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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May 30. 2022

지옥 같은 인생을 살아내는 법

나의 해방 일지

영화 <컨택트>의 원작 소설을 쓴 테드 창의 단편 중 <지옥은 신의 부재 : Hell is the Absence of God>란 작품이 있다. 지옥이라면 가장 먼저 떠올릴 단테의 <신곡>에서는 지옥을 다양한 고통이 층별로 산재하는 계단식 영농 스타일로 묘사한다. 테드 창의 지옥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평범하게 자신의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똑같다. 다만 신의 사랑, 신의 손길을 느낄 수 없을 뿐이다.


단테는 지옥을 상세하게 그렸지만 천국은 그렇지 못했다. 아마도 현실이 지옥을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지옥은 감탄과 경외감, 기적이 없는 세상이다.


근대 이후, 신이 사라진 세계를 어떻게 살아갈지는 철학자는 물론 인간 모두의 관심사였다. 니체는 신은 죽었으니 모든 도덕과 예속을 깡그리 버리고 즐기듯 살라고 말했다. 알베르트 카뮈는 <시지프스의 신화>를 통해 우리가 부조리한 형벌을 받고 있음을 의식하고 고통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누릴 때, 역설적으로 신에 대한 진정한 반항이 되리라 생각했다. '메멘토 모리' 늘 죽음을 기억하고 죽기 직전의 사람이 되어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삶을 선택하라는 전통적 조언도 있다.


수많은 인생론이 존재하는 이유는 세상에 사랑과 기적의 모습을 한 신을 점점 느끼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지옥은 신의 부재'란 그런 뜻이다. 우리는 저마다의 지옥에서 발버둥 치고 있다. 이곳에 과연 구원과 해방은 있을까?

무의미한 노동과 삶에 시달리는 시지프스같은 인간에게 구원이란 무엇일까?


<나의 해방 일지>에서 그려지는 지옥은 정적이지만 현실적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단테의 지옥처럼 등장인물은 점점 깊은 심연으로 빠져들며 허우적댄다. 유일하게 삼 남매가 의지하던 어머니의 죽음. 휘영청 밝은 달과 풀벌레의 위로조차 허락하지 않는, 고향을 떠난 서울살이. 주인공 미정에게 빚만 떠안기고 전 여자 친구에게 도망간 뻔뻔한 구 남자 친구의 결혼 소식, 회사 빌런으로 인한 퇴사, 그로 인해 무너진 디자이너 경력. 오빠인 창희는 사업실패로 인한 빚 갚기에 허덕이고, 언니 기정 역시 연인 가족의 반대는 더욱 심해지기만 한다.


인간이 좋아하는 스토리텔링의 법칙에는 반드시 변화라는 법칙이 있다.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문제와 상황이 있다면 마무리에선 문제를 일으킨 빌런은 통쾌하게 보복당한다. 이야기 초반부에 묘사된 최악의 상황은 밧줄을 타고 내려온 신에 의해 정리되고 음(-)에서 양(+)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연극 도중 결말에 이르러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신, '데이어스 엑스 마키나(도르래 기계를 타고 내려온 신)'이라는 극작 연출법이, 그래서 2천 년간 유행했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도 신이 등장한다면 무조건 해결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이러한 극작법의 유행을 비판했다.


하지만 신이 없는 세계를 사는 우리는 그런 스토리텔링은 허구일 뿐이라고 믿는다. 신이 없는 세상의 다른 이름은 변화가 없는 정적인 지옥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막이 내려오면 지옥의 쩍 벌린 입구가 눈에 들어온다. 빌런은 아무리 미워해도 반성 없이 한결같은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 지긋지긋한 생활을 벗어나려 로또를 사지만 결과는 언제나 꽝. 지옥은 나의 감정 따윈 개의치 않는 듯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잘만 돌아가고 있다.


<나의 해방 일지>의 미덕은 지옥이란 상황이 일순간에 변해, 천국이 되는 형태로 묘사하는 작법을 기한 지점에 있다. 이야기는 정적인 지옥으로서의 현실을 그대로 그려냄으로써 사실성을 획득한다. 그래서 묻게 된다. 지옥을 사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해야 해방이 될까?


답은 간단하다. 억지로 상황을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한 사람만을 위한 성역을 만들어 둘 것. 그만은 어떤 상황에서도 받아줄 것. 떨어진 남편의 머리를 받아낸 여자처럼 그를 받아줄 것. 한 살짜리 아이처럼 업어주고 울고 떼써도 용서해주고 쓰다듬어 줄 것.


미정은 그런 각오로 구 씨를 받아낸다. 수없이 간절한 순간에 구 씨가 없었어도 미정은 그를 탓하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이 된 구 씨에게 술을 끊으라며 변화를 종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침마다 몰려와 머릿속에서 악다구니를 쓰는 수많은 인간군상들과 그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술을 마신다는 구 씨에게 말한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사람한테 그렇게 웃어. 그렇게 환대해


구 씨는 결국 의형제를 맺을 정도였던 현진이 도박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치고 간 순간, 미정이 말한 뜻을 깨닫는다. 그리고 평소 같으면 보복을 하거나 죽든 말든 상관 않고 연을 끊었어야 마땅할 현진에게 전화 메시지를 남긴다.  


환대해줄게. 살아서 보자.


지옥을 사는 방법은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아는 단순한 깨달음에 있다. 지옥의 시민인 우리는 괴로워서 나의 욕망을 떨칠 수 없어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누군가의 머릿속에 아침마다 몰려가 악다구니를 쓴다. 하지만 아무리 떼쓰고 울어도 나를 받아줄 따뜻한 엄마의 등이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천국은 얼핏 모습을 보인다.


우리는 설레고 감탄하는 5분을 모아 하루를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어린아이가 구 씨를 기다리기 위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준 7초에 천국은 찾아온다. 로또 당첨이 아니라 하찮은 오백 원짜리 동전이 하수구 구멍에 빠지지 않는 것도 신의 사랑이 임재한 기적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걷는 길에 눈이 내리는 것은 축복이다.



내가 사랑하기로 결심한 누군가에게 한 살짜리 아이처럼 응석 부리고 업힐 수 있는 엄마의 등을 내준 순간, 지옥의 무서움이 없는 성역을 마련해준 순간, 신은 찾아와 잠깐 동안 감탄과 기적의 천국을 보여준다. 그 천국을 흘끗 본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자꾸만 나와 다른 너를 향해 그 천국을 보여주려 한다.


미정이 전 남자 친구의 성추행 위기를 구해준 것처럼, 구 씨가 현진을 구해준 것처럼, 어느 때든 돌아와도 괜찮다고 말하며 방황하는 현아를 구한 창희처럼, 기정이 '나는 헤어지지 않는다.'란 선언의 보답으로 목 떨어진 장미를 선물 받은 것처럼.


지옥에는 전 인류를 구하는 위대한 희생 따윈 없다.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따위도 없다. 일순간에 반성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빌런도 없다. 그 기대 역시 우리를 지옥으로 이끄는 욕망이다. 7초의 설렘이 모인 5분, 하수구에 떨어지지 않은 5백 원의 기적으로 사는 지옥살이를 익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역설적으로 내 안에 한 사람을 위한 천국과 성역을 만들어야 한다. 마음껏 울 수 있는 공간과 업힐 수 있는 등을 내줘야 한다.


천국은 한 살짜리 아이의 천국인 동시에 나는 천국을 품은 사람이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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