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로 출간제안받는 법(19)
전자책을 읽다가 이상한 느낌에 표지를 확인해 보니 저자 이름이 없었습니다. 검색해 보니 해당 출판사는 단기간에 유사한 시리즈를 줄줄이 출간했고, '이상한 느낌'은 다른 책에서도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출처를 명확히 밝히진 않고 AI가 정리한 내용을 편집해서 출간했던 책인 듯싶었습니다.
최근 AI활용이 많아지면서 이런 사례가 늘어갑니다. AI가 거짓으로 내용을 꾸며내는 '할루시네이션'도 문제지만, 출판계에 이런 사례가 많아지면서 여러 부작용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최근 국립중앙도서관은 AI활용 도서 수백 권에 대해 납본 거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른바 '딸깍 출판'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죠.
그런데 납본은 '딸깍 출판'의 수입 구조 중 극히 일부일 뿐입니다. 독서 플랫폼과 일반 도서관 희망도서로 판매되는 것, 그리고 모르고 독자가 구입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죠. AI가 쓴 책은 팔지 않도록 규제하거나 적어도 표기하는 법령을 시행하면 될 듯 하지만 문제는 있습니다. 책을 AI가 쓴 것인지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책을 쓰려는 사람이 챗지피티, 클로드, 제미나이 등 다양한 AI에게 질문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긁어모아 다시 책으로 구성하도록 AI에게 주문하면 과연 판별이 될까요? 게다가 '딸깍 출판'까지는 아니어도 회사에서 워드나 엑셀을 사용하듯 작가 역시 AI를 활용하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AI활용이 어디까지 허용되느냐를 정하는 것도 모호하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작업이냐를 판단하기도 애매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힘든 출판계의 불황은 더 심해지고 나중엔 책과 작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걸까 걱정도 됩니다.
그럼에도 책과 작가의 종말을 말하는 건 성급한 것 같습니다. 사진기가 나온다고 회화가 사라진 것도 아니고, 영화가 등장했다고 카메라가 멸종한 것도 아닙니다. 모든 매체는 자신만의 고유한 생존력을 갖고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나 수 천년의 역사를 거치며 생존해 온 책이 절멸되리란 예상은 다소 급진적인 것같습니다.
책의 미래에 대해 여러 대응책이 있을 수 있지만 결국엔, 인간인 '작가의 신뢰도'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2.19일 자 법률신문 '생성형 AI의 저작권 이슈 관련 최근 판결 동향'에 따르면, 영국과 미국 뉴욕남부지방법은 모두 AI활용 창작물의 저작권 침해 관련 사안에 대해 해당 AI를 활용한 사업자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AI가 만든 창작물은 저작권이 없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AI가 저작권을 침해했다면, 그것으로 돈을 벌려고 한 사업자가 책임을 져라...라는 법적 규제 움직임이 있단 것이죠. 이를 출판 시장에 적용한다면, 'AI가 저작권을 침해한 것이니 AI활용 책을 펴낸 출판사는 무관하다'란 변명은 통하지 않을 듯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사는 크게 두 가지 정도의 대응을 하게 될 듯합니다. 첫째는 신뢰도 높이기입니다. 신뢰도 높은 창작자와만 출간을 하고, 또 신뢰도 높은 출판사들끼리 인증제도에 준하는 공동 브랜드로 대처하는 것입니다. 제가 출판업계에 일한다면 당연히 이런 방안을 먼저 고려할 듯합니다. 즉 건실한 항공사들끼리의 연합인 스카이 얼라이언스나 품질관리 기준인 HACCP인증처럼 '우리는 AI로부터 비교적 거리를 둔 신뢰도 높은 책을 생산하는 기업이다'라고 표방하는 것이죠.
둘째는 작가에 대한 법적 책임 강화입니다. 만약 AI 표절로 인한 저작권 침해에 대해 출판사가 법적 책임을 지는 상황이 오면 출판사는 표준 계약서 상 '작가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아야 하고, 관련 손해에 법적 책임을 진다'라는 류의 조항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구상권을 행사하는 사례가 많아질 것입니다.
결국 이 두 가지 모두 신뢰로 귀결됩니다.
신뢰도 높은 작가가 되기 위해 와이파이 없는 산골에 들어가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대신 작가로서 AI를 활용할 때는 다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 원본을 확인하고 기록하라
2. 도구로 활용하라
3.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라
확인하고 기록하라
자료조사를 위해 AI를 활용할 때 답변한 내용을 그대로 믿어선 안됩니다. 뛰어난 AI라고 할지라도 할루시네이션에선 자유롭지 않습니다. 게다가 기존에 학습한 내용을 토대로 답변이 이뤄진다 할지라도 그 원본이 가짜이거나 잘못된 정보일 확률이 있습니다. 따라서 작가는 '반드시 원본 링크를 해줘'라고 프롬프트를 적어서 원본 내용을 확인하고, 확실한 원본조차 작가가 착각하여 쓴 글은 아닐지 진위 여부를 탐구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기록의 습관입니다. '이 글은 내가 직접 썼다'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브런치와 같은 플랫폼에 초안을 쓰는 것입니다. AI로 생성한 글을 붙여 넣기 해도 초안처럼 보이기에 완벽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일관된 주제에 대해 작가가 오랜 기간에 작업해 왔음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괄적으로 답변을 생성하는 AI와 달리, 완성된 책과 초안 사이 변화의 과정이 드러나므로 구체적인 창작의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도구로 활용하라
AI를 안전하게 사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도구로 활용할 때입니다. 특히 편집 과정에서의 맞춤법, 오탈자 검수, 문법 오류 등을 수정할 때는 혁신적인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자료 조사 시 해외 자료의 초안 번역은 집필의 방향을 정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AI에게 척척박사처럼 답을 바라게 되면 AI가 창작자의 지위로 올라서고 오히려 인간이 단순 입력도구가 되고 맙니다. AI를 도구로서 바라보고 창작자로서 활용성을 고민하고 적절히 제한한다면 좋은 만년필과 종이처럼 작업의 효율을 올릴 수 있습니다.
나만의 스타일로 써라
'해 아래 새것이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창작의 영역은 학습과 모방이 바탕이 됩니다. 제 아무리 참신한 주제의 논문에서도 선행연구가 반드시 들어가는 이유는 '수많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서 바라보는 것'이 학문의 역사이자 방법론,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기 시작하면, 지도교수님은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을 강조하곤 합니다. 이는 '내 언어로 다시 쓰기'를 뜻합니다. 내 언어로 다시 쓴다는 것은, 어떤 학자의 말을 생각 없이 받아쓰는 게 아니라, 나만의 관점과 맥락, 해석을 넣어 다시 쓰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칸트는 도덕형이상학의 정초에서 '너의 의지의 준칙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될 수 있도록 행위하라'라고 말했다'라고 쓰는 대신, '칸트는 도덕형이상학의 정초에서 정언명령을 통해 도덕적 상상력이 필요함을 말했다'라고 자신이 펼쳐갈 논문의 언어로 다시 쓰는 것이죠.
AI는 그럴듯한 문장을 답변으로 제시합니다. 때론 멋져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가져다 쓰면 저작권 침해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설사 그것이 AI가 창조한 문장이라 할지라도 '스타일이 부재'하기에 영혼 없이 이어 붙인 글이 되고 맙니다. 앞선 책을 읽을 때 감지한 '이상한 느낌'의 정체가 바로 그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정확히 원문의 문장을 직접 인용해야 합니다. 더 좋은 방법은 나만의 언어로 (출처는 표기한 상태에서) 다시 써내려 가는 것입니다.
AI로 인해 여러 산업영역의 변화가 감지됩니다.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책의 종말을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언젠가는 의식화된 AI가 개성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시대가 오든 AI가 짜깁기한 세계와 아이디어를 보여주기 위한 글쓰기는 나를 도구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적어도 작가에게 있어 글을 쓰고 책을 쓰는 것은 내 안에 구성된 독창적 세계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구성한 세계에서만큼은 도구가 되지 않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입니다. 어떤 세상이 오든 창조자로 남기로 결정한 사람임을 생각하며 AI시대를 맞이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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