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글 초안을 출판원고로 고쳐쓰기
본격적으로 출판원고를 작성할 때, 브런치에 써놓은 초안 글을 그대로 활용하여 싣는 경우는 적습니다. 그 이유는 브런치 글은 작가가 자유롭게 썼지만 출판원고는 정식 출간을 위해 완성도를 높여야 하고 출판사 편집자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상 독자가 어린이에서 성인으로 바뀌었을 수도 있고, 글의 주제와 콘셉트도 대중성과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수정되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브런치에 써놓은 초안은 반드시 출판원고로 바꾸는 작업이 필수적입니다. 이때 출판원고는 아래 내용에 유의하여 작성해야 합니다.
출판사와 합의된 콘셉트
레퍼런스 확인
윤리적이고 개인적인 동기와 목표
<철학자의 말하기 수업>의 경우, 브런치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을 대상 독자로 하여 작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출판사와 회의를 통해 대상 독자를 대학생 및 일반인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독자가 바뀌면 글의 내용은 물론 구조, 어휘, 개념, 문체까지 새로 써야 합니다. 작가 입장에서는 꽤 부담스럽지만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책 출간은 작가만의 작업이기 이전에 출판사가 함께 하는 상업적인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상업적이라고 하면 흔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편집자의 방향 제시를 간섭으로 여기거나 작가의 권한을 침해받는다고 여겨 힘들어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나의 글을 돈을 주고 산다는 건 엄청난 일입니다.
우리나라에 글을 못 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제빵을 하거나 반도체를 조립하는 전문성 있는 기술과 달리 글쓰기는 모두가 할 줄 아는 범용 기술이기 때문이죠. 그런 점에서 책 출간은 마치 자전거 동호인 앞에서 유료로 자전거 타기를 보여주는 것과 닮았습니다. 어설프게 자전거를 탔다간 아무도 티켓을 끊지 않을 것이고, 돈을 냈더라도 낭비라고 생각하겠지요. 출판사가 티켓부스를 열기 전에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배우고 싶고 감탄할만한 자전거 기술을 잘 구성해서 집어 넣자고 작가에 제안하는 건 당연합니다.
이렇게 보면 출판사의 (상업적) 요구란, 돈을 벌기 위해 작가의 의도를 포기하란 뜻보다는 많은 사람이 만족할만한 좋은 글을 만들자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이것을 따를지는 작가의 선택이지만, 글을 돈 주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를 상기한다면 출판사가 제시하는 콘셉트에 대해 마음을 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합의된 콘셉트라면 최선을 다해 다시 써야 합니다.
에세이든 대중교양서든 책에는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정보는 정확해야 합니다. 그런데 상식 수준으로 익히 알고 있는 것조차 잘못된 정보일 때가 많습니다. 책을 집필할 때 저지르는 실수는 이 같은 잘못된 상식뿐 아니라 오래된 기억에 의한 착각, 출처가 불분명하나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오류 등을 그대로 인용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과 영국의 중산층 기준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검색해 보면 페어플레이, 약자 돕기, 주장과 신념 갖기 등을 적어놓은 글들이 많습니다. 공신력이 높은 신문기사나 칼럼에서도 쉽게 보이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라고 믿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는 실제론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입니다. 따라서 자료 조사할 때에는 반드시 원본을 확인하는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요즘은 검색서비스 대신 AI를 활용하여 정보를 검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에는 '레퍼런스를 링크로 함께 보여줄 것'이라는 프롬프트를 넣어서 해당 링크를 확인하여 AI가 꾸며낸 정보인지를 재확인해야 합니다. 또 과거에 이미 읽고 봐서 기억하고 있던 정보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원전을 다시 보면서 확인해야 합니다.
이미 쓴 글을 새롭게 쓰는 건 몹시 힘든 일입니다. 쓰는 도중에 슬럼프에 빠지거나 지칠 수도 있습니다. 이 시기를 잘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윤리적이고 개인적인 목표와 동기입니다.
<철학자의 말하기 수업>은 아이에게 철학과 글쓰기를 동시에 효율적으로 배우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서 연재한 글입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동기지만 그만큼 이해하기 쉽도록 지식을 연결하여 진심을 담아 쓰려고 최선을 다하게 되었죠. 작업 중 슬럼프가 찾아와도 '아이를 위해 좋은 책을 써야지'라고 마음을 먹게 되니 금세 다시 집중하여 책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출간 이후 책을 읽던 아이가 '이럴 땐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철학적으로 올바른 생각법이란 거죠?'라고 물으러 올 때면 흐뭇합니다. 그간의 노력이 보상받는 기쁨이 있습니다.
<일터에 관한 낯선 시선>은 회사에서 마주치는 갓 입사한 신입사원과 중년의 위기를 겪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필했습니다. 순수한 윤리적 동기가 있으면 글에 진심이 담기는 법이고, 번거로운 자료 조사는 물론, 퇴고 시에도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으며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책이 나오고 신입 직원에게 사인본을 선물을 했더니 얼마 뒤 제 자리에 엽서를 놓고 갔습니다. 진심 어린 감사 인사와 함께, '여행을 갔을 때, 함께 간 친구와 선배님 책에 나온 지침대로 앞으로의 회사 생활 및 인생 계획표를 만들어보기로 했어요...'란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책을 쓸 때, 유명 작가가 되거나 베스트셀러가 되는 꿈을 갖는 것도 좋지만, 책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과 작업의 태도를 만드는 건 윤리적인 목표, 순수한 개인적인 동기임을 기억하고 작업에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극히 상업적으로 보이는 자기계발서도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작품에는 '독자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윤리적 목표가 은은한 향기처럼 느껴집니다. 좋은 책은 좋은 목표와 동기에서 나옵니다.
지금 누구를 위해 글을 쓰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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