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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Jun 10. 2021

아라곤이올시다

반지의 제왕

MBTI를 딱히 신뢰하는 건 아니지만, 두 번 정도 테스트를 했는데 한결같이 INFJ가 나왔다. INFJ의 성격을 묘사한 걸 들여다보고 있자니 아라곤이 그런 성격이란다.


<반지의 제왕>은 소설, 영화로 만들어진 픽션인데 거기 주인공 성격도 MBTI가 있어? 란 합당한 의문을 뒤로하고 어쨌든 주인공을 닮았다니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뭐 딱히 믿는 건 아니지만... 같은 느낌으로 아들과 <반지의 제왕>을 최근 다시 봤다.


영화에서 아라곤의 성품은 정의롭고 용맹하고 또 순수했다.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평면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영웅이라고 하는 풍모를 다 갖춘 데다 딱히 결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가 농담을 즐겨하지 않는 성격이란 것. 영화에서 엘프 꽃미남 레골라스와 김리는 코믹 콤비처럼 찰떡 지게 농담을 주고받는다. 반면 아라곤은 가끔 무심한 표정으로 농담을 던지긴 하는데 뭐랄까... 스탠드 코미디를 할 때 관객이 아무도 안 웃을 때를 대비해서 그건 농담이 아니었고... 란 멘트를 준비한 표정이랄까.

심각한 아라곤, 옆을 보라고 좀

아라곤은 영웅이니까 당연히 훌륭한 공주님들이 그를 좋아한다. 아슬아슬한 삼각관계가 형성되려는데 아라곤은 또 찬물을 끼얹는다. 로한의 공주 에오윈의 고백을 단박에 자르는 건 그렇다 쳐도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아 실망했다. 공감능력이 뛰어난 내 입장에서 보자면 조금 아파해주는 것이 고백한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은데...


엘프의 공주를 너무 사랑해서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딱히 그리워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지 않다 보니 이 친구는 반지 없애는 데 몰입하는 워크홀릭 같아서 또 매력이 반감되어 버렸다. (요즘 그런 유형의 남자는 연애하기 힘들 텐데... 중간계에 있어 다행이야 아라곤.)


아라곤의 구애 거절 이유를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엘프 공주님의 자태


이참에 영화에서 공감되었던 캐릭터를 생각해보았다. 나였어도 비슷하게 행동했을 텐데 싶은 INFJ형 캐릭터. 허공에의 질주에 나오는 리버 피닉스가 비슷하다.


물론 내 외모는 하비에르 바르뎀 류에 가깝지만(실제로 최근에 누군가가 바르뎀과 닮았다고 했는데, 좀 더 솔직해지자면 이미 다른 사람에게 한번 들었던 말이다), 리버 피닉스의 선택과 생각은 오롯이 이해가 되는 측면이 있었다.


그리고 슬프다. 영화 속 캐릭터일 뿐이지만 태생적으로 슬픔이가 키를 잡고 도통 자리를 내주지 않는 마음을 타고난 사람이 있다. 그런 인간들은 또 묘하게 그런 인간을 알아본다. 저 친구는 슬프구나. 위로를 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동료의식 정도는 갖게 된다.


허공에의 질주, 비창 2악장을 치는 리버 피닉스를 만날 수 있다


MBTI처럼 정형화된 성격 수십 가지 정도의 형태로 인간 분류가 가능한가... 란 또 합당한 의문을 뒤로하고,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의 세계관은 어쩌면 종족이나 국가로 표현되었을 뿐 그가 만나고 알고 있는 여러 인간 성격의 유형들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게 아니었을까란 생각에 미치게 된다.


반지가 권력, 인간 욕망의 상징이었듯 로한, 곤도르, 오크, 드워프, 엘프 등의 종족은 톨킨 버전의 MBTI의 캐릭터 분류인 것이다.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사자나 수달의 성격은 그 종안에선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한데, 인간종은 참으로 다양하다. 즉 누군가 이 세상을 아주 재밌게 만들고 싶어 그런 성격유형들을 조합해 낸 건 아닐까? 란 별로 합당하진 않지만 해볼 법한 의심을 하게된다.


그렇게 리버 피닉스의 슬픔을 가진 바르뎀은 턱을 괴고 이런저런 끝없는 생각에 잠기고만다.


하비에르 바르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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