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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Nov 08. 2017

플라톤을 닮은 악당 이야기

블레이드 러너 2049

이상한 사람들과의 이상한 대화


차차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만 내 주변엔 이상한(?)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여기서 이상하다는 표현은 - 물론 나는 동의하지 않지만 - 지극히 표준적이고 정상적인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 아내에게서 종종 듣곤 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아내에게 간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대화를 들려주면,


'음... 당신과 이상한 친구들은 잘도 이상한 이야기들을 하네...'란 평이 되돌아온다.


그때마다 나는, '그런가? 이상친구들인가?'라고 순발력에 의존한 동감을 표하며

눈주름을 짙게 드리우고 고개를 끄덕이며 내 주변 지인들을 탓하게 된다.


(이상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나도 깜빡 말려들 뻔했지 뭐야)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0월 마지막 날, 이 매거진을 공동 연재하는 아시아문화콘텐츠연구소(ACCI)에서 카페를 빌려 음악회를 열었다. 나는 두 명의 지인을 초대했다.


그중 한 분은 대학시절 선배로 마음은 인문학에 사로잡혔으나 사고 회로는 철저히 공학적인 논리를 지향하는 남자랄까... 자신의 감수성을 이성적으로 분석하며 사는 분이다. 내면에 소크라테스와 그의 사상을 논박하는 소피스트가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니 본인은 괴로울지 몰라도, 덕분에 그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단단하여 울림이 있다.


게다가 풍부한 감성을 지닌 성격과는 동떨어진, 자본주의의 첨단에 선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일했었으며 스스로 인정했듯이 자신의 아내에게 평생 화를 내본 적이 없는 남자라는 특징도 있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이상한 면모가 있긴 하다.

  

또 다른 분은 CF와 M/V감독이자 가끔 단편영화도 찍는 사람이다. 그의 작품에는 크리에이티브한 역량이 물비늘처럼 번쩍이지만 사람이 그렇게 겸손하고 착할 수가 없다. 원래 뭘 만드는 사람들, 특히 그쪽 계통은 심술 맞고 이기적이어야 대가 취급을 받는 모양인데(편견인가?) 그런 점에서 이 친구는 이상하다.


실제로 나와 몇 번인가 일을 함께 한 적이 있었는데 고집을 피우거나 주장을 내세우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이번에도 간장회사 광고를 찍었다고 해서 함께 봤는데, 좋은 연출이었지만 묘하게 헛헛한 부분이 있어서 물었더니, '더 재밌게 가는 게 좋았는데 광고주가 이걸 원했어요. PD님이랑 일할 땐 맘대로 할 수 있어서 즐거웠는데 말이죠... 하하하'라고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내가 별다른 요구가 없어서 그가 고집 피울 일도 없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요즘은 이런 말에도 반성하게 된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


ACCI 영화음악 콘서트 현장 (객석의 검은색 옷의 필자와 우측 선배, 왼쪽의 CF감독)


어쨌거나 피아노와 더블베이스, 타악기의 트리오 연주를 즐겁게 듣고, 밤늦게 맥주 한 잔 기울이며 대화를 나눴다. 문득 CF 감독이 맥주잔을 기울이다가 이런 말을 했다.


"리들리 스콧은 창조주를 왜 악인으로 묘사할까요? 프로메테우스, 블레이드 러너와 최근작까지 말이에요."


그 말에 선배는, 창조주가 인간적인 착함을 지니고 있다는 게 더 부자연스러워 보인다고 답했다.


그렇게 그가 던진 화두를 따라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볼 만한 SF가 줄어드는 현실, 육체와 영혼의 이원론과 육체 없이 정신(영혼)만 존재하는 일원론, 그와 연결된 홀로그램 우주론, 내세가 존재하는지 확인하는 최근의 실험들, 흑맥주가 맛있는 이유와 모멘텀 투자의 위험성 등등...


선배와 CF 감독은 처음 본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신나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아내가 예의 그 '이상한 사람들과 이상한 이야기들만 잔뜩 하고 왔군...'이라는 감상평을 전해줬다.


이번엔 좀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라니까...라고 말로 설명하기엔 좀 어려웠다.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서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를 정리해보고, 정말 이게 이상한 이야기일까 독자들께도 의견을 묻고 싶은 생각도 들어 일단 적어봅니다. 스포는 별로... 아마도 없을 거예요.


창조주는 왜 악당처럼 보일까?


술자리에서도 주로 최근 개봉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로 대화를 시작했으니 그 이야기를 좀 해보도록 하겠다. 영화에는 복제인간들을 만든 창조주이자 '악당 포스'를 풍기는 월레스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악당이면 악당이지... 악당 포스는 뭔가 싶지만, 그를 악당이라고 표현하기는 좀 애매한 게, 유전공학 특허를 무료로 제공하여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했을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인간을 해치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를 악당으로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자신이 만든 복제인간들에게 꽤나 냉혹하게 굴기 때문이다. 그는 말 그대로 자신이 생산한 어떤 제품(product)의 관점으로 복제인간을 대하며 영화 내내 복제인간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이러한 관점은, 전작인 <블레이드 러너>의 타이렐 박사나 <프로메테우스>의 엔지니어들이 피조물들을 대하는 태도와도 일맥상통한다.


외모부터 뭔가 무섭게 생긴 월레스 박사


'나는 주인이고 너는 종이야!' 같은 명쾌한 태도랄까.


이런 태도에 대해 우리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표한다. 그 거부감의 근원은 (인간을 닮은) 생명체에 대한 공감능력과 사회적으로 학습되고 계발된 평등, 인권 의식 때문일 것이다. 특히 상대의 표면적 행동 너머의 의도를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 거울 뉴런이란 생물학적 특성은 인간의 사회 진화적 공감능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에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를 통해 인류는 호모 엠파티쿠스, 즉 공감의 존재라고 정의하기도 하였다. 인간들은 이러한 공감능력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생명과 인간평등에 대한 가치를 이뤄가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월레스가 함부로 복제인간을 대할 때마다 움찔하며 그를 악당으로 규정하게 되고 만다.


"저런 나쁜 녀석 같으니라고... 나는 절대 저러지 않을 텐데..."


그런데 잠시눈 딱 감고 월레스의 관점에 대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플라톤의 이상 사회를 꿈꾸는 월레스

 

월레스가 살고 있는 세계는 21세기 중반이다. 지구는 환경오염으로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다. 모든 생명체가 종의 보존을 목표로 진화해 온 것이 맞다면, 인류 멸절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 영화에서는 우주 식민지 개척을 해결책으로 설정했다. 그런데 이 위험한 임무를 인간이 떠맡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인간들은 복제인간을 만들어 대신 임무를 수행하게 한다.


당연히 이때 만들어진 복제인간들은 철저히 목적을 부여받고 태어난다. 전투병은 전투병에 적합한 신체능력을, 창녀는 성적 매력을 강조하는 쪽으로... 또한 월레스는 '인류의 미래는 복제인간에 달렸다.'라고 공공연히 말하며 세계를 지배하도구로서 복제인간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


그의 사상은 심히 걱정스럽고 이상해 보이지만, 존재에 대한 목적론적 사고와 완벽한 이상 사회의 꿈은 뜻밖에도 오랜 전통을 가진 철학에 기반한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국가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지배자, 전사, 생산자(노동자)라는 나름의 계층 구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들 계층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덕(arte)이며 좋은 것, 즉 선이라고 보았다. 예를 들어 '좋은' 의자란, 사람이 앉기 편한 목적을 가장 충실히 수행하는... 즉 목적에 부합할 때 좋은(선한) 의자가 된다. 마찬가지로 전사는 용맹한 품성을 지니고 명령에 복종하며 전투를 치르는 것이 선이 되며, 노동자는 죽어라 일할 때 좋은 노동자가 된다. 뭔가 요즘도 친숙하게 만나는 사고 아닌가요?


레슬링 선수로도 활약했다는 플라톤 선생님


문제는 인간 모두가 이러한 목적을 지니고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있다. 왜냐하면 누구도 태어날 때 '너는 의사가 되어라... 너는 동사무소 직원이 되어라'같은 목적을 부여받고 태어나지 않으며 강요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라톤은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이상적인 국가에서는 뛰어난 자질을 지닌 철학자가 통치하는 것이 당연하며, 상대적으로 능력이 떨어지는 자들은 지배받고 복종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목적론에 기반하여 계층의 이동을 금하고 직업의 세습을 강추했으며 계급을 고착화시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방식까지 꼼꼼히 기록해뒀다. 놀랍게도 이런 사상은 20세기와 현재까지 이어져 끔찍한 파시즘과 독재의 근거로 활용되곤 했지만... 그럴듯한 사고 실험임은 분명하다.  


월레스가 꿈꾸는 세계지배와 플라톤의 이상적 사회가 닮은 점은 여기에 있다. 월레스에게는 일차적으로 뛰어난 능력이 있다. 그는 유전공학 기술을 통해 인류의 기아문제를 한방에 해결한 바 있다. 또한 플라톤이 헬라스 도시국가의 지긋지긋한 민주체제 인사들의 궤변과 변덕스러운 대중에 질렸듯이, 무한 반복되는 혼란과 무질서를 타계하기 위해선 획기적인 독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듯하다.


결정적으로 그에겐 억지로 목적론적 이데올로기를 강요하지 않아도 되는 노예, 바로 복제인간들이 있다. 플라톤이 살던 헬라스(그리스)노예는 본성상 노예로 태어난다고 믿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아닌 피조물로서, 무조건 복종토록 설계가 가능한 노예가 있다면 이상 사회는 생각보다 쉽게 구축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월레스가 좀 수다스러웠다면 이런 식으로 항변했을지 모르겠다.


"내가 목적이 분명한 복제인간 노예를 만들어서 혼란스러운 세계를 완벽하게 만들겠다는 데 뭐 문제 있어?"


앙? 뭐 문제 있냐고!



불완전한 창조주와 불완전한 세계


그런데 문제가 있다. 바로 복제인간이란 모호한 존재때문이다.


원래 복제인간을 처음 만든 것은 월레스가 아닌, 타이렐 사였다. 타이렐 사의 모토는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이다. 아름다운 말이다. 그런데 인간보다 인간답게 복제한다 할 때, 그럼 복제의 원본은 무엇인가란 질문이 뒤따른다. 궁극의 이상적인 인간? 대체 그 원본은 무엇일까?


성서에서 창조주는 자신의 모습, 즉 신의 모습을 본 따 인간을 만들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사본으로서 인간의 원본은 놀랍게도!! 창조주, 곧 신이다. 그런데 사본인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면 우리는 원본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리들리 스콧이 그린 창조주들에 대한 조롱이 담긴듯한 묘사는 이런 관점에서 출발하는 듯 보인다. 따지고 보면 그리스의 신들이나 구약성서의 야훼도 인간적  결점을 그대로 내포한 경우가 많다. 리처드 도킨스는 <만들어진 신>에서  이러한 창조주의 부도덕함, 잔인함, 찌질함에 대해 지나 칠정도로 신랄한 맹폭을 퍼부은 바 있다.


이를 역으로 생각해보면 창조주가 완벽하거나 선에 가까워야 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사회적 진화의 산물로서 만들어지고 조작된 신화에 불과하다. 실제로 인간  역시 돌리라는 복제양을 만들었지만, 돌리가 인간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면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게 분명해 보인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만들 역량이 되는 것과 창조주=선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간단한 문제일까?


어차피 월레스가 플라톤적 사고의 산물로 상정된 캐릭터라면, 플라톤의 세계관으로 더 깊이 들어가 볼 필요가 있다.


플라톤은 종교가 체계적으로 확립되지 않은 시대였음에도 원본으로서의 '이데아'라는 체계를 만들어두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이데아라는 절대적인 형상의 그림자 같은 것, 환영, 사본 같은 것이란 주장이다. 진짜 세계는 따로 존재하며, 우리가 진짜라고 인식하는 세계는 가짜 세계다.


이데아가 단일한 진리로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데아를 알 수 있을까? 우리가 만지고 냄새 맡고 보는 것과 같은 감각은 믿을 수 없다. 진짜 세계는 저편 어딘가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별한 이성 작용과 혜안을 가진 자만이 진리의 빛을 깨달을 수 있다.


위의 월레스의 눈을 자세히 보자. 그의 눈은 탁한 회색빛이며 초점이 없다. 영화에서 그는 감각으로서의 시각에 의존하지 않는 듯 설정되어있다. 그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본 철인일까? 플라톤의 말처럼 육체의 감옥에 갇힌 일반인과 달리, 그가 머물던 이데아의 세계를 기억하고 그것을 본 따 복제인간을 만든 진정한 창조주일까? 만약 그것이 맞다면 월레스는 진짜로 진리를 깨달은 철인이며 절대적인 창조주일지 모른다.  


창조주이자 피조물로서의 인간에 대한 질문들


그렇다면 절대적인 플라톤적 철인이자 창조주라는 캐릭터를 통해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영화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인권이나 평등, 생명존중의 문제가 아닌 듯 보인다.

찌질한 신의 존재 가능성에 대한 경고도 아니다.


보다는 월레스를 통해 극적으로 조장하고 있는 피조물의 숙명적 공포와, 창조주로서 인간에 대을 던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전작인 <블레이드 러너>에서 기억이 주입되어 스스로를 인간이라고 믿는 레이첼은 자신이 복제인간은 아닐까...라는 존재론적 공포에 시달린다. 복제인간을 추적하여 제거하는 데커드조차 복제인간인지 아닌지 모호하게 그려진다. 심지어 <블레이드 러너 2049>에 등장하는 창조주 월레스조차 실제로는 더 정교하게 만들어진 복제인간은 아닐까란 의문이 끝없이 제기된다.


반면 완벽한 복제인간을 만들면서도 자신의 조로증을 어쩌지 못하는 유전공학자, 왜소하고 탐욕에 찌들어 보이는 복제인간의 창조주 타이렐 박사와 인간성이라곤 전혀 없는 냉혹하고 잔인한 월레스는 불완전한 창조주의 일면나타낸다.


광고판과 홀로그램 이미지로 넘쳐나는 블레이드 러너의 미래도시


그리고 이들에서 출발한 질문은 불완전한 창조주가 만든 피조물의 문제로, 허상 속의 사본이 만든 사본의 문제로 돌고 돌며 무한 회귀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인간과 복제인간의 명확할 것 같은 분은, 소용돌이를 그리 원본과 사본, 창조와 피조물 관계라는 일방적이고 절대적인 사고의 경계를 허문다.


실제로 21세기의 인간 기술문명은 동물의 클론 복제에 성공했다. 알파고와 같은 머신러닝 인공지능을 통해 스스로 배우고 사고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있다. 인간은 이제 무언가의 창조주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반면 첨단의 이론 물리학은 이 세계가 플라톤이 언급한 허상, 그림자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기 시작했다. 미시세계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현상들, 양자 중첩, 관찰자 효과, M-이론, 초끈 이론 등에 기반한 최근의 연구들은 우주가 실제로는 2차원에 기반한 홀로그램이 아닐까를 의심하고 있으며, 우리가 어쩌면 수학적으로 프로그래밍된 피조물 일지 모른다는 가설을 높은 확률로 예측/검증하려 하고 있다.


우리가 지능과 인격 있는 피조물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역시 어떤 존재가 정교한 체계 속에 창조해 넣어 놓은 피조물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인간은 창조주의 위치에 올라 마지막 몇 계단을 앞두고,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친 죄로 간을 쪼이는 벌을 받았듯,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과실을 따먹은 죄로 낙원에서 추방된 아담과 하와처럼, 창조주인 동시에 피조물로서 우리는 무엇인지 주체적으로 답해야 할 시점이 정말로.... 정말로... 아주 가까워 오고 다.


그때 우리는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일원론을 믿고 싶은 이상한 사람들

 

이야기가 이쯤 되면 아마도... 결론은 보아하니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문제임을 눈치채셨을듯하다...


대신 그래서 그 이상한 사람들과의 이상한 대화는 어떻게 끝났는지 궁금하실 듯하다.


뒷 이야기를 전하자면 이렇다.


처음 질문을 던진 CF 감독은 대화 끝에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차라리 그런 세계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가 보고 싶거든요."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이모저모 생각하며 서로 대화를 나눴지만...





나도 그렇다고...


데커드가 사랑했던 복제인간 레이첼이 그를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이더라도...

홀로그램 '조이'가 데이터 코드로 존재하더라도 그들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처럼...


적어도 나는, 그는, 우리는... 허구의 세계 속 그림자처럼 창조된 피조물일지라도... 안다.

 

내가 받은 온전한 사랑만은

진짜임을...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를 마쳤고

집으로 돌아갔다.


끝이 역시나 이상하지만

바라기는 아내도 이 글을 읽으마냥 이상한 사람들과의 이상한 대화라는 것은 아니란 걸 이해했으면 좋겠다.


불완전한 창조주이자 불완전한 피조물 일지 모를 여러분도

조금은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끝>.





<사람, 공간, 일곱 빛깔 이야기>는 (사)아시아문화콘텐츠 연구소 소속 필진 7명이 함께 써가는 매거진입니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최신의 문화콘텐츠와 트렌드를 색깔을 살려 소개하고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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