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도라와 가방을 쇼핑하다

가끔 필요한 사위 자랑용 아이템

by 뮤즈노트

글로벌 시대에 맞게 국제 커플이 많아졌다. 그래서인지 유튜브를 보면 우리나라에 놀러 오신 외국인 시부모님이나 장인 장모님을 대접하는 콘텐츠가 꽤 많다. 오랜만에 자녀, 손자 손녀와 만나서 순수하게 기뻐하시는 그들을 보면 흐뭇한 마음이 든다. 자연스레 감정 이입이 되면서 깜짝 선물이라도 드리면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된다. 댓글들 역시 "좋은 선물 해드리세요!", "휴대폰 선물이라면 갤럭시 최신 기종이 좋죠!"라는 효심 어린 반응이 많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잠깐, 나도 장인 장모님이 계시잖아!


외국인 배우자는 아니지만 외국인 학생에게 '우리 엄마랑 닮으셨어요'라는 말을 듣곤 하는 아내가 있고, 아내를 살뜰히 키우신 장인 장모님도 계시다. 프랑스나 일본에서 오신 남의 장인 장모 선물을 참견하는 대신 우리 장인 장모님께 선물을 하면 되잖아! 란 깨달음을 얻게 됐다. 깨달음이란 말을 이런 때 써도 좋을지 미안할 지경이다. 미안해요 깨달음. 내가 그렇지 뭐.


막상 선물을 고를 땐 고민이 된다. 장모님께는 가끔 가방, 옷, 스카프 같은 걸 했었는데 그때마다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엄마는 옛날 분이라 유명한 브랜드 같은 거 잘 모르실걸?" 하지만 아내의 계산은 틀렸다. 장모님은 모르시더라도 주위 분들은 모두 알고 계신단 사실. 선물을 받고 모임에 나가시면, '이거슨! 이태리 본사 수석 디자이너로 있다가 최근 독립하여 독자 브랜드 '몽땅가져'를 창립한 패션 크리에이터 '사무엘 드 비싸'의 7번 라인 백이잖아?' 게다가 이런 말도 덧붙이신다고 한다. '이런 아이템을 고르다니 서울 사위라 그런지 안목이 대단하구먼!' 이런 식이다 보니 장모님 선물은 고민이 된다. 내면에선 이런 외침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선물, 그 이상의 승부닷! 장모님 커뮤니티와의 치열한 일전! 안목 있는 사위로 칭찬받고 싶다!'


누구나 인정할만한 비싼 명품 선물을 덜컥해 드리면 좋겠지만, 내 나름의 (가성비) 쇼핑 철학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실용적인 제품을 찾으려니 제법 시간이 든다.


이번 설 선물로는 가방을 드렸다. 사실 가방은 이미 핸드백과 토트백을 선물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핸드백은 배가 터져 나올 정도로 물건을 넣고 다니셨다. 일상용으로 들고 다닐 큼지막한 가방이 필요하신가 싶어 그 뒤엔 토트백을 선물했다. 그런데 이번엔 가방이 너무 커서 들고 다니긴 번거로우신 듯 보였다. 그래서 크로스백 형태의 적당한 사이즈를 선물하기로 했다. 비로소 가방 3총사가 완성된 것이다.


연세가 있으시니 가벼워야 하고, 일상용으로 쓰기에 편한 비가죽소재여야 할 것, 다만 어깨에 메는 끈이 넓고 스포티한 나일론 재질이면 캐주얼 느낌이니까 그 부분은 가죽느낌으로 된 제품을 골랐다. 마침 세일도 진행하고 있어서 크로스백을 쇼핑했다.

네이버스토어 만다리나덕 공홈에서 구매한 크로스백

선물을 보자 아내는 또 아는 척을 하면서 '우리 엄마는 안쪽에 지퍼가 확실히 있는 걸 좋아해. 엄마 취향은 아닌데...'라고 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엄마가 싫다면 내가 들고 다녀야지.' 하지만 아내의 바람과 달리 선물이 도착한 뒤 전화로 여쭤보니 새 가방을 들고 즐겁게 시장을 한 바퀴 돌다 오셨다고 한다. 특히 사이즈가 일상용으로 쓰기에 딱 적당해서 좋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문제는 장인어른 선물이다. 과거에 낚시할 때 입는 고급 구명조끼 겸용 낚시조끼를 사드린 적이 있었는데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장모님 표현에 따르면 '허구한 날 낚시 가는' 장인의 모습을 싫어하시기 때문인지도.) 이후 선물해 드린 정장과 목도리는 점잖은 자리에서 가끔씩 사용하시기에 활용도가 부족했다. 뭔가 평소 자주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을 고민했다. 문득 페도라가 떠올랐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모자를 착용하는 경우가 많다. 캡모자도 쓰시지만 일상룩으로 헌팅캡이나 페도라로 멋을 부리시곤 한다. 머리숱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만 보면 꽤 자연스러운 멋이 느껴진다. 나이에 맞는 모자가 있다니 새삼스러운 사실이다.


중절모라고도 부르는 페도라는 19세기 프랑스 연극 페도라의 주인공 공주가 착용하던 모자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 큰 모자만 써야 했던 여성 입장에선 일종의 개혁이자 해방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모자챙이 작아 실용적이고 중간에 접힌 곡선(중절모양)이 예쁜 데다가 실용성도 좋다 보니 남자들이 쓰기 시작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당시 남자들은 체면 때문에 눈과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 탓에 모자로 버텨야 했다. 그러고 보면 누가 누구를 억압하고 잰척하는 삶은 모두에게 피곤하다.


모자 선물을 골랐다고 아내에게 말하자 '우리 아빠는 모자 안 쓰셔!'란 말을 한다. 이 역시 예상했던 반응이다. 하지만 지난번 서울에 올라오셨을 때 장인어른께서 헌팅캡으로 멋을 내신 걸 나는 이미 보았다. 논리적으로 추론해 봤을 때, 헌팅캡을 쓰신다면 기본 아이템에 가까운 페도라 선물은 당연히 좋아하실 것이란 결론이 도출된다. 때마침 장모님과 통화하면서 '아버님 모자 쓰시나요?' 여쭈니 '그럼, 모자 엄청 좋아하셔'란 답이 돌아왔다. 결국 아내는 '자기가 우리 부모님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있나 봐.'란 답이 돌아왔다. 그럴 리가 있을까? 단지 평소 관심을... 음... 여기까지.


LF몰에서 쇼핑한 닥스 페도라 모자

울과 실크, 마소재로 짜여 봄부터 가을까지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자로 골랐다. 색상은 기본 아이템이니 짙은 네이비로 무난함을 중시해 선택했다. 자세히 봐야 보이는 모자 테두리 브랜드 로고도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선물을 주문하고 두근대는 마음으로 장인어른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


모자는 예쁜데, 이게 안 맞는다! 모자가 커!


장인은 평범한 체구 셔서 프리 사이즈로 나온 모자가 잘 맞을 줄 알았는데 오판이었다. 게다가 저 모자의 경우 사이즈 조절끈이 없다. 다행인 점은 사이즈가 조금 크다는 것 빼고는 영상 통화상으로도 잘 어울리고 마음에도 들어하신단 점이었다.


사실 나는 모자 후기를 보면서 이런 상황에 대비한 플랜 B를 생각해두고 있었다. 바로 모자 사이즈 조절용 쿠션. 검색창에 모자 사이즈 조절 쿠션이나 패치를 검색하면 10개에 몇 천 원주고 살 수 있다. 바로 쇼핑해서 장인 장모님과 함께 사는 처남에게 보내고 아래의 상품 사진처럼 붙이면서 사이즈를 조절해 보라고 언질 해뒀다. 얼마 뒤, '모자가 이제 딱 맞는다!'라는 반가운 장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네이버 스토어에서 쇼핑한 모자 사이즈 조절 패치

설 명절용 쇼핑은 이렇게 완결됐다. 다음에 뵐 때, 주변분들에게 '패션 감각이 뛰어난 서울 사위'란 자랑스러운 멘트만 듣는다면 선물의 최종 챕터가 완성되는 느낌일 것이다. 그것은 지나친 욕심일 수 있으니 이번 쇼핑은 이즈음에서 만족해 보려 한다. 설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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