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과 스피노자가 바라본 감정 이야기
끝없는 불안과 걱정은 우울함으로 이어진다. 이 모두는 감정이다. 감정을 다스리면 좋을 텐데 쉽지 않다. 그래서 약을 먹어서라도 누그러뜨리고자 병원까지 다니곤 한다. 그럼에도 화가 나고 짜증이 생기며 울컥울컥 일어나는 우울감을 떨치기 어렵다. 나는 정당한 대접을 못받고 있다고 느낀다. 과연 그런 방법밖에 없을까?
감정을 잘 다루려면 감정에 대해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수원 영농 꿈나무도 아닌데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어야지'로 유명한 스피노자란 철학자가 있다. 그는 '감정(emotion)'이란 말을 놔두고 굳이 '정동(affect)'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감정은 일단 논리적인 용어로 불합격이다. '내가' 기쁘고, 슬프고, 행복하다...처럼, 그가 보기에 감정이란 단어는 지나치게 주관적이다. 감정을 이해하려면, '나도 내 마음을 몰라'처럼 신비로운 어떤 것이라기 보단 설명 가능한 것으로 바꿔야 한다. 그래서 스피노자는 철학책을 쓰면서도 공리, 정의, 명제, 증명 같은 논리수학적 방법을 사용했듯이 제대로 된 감정 분석을 위해 새로운 용어로 바꾸고자 했다.
그가 픽(pick)한 단어는 '정동'이다. 정동은 무엇일까? 톰과 제리란 만화에서 고양이 톰이 화가 날 땐 주전자가 시뻘겋게 끓으며 증기를 뿜는 것으로 '화남의 정도'를 표시한다. 주전자의 물이 끓는 것은 온도가 100도씨 근처에 도달할 때다. 그러니 화가 났다는 감정은, 어찌 보면 에너지 수치가 거의 100도씨에 도달할 수준임을 알게 해 준다. 이런 표현은 객관적이다.
즉 스피노자가 보기에 감정이란 이런 측정 게이지(더 정확히는, 방향성까지 갖춘 자이로스코프) 같은 것이고 이를 정동이라 불렀다. 예를 들어 기쁨이란 자연의 에너지가 증가된 상태, 슬픔이란 존재의 에너지가 감소해 수동적이 되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감정을 이해불가능한 것에서 이해가능한 힘의 변화로 파악하여 인간의 감정을 측정하고 다룰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17세기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가 감정을 이렇듯 분석해 냈지만 기원전 5세기에 이미 그걸 이룬 분이 있었다. 바로 싯다르타 부처님이다. 스피노자가 감정을 에너지 혹은 힘의 높고 낮음으로 분석하려 했던 것은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라고 봤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그보다 이천 년 앞서 무아의 철학으로 앞서 나갔다.
'나는 누구인가'하면 변화하는 자연과 우주에 의해(무상) 매 순간 새롭게 정의되는 존재(무아)다. 우리 몸의 세포는 매 순간 죽고 생겨나며, 나의 물리적 위치는 물론 자연, 인간과의 관계도 쉼 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나는 이것이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러니 나는 없는 것, 혹은 나는 변화하기에 '무아'다. 고정된 어떤 것이 아니라 변화 속에 규정하기 힘든 어떤 것이다.
내가 고정된 개똥이로 존재한다면, 슬픔, 기쁨, 화남이란 감정을 갖는 나는 슬픈 개똥이, 기쁜 개똥이, 화난 개똥이가 되고 만다. 그런데 내가 '무아'이듯이, 감정 역시 실체 없이 변화하는 '무상'임을 받아들인다면, 감정에 휘둘릴 일이 없다. 그것은 스피노자가 말한 게이지 눈금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뿐이다. 부처님은 감정의 바다에 빠질 이유가 없다고 하신다. 해변에 나가 파도를 바라보듯 '오늘은 파도가 3m로 치는구나', '오늘은 1m 내외로 잠잠하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리라고 말씀하신다.
그것이 바로 '위빠사나'라고 부르는 '알아차림 명상'이다.
우리는 우울해서 내 인생이 싫다. 불안해서 고통스럽다고 말한다. 부처님은 파도를 억누르려 한다고 눌러지는 것도 아니니 알아차리고 흘려보내라 말씀하신다. 더욱이 파도는 원래 높았다 잠잠했다 하는 것이니 그것이 고통의 원인도 아니란 것이다. 고통의 원인은 파도가 아니라 파도너머로 일렁이는 나의 욕망과 집착이다.
감정을 눈금 게이지로 바라보고자 했던 스피노자, 그에 앞서 눈금 게이지가 요동치는 것은 당연한 것임을 인정하고 알아차리라는 부처님.
화가 날 때, 짜증이 날 때, 두렵고, 내일이 불안할 때, 몹시 우울할 때, 눈을 감고 나의 몸을 껴안아 보자. 그리고 가만히 눈금이 어디쯤 와 있는지 들여다보자. 불안한 것은 내가 못난 게 아니라 그저 에너지 레벨이 낮아져 있구나...라고 읊조리자. 가끔 기쁠 때는 신나게 엉덩이를 다 흔들고 역시 나를 안고 말해주자. '오늘은 눈금이 꽤 높이 올라갔었네.' 그저 그것뿐이다.
그러니 해안가를 거닐며 파도를 관찰하자. 그리고 또 오늘을 살아내자.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