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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즈노트 Nov 30. 2017

호기심 많은 아이로 키우기

feat. 학문의 즐거움

호기심 많은 사람


몇 년 전, 아나운서 동기가 육아책을 냈다며 사무실에 들렀습니다.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제게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OO 씨처럼 호기심 가득한 사람으로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창의성이나 상상력은 모르겠지만, 그분 표현대로 제가 호기심 대마왕인 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저만 그런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방송사에 들어와서 느낀 건데 이쪽 계통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넘칩니다. 그래서 아주 엉뚱한 질문이라도 대화하는 무리 중에 답을 아는 이가 있거나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매 다녔던 이야기가 꼬리를 물고 등장합니다.


방송사나 콘텐츠 회사들은 용케도 이런 귀찮은 부류의 인간들을 찾아 모아놓습니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을 뽑으려고 이상한 시험문제들을 내곤 합니다.

20대 젊은이가 뽀로로 친구 이름을 왜 알아야 합니까? (뽀로로 친구 이름 묻는 문제가 실제 출제된 적 있음)

(뽀통령의 룸메이트 크롱도 모르냐... 메롱~ by 출제자)


이런 시험은 상식책을 외우는 공부로는 답하기 어렵습니다. 기본적으로 광범위한 호기심을 평가하기 위해 만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여서 머리를 싸매고 콘텐츠를 만들어냅니다. 이러면 어떨까? 저러면 어떨까? 호기심에서 뻗어 나온 상상력을 창작으로 연결 지어서 말이죠.


호기심의 원리


호기심이라는 건, 모름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아이도 두뇌가 성장하는 어느 단계에 이르러야 폭발적인 질문과 함께

아기 때와는 다른 창의적인(?) 사고를 치기 시작합니다.


모름을 알게(인지) 된 후에는 묻고 찾아보고 직접 실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알게 됩니다.


몰랐다가 알게 되는 것은 가장 단순한 문제 해결 과정입니다. 이야기도, 인생도 크게 보면 문제 해결의 과정이기에 그 에서 기쁨을 느끼도록 인간은 진화해왔습니다.


All men by nature desire to know.
모든 인간은 천성적으로 알고 싶어 한다.  -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모르던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타고난 본성입니다. 그 본성을 손상되지 않고 잘 키워줄 수만 있다면 누구나 성장하는 삶을 살 수 있겠지요.


공부와 학문, 일과 놀이의 경계

  

과학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학문을 뜻하는 철학(philosophy) 역시 아는 것(소피아 : sophia)을 사랑(필로스 : philos)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인간이 천성적으로 아는 것을 좋아하게끔 만들어져 있고, 학문이 아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라면

인간이 호기심을 갖고 학문을 익히고 공부하는 것은 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 됩니다.


사람과 공부는 놀랍게도 찰떡궁합이란 말이죠.  


그런데 저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대개는 공부를 싫어합니다.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은, 지루하고 강압적인 학교 공부의 형태로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일과 놀이의 차이를 연구한 윌리엄 스티븐슨(William Stephenson)의 말을 거칠게 정리하자면 양자는 이렇게 구분됩니다.


일은 (결과의) 생산이라는 목적을 갖기에 고통이 수반되는 반면, 놀이는 무목적성을 갖고 무상한 자연스러움을 갖고 있기에 재미가 따라온다.


학교 공부는 언제나 목표가 제시되고 평가를 받으며 강압적이기에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반면 순수한 호기심에서 출발했고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운 행위는 '놀이'가 됩니다.


배움이 놀이가 될 수만 있다면, 평생 가도 지겹지 않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되고, 덕분에 늘 성장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 있겠죠.


그 첫걸음은 당연히 모든 것이 시작되는 유아기, 아동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방법은... 학교와 교육계 전체를 뒤엎는 것과는 비교 할바도 없이... 무척 간단합니다.

신이 인간에게 호기심을 선물로 줬다면, 그 보존법과 사용법이 결코 복잡할 리 없을 테니까요.  


호기심 많은 아이로 키우는 법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수학의 노벨상이라 부르는 필드상을 수상한,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수학자입니다.15남매의 7번째 아들로 태어나 전후 가난에 빠져 허우적대던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

어떻게 공부를 좋아하고 독특한 아이디어로 수학계의 난제를 푸는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는 <학문의 즐거움>이란 책에서 생각하고 알게 되는 기쁨을 알게 된 비밀을 밝힙니다.


수학이 재미있다는 부분만 제외하곤 공감이가고 재미있는 수필집입니다.  


어린 시절의 헤이스케는 궁금한 게 생기면 엄마에게 뛰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어른들은 초등교육도 간신히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엄마 역시 답을 주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15남매를 키우느라 전쟁터 같은 일상이었음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대충 흘려듣거나, 쓸데없는 생각 말고 아빠 거름 뿌리는 걸 도와라...라고 하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겠죠.

실제로 그의 아버님은 아들 대학입시 전까지 밭에 거름을 뿌리게 했다는군요.


하지만 그의 엄마는 언제나 질문을 진지한 표정으로 '왜 그럴까?' 함께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면 마을의 지식인이었던 의사 선생님께, 아이랑 손을 붙잡고 가서 함께 물어봤죠. 그 과정에서 헤이스케는 생각하는 기쁨을 깨닫게 됩니다.


생각이란 참 좋은 것이구나. 무언가를 알게 되는 건 기쁜 일이구나.


헤이스케만큼 훌륭한 학자가 아직 되지는 못했지만, 호기심만큼은 왕성한 저 역시 비슷한 유년기를 겪었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갑자기 궁금한 게 너무 많아졌습니다. 그때마다 부엌에서 일하는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묻고 또 물었습니다. '왜'의 꼬리물기가 시작된 거죠. 어떤 때는 심지어, (어린 나이였음에도) 내가 엄마한테 너무 많은 질문을 하는 게 아닌가... 진지하게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때 엄마가 귀찮아했다면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겠죠.


엄마는 늘 한결같이 친절하게 답해주셨습니다. 모르는 것을 묻고 알게 되는 것이 즐거웠고, 엄마와 (아이 입장에선) 진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뿌듯했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에 이르러 그 작은 행동의 위대함을 깨닫습니다.  


방법은 이처럼 간단합니다.


아이가 호기심을 느끼거나, '왜'라고 물을 때 그 질문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것.

함께 책이든 스마트폰이든 열어놓고 답을 찾는 아이의 호기심 여행에 동참하는 것.

그뿐입니다.


미래에 가장 필요하지만 가장 쉬운 교육법


우리는 공부가 지식을 축적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수학을 까맣게 잊고 사는 것만 봐도 공부와 지식 축적은 잘 연결되지 않습니다. 지식이란 뇌의 어느 한구석에 이런 건 대략 어떤 책을 보면 알 수 있겠지... 하는 색인(index) 정도로만 존재합니다.


게다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클라우드라고 부르는 가상세계에 지식을 축적하고 사는 현대의 인간에게, 공부 = 지식 축적이란 답변은 참으로 맞지 않는 생각일지 모릅니다. 우리는 지식을 언제든지 접속해서 꺼내 쓸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고, 앞으로의 세상은 그런 방식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헤이스케가 말했다시피 <학문의 즐거움>은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것,

그 앎을 통해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창조하는 즐거움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4차 혁명이든 가상세계든 앞으로의 세계는, 누구나 접속 가능한 지식 보유량으로 서열을 매기는 방식이 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또 그러한 지식에 기반한 사고처리가 필요한 일들의 대부분은 기계와 컴퓨터가 대신하게 되겠죠. 따라서 앞으로 우리 아이가 대학을 가고 직업을 갖는가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아이가 그때에도 스스로 성장하고 도전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기쁨, 창조하는 삶을 살 수 있는가입니다.


다시 말해 미래의 언어라는 코딩 교육, 머신러닝, 수학교육보다 더 쉽고 근본적인 교육은

바로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신이 선물로 준, 호기심을 손상시키지 않고 잘 키워내는 교육입니다.

 

그 첫걸음은 앞서 말했듯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습니다. 오늘, 엄마와 아빠에게 묻는 아이의 '왜?'라는 질문에 따뜻하게 답해주는 것뿐입니다.


호기심을 통해 알게 되고, 앎으로 상상하고, 그 상상을 현실로 창조하는 기쁨.


이 문제 해결과 창조의 여정은 인간 탄생부터 함께해 왔습니다. 기계문명이 직업을 없애도, 모든 노동을 컴퓨터가 대체해 인간은 그저 놀고먹는 유토피아가 온다 할지라도...


호기심을 가진 아이는

여전히 해결할 문제로 가득한 인생을,

놀이처럼 즐겁게 헤쳐나 것이며

무엇보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따뜻한 마음으로 추억할 것입니다.





p.s. 요즘 아이가 물어본 것


- 아빠, 저 새는 뭐야?

- 응... 오목눈이 같은데... (스마트폰으로 찾아봄) 맞다... 붉은 머리 오목눈이라고 한대.

- 왜 오목눈이라고 해?

- 눈이 오목하게 들어가서? 네 생각은 왜 그랬을 것 같아?

- 몰라요. 근데 왜 숨어있어요?

- 고양이나 사람들이 잡아갈까 봐 수풀 속에 숨어있는 거야.  

- 난 보기만 할 건데?

- 보기만 해도 새들은 니 말을 못 알아들으니 '적이다...'생각하고 날아가 버릴 것 같은데?

- 왜 새는 사람 말을 못 알아들어?

- 미국 사람은 미국 말을 쓰고 한국사람은 한국말을 쓰는 것처럼, 뱁새랑 우리도 쓰는 말이 다르기 때문이지

- 근데 나는 새랑도 말을 할 수가 있다~

- 아... 그래? 한번 해볼래?

- 난 마음으로 말을 하기 때문에 들려줄 순 없어

- 음... 그래... (이때 적당한 말은 무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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