 괴롭힌다. 더 잘해주지 못했던 자신을 책망하며 살게 된다. 그리고 그런 괴로움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기에, 다짐하듯 어른이 된다. 누군가에게 현실의 경계를 뛰어넘지 말라고 충고하고, 상처를 받지 말라고 말하는 어른이 된다. 


하지만 조개껍데기 안에 틀어박혀 있던 누군가를 뭍으로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젊음의 무신경함 때문이기도 하다. 조제에게 여느 젊음처럼 연적이 찾아와 뺨을 때리기도 하고, 손가락을 스치는 설렘을 선물한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무신경함이다. 


실제로 영화 속 젊은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는다. 남자 주인공은 어젯밤 사랑을 나눈 여자 앞에서 새로운 연인인 우에노 주리를 만나고, 우에노 주리는 장애를 갖고 있는 여자에게 찾아가 뺨을 때린다. 놀랍게도 이 젊음의 무신경한 상처 주고받기는 매우 일상적이어서, 마치 어느 부족의 성인식이나 놀이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는 룰로서의 공정함과 평등함까지 지닌 듯 하다. 


특히 우에노 주리가 연적이 된 조제를 찾아가 뺨을 때리는 장면이 그렇다. 주리가 조제를 때리자 조제는 그녀를 쏘아보며 독설을 날리다가 비좁은 카트에 담긴 채로 손을 든다. 우에노 주리는 머뭇거리다가 그녀에게 고개를 숙여 얼굴을 내밀고 순순히 뺨을 맞는다. 사랑을 두고 상처를 주고받는 순간, 둘은 장애인과 일반인이 아니라 대등한 연적의 관계로 마주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집요하게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어른의 싸움과는 전혀 다른 공평함과 공정함이 그 안에 자리한다. 



그리고 그렇게 어느 평범한 젊음처럼 상처를 주고받게 된 조제는 성장한다. 남자와 가슴 떨리는 연애도 해보고, 연적의 뺨을 때리기도 하고, 여느 연인처럼 부담이 돼 도망치는 상대의 뒷모습을 바라본 젊음은 성장한다. 어른이 된다. 평생 심연에 잠겨 물고기를 바라보던 조제는 누군가 밀어주는 카트에 무기력하게 몸을 맡기고 있던 삶에서 사랑하는 남자의 등에 업히는 날을 거쳐 전동휠체어를 타고 장을 보고 가끔은 헤어진 연인을 추억하는 삶으로 나아간다. 장애라는 극적인 묘사로 그려지긴 했지만 장애인 영화가 아닌 청춘을 그린 성장영화인 이유도 그 지점에 있다. 우리는 모두 평범한 일반인인 동시에 장애를 가진 존재로서 젊음을 살아낸다.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고민하던 젊은 날의 추억도 긴 삶과 성장의 일부분이란 깨달음. 우리는 그러한 후회와 잘못, 그리고 상처를 남기며 어른이 되는 것이다. 


내 몸에 남겨진 상처가 유난히 쓰라린 날, 

그것이 젊음이었다고 

아무 의미 없는 삶이란 곡예에 

어쩌면 상처의 모습으로밖에 남겨질 수 없었던 선물이었노라고 

영화는 조용히 말을 건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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