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문집

몹시 글을 쓰고 싶을 때

by 뮤즈노트

가끔은 그러니까 몹시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주머니에 잊고 있던 펜이 만져지고, 커피숍 티슈에라도 뭔가 끄적여야 하는 순간이 있다. 이 글은 바로 그 순간 탄생했다. 이야기를 들어봤으면 좋겠다. 여러분이나 나나 지금은 독자인 처지에 가까우니까.


최근에는 중경삼림의 양가위가 녹슨 창문에 널어놓은 구멍난 수건처럼 지쳐있다. 매일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그리고 처리하기 곤란한 지점에 '날 좀 봐주십쇼'하고 널려 있는 일들을 보노라면 환멸이 든다. 난 아폴론 신도 아니고 매사 이치를 똑부러지게 정리하는 플라톤도 아니다. 적당히 살아가는 수많은 노동자 중 하나다. 솔직히 말하면 어린 시절부터 이념이랄까 가치관이랄까 거대하고 단단한 기둥을 세우는 데는 영 재주가 없었다. 그런 데도 잘만 살아왔으니 그게 또 나름의 철학처럼 보이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본다면 영 모양 빠지는 일이 대부분이다.


뭔가를 너무 잘하지 않으려 살아왔다. 아니 잘하려고 해도 딱히 잘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가 해야할 선인지 분필을 들어 정확히 선을 그린다. 그리고 그 선까지는 이르기 위해 노력한다. 그 정도다. 아마도 먼 훗날 30대와 40대 중반까지 개인적으로 최선을 다 한 일을 떠올린다면 학위논문을 썼던 일이 되지 않을까? 그 밖에는 그저 분필 그어놓은 정도까지 이르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은 게, 사람들은 캐릭터로 사는 게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됐다. 회사형 인간이라든지, 질투에 눈 먼 인간이라든지, 소심한 인간이나 영화속 조정석 캐릭터처럼 늘 조연처럼 무심하게 살아간는 캐릭터라든지, 그게 아니면 영웅적 풍모나 위인 혹은 천재형 캐릭터 같은 것들 말이다. 사람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대개는 그렇게 쉽게 규정된다. 좀 더 성의있게 말하자면 그런 캐릭터로 사는 게 편하기에 그 페르소나를 선택해서 꾸역꾸역 삶을 꾸려간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다만 캐릭터와 자신의 거리가 가까운 건 좀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깊은 밤 상념에 잠겨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거나 옆에 누운 누군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는 생각이 '내일 점심에 뭐 먹을까?'로 일관되어서는 안된단 의미에서 그렇다. 사람은 캐릭터의 옷을 입고 살지만 자신과 마주할 때 만큼은 남들이 보지 못할 적당한 깊이의 심연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의 심연은 20대에는 거의 드러난 적이 없다. 30대에는 몇몇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을 거라 짐작가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대개는 모른척 스쳐갔다. 40대에는 캐릭터에 대한 연기력이 늘면서 스스로도 그 심연을 못 찾을 때가 있는 듯 하다. 먹고 살기 바빠서. 일이 과중해서. 사치라고 느껴서. 어떤 이유에서건 누군가의 비난을 받을 일도 없고 또 누군가가 내 심연을 굳이 들여다 볼 일도 없으니까 나 역시 들여다보지 않게 된다. 그렇게 심연은 메워지듯 사라지기도 하는 모양인 듯도 하다.


젊은 시절엔 내가 바라던 대로 되지 않던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그렇게 제 자리를 찾아간다'라는 느낌으로 마음을 정리했었다. 젊음의 대가로 짊어진 불안과 삶이 주는 모호함 속에 내린 결론이었다. 지금은 당연히 어떤 자리도 제 자리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건 또 그대로 난처한 일이다. 가만히 있으면 인생이 어디에 닿을지 대략 보이지만 그곳을 목적지로 삼기엔 영 마뜩치 않으니 남은 힘을 쥐어짜 뱃머리를 돌리려 하지만 헛수고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처음으로 일본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서, 주인공 시마무라는 '헛수고'란 말을 달고 산다. 아마도 시마무라의 나이쯤 됐을 나는 그런 태도에 동의하진 않지만 어떤 맥락인지는 점점 확실히 이해하게 되는 시점을 산다. '헛수고'. 인생은 뇌라는 고도의 생물학적 데이터 저장장치에 기억이나 추억이란 데이터를 남긴다. 문제는 평범한 인생의 데이터는 존재가 사라지면 함께 사라진다는 것 정도. 딱히 그 데이터가 남아서 대단한 의미를 창출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시마무라가 눈이란 은유로 존재하는 고마코나 유우코의 삶을 관조하며 느끼는 창백한 아름다움 정도의 의미는 있겠지만.


매번 다듬어진 글을 쓰려고 분필을 그어왔는데, 오늘은 그저 쓰고 싶은 마음에 커피숍 티슈에 끄적이듯 써봤다. 마음이 좀 정돈되는 듯 하다. 나쁘지 않다. 나를 위해 글을 쓰는 것.


이 잡문집은 그런 용도로 써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