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통해 출간제안받는 법 (17)
미국의 작가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뮤즈의 존재를 언급합니다. 글이 술술 풀리고 영감이 떠오르며 즐겁기까지 하다면 그것은 창작의 신 뮤즈가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 때는 타이핑 속도가 생각을 못 쫓아갈 정도로 아이디어가 샘솟습니다. '신이여, 과연 이 문장을 제가 쓴 것이옵니까?'란 말이 나올 정도로 명문도 속출합니다. 당연히 모든 작가는 뮤즈가 매번 찾아오기를 바랍니다.
스티븐 킹 역시 뮤즈의 축복을 갈구하지만 자신의 뮤즈는 창작 가루를 뿌려주는 아름다운 여신의 이미지와 상반되게 왠지 남자라고 밝힙니다. 그의 뮤즈는 지하실 의자에 앉아 거들먹거리며 애원하는 작가의 목소리에도 무심히 진열된 자신의 볼링 트로피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시가 연기를 내뿜는다고 합니다. 굴욕적인 무시와 괄시에도 무시할 수 없는 건 뮤즈에게 인생을 바꿀 마법가루 꾸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하면 무뚝뚝한 중년의 아저씨 같은 뮤즈에게 환심을 살 수 있을까요?
스티븐 킹은 정해진 시간에 그 자리에서 글을 쓰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어느 날 시가를 질겅질겅 씹으며 나타난 뮤즈가 책상 위에서 마술을 시작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쓰기론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루키는 감정에 침잠해 가는 폐퇴함을 동력 삼아 글을 쓰는 작가를 비판적으로 봅니다.
하루키의 생각도 일리가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매일 달리기를 하며 정해진 시간에 회사원처럼 글을 생산하는 일은, 내키는 대로 불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감상과 우울을 글로 쓰는 삶보다 훨씬 어려운 건 맞는 듯합니다. 물론 <금각사>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선배 작가 다자이 오사무에게 '그 정도의 우울은 국민체조만 해도 낫는다'란 말을 한 건 좀 심했지만요.
많은 작가들이 강조하듯이 루틴으로서의 글쓰기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이 써지든 말든 일정한 시간에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게 중요하단 거죠. 뮤즈가 찾아오길 기다리며 매일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딱히 네가 좋아서 그런 건 아니지만'이란 식으로 나타나 무심히 창작의 가루를 뿌려줍니다.
그런데 매일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글쓰기에도 슬럼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슬럼프라면 책상앞에 앉는 루틴으로 견디는 게 좋지만 유의해야 할 슬럼프가 있습니다. 번아웃형 슬럼프입니다.
작년에는 출간시기가 공교롭게도 겹쳐서 두 권의 책을 작업해야 했습니다. 사전 작업은 충분히 돼 있었지만 막상 출간 일정에 맞춰 작업을 하려니 몹시 분주했습니다. 무사히 출간을 끝내고 나자 바닥까지 지쳐버렸습니다. 밤에 식탁 테이블에 앉아 마음의 공간을 휘휘 휘저어봐도 비어버린 쌀독처럼 '깡깡'하는 울림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미 모든 기력과 정신을 쏟아낸 후이기에 열정은 물론 생각의 힘도 바닥나 버린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독서를 하는 게 좋습니다. 좋아하는 책을 골라서 읽어보는 것이죠.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물론 영화도 좋습니다. 그렇게 보거나 읽으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런 작품을 쓰고 싶다'는 창작욕이 되살아 나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됩니다. 독서나 영화 감상이 비어버린 생각의 쌀독을 채워주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죠.
무엇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회복 글쓰기를 하는 것입니다. 스포츠에는 회복운동이라는 게 있습니다. 격렬한 경기를 끝낸 후에 씻고 자러 가는 대신에 가벼운 조깅과 스트레칭 또는 수영 등으로 폭발적 힘을 쏟아낸 근육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아다치 미츠루 같은 만화 작가들도 큰 작품을 끝낸 뒤엔 작은 소품을 그리곤 합니다. 영화감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왕가위 감독은 <동사서독>의 촬영이 늘어지자 소품 같은 영화를 찍기로 합니다. 그때 탄생한 영화가 홍콩 최고의 코믹영화로 불리는 <동성서취>와 왕가위를 세계에 알린 <중경삼림>이었습니다.
영화로 얻은 피로는 영화로 풀어야 한다는 발상을 한 것이죠. 우스꽝스러운 분장과 오버액션으로 가득한 B급 감성의 <동성서취>에 출연한 양조위, 임청하, 장국영, 양가휘 등 초호화 출연진은 서로 웃고 떠들면서 영화의 즐거움을 만끽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중경삼림>은 두어 달 만에 촬영을 모두 끝낼 정도로 잠시 짬을 내 촬영한 소품이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글쓰기가 질릴 땐 기분전환을 위해 '무익한 에세이'를 쓴다고 합니다.
사실 이런 방식은 이독제독이라거나 일을 일로 푸는 방식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놀이로 일의 피로감을 더는 행위입니다. 놀이는 기본적으로 쓸모없음과 비생산성으로 일의 반대편에 자리합니다. 의무와 책임이 따르는 일 대신에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는 무익함에 몰두하는 건 사실은 건강한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생산할 필요가 없다는 자유는 사고의 근육을 이완시키고 더 많은 창조의 공간을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글쓰기 슬럼프에 빠졌다면 글을 쓰되 몹시 무익한 글을 써보길 권합니다. 어느 날 지하실에서 올라온 수염 난 뮤즈는 생각의 쌀독이 말끔하게 비워진 것을 보고 혀를 끌끌 차겠죠. 그리고 '딱히 네가 좋다는 건 아냐'라면서 마법의 가루를 서재에 뿌려줄 것입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8610921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75543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