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국이 끝물이라 그런지 유럽 공항에 여행객은 많은데 그동안 잘린 사람들 수만큼 일하는 사람을 뽑지 않아서 그런지 검색대와 입국심사대 등 모든 곳에 줄이 끝이 없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들어온 기내는 거의 만석이었고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때문에 그쪽 영공을 지나갈 수 없어 돌아가느라 평소보다 비행시간은 오래 걸렸다. 기내에서의 지루함을 달래는 데는 괜히 한 번 들춰 보는 면세품 브로셔만 한 것이 없다. 그렇게 브로셔를 보기 전에는 단 한 번도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지만 갑자기 무척 갖고 싶어진 건강상품이나 한방 화장품 몇 가지를 주문하고 차례를 기다리는데 뒷자리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온다.
“거스름돈이 없다고요?”
“아 예, 손님, 저희가 지금 기내에서 다른 손님들이 카드 결제를 많이 하셔서 현금으로 유로화가 많이 걷히지 않았는데요. 유로화로 거스름돈을 받으시길 원하시면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한국 돈으로 그냥 받을게요.”
“아 예, 그런데 손님, 아마 뒷 좌석 분들까지 결제를 도와드리고 나면 거슬러 드리기에 충분한 유로화가 걷힐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보시겠어요?”
“아니 그냥 한국돈으로 받는다고요.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어?”
내가 들은 게 맞나? 어떻게 사람 면전에 대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말할 수 있지? 혼잣말을 한 건데 데시벨 조절이 안 돼서 승무원 귀에 들리게 한 건가? 아니, 혼잣말이라도 왜 그런 소리를 하지? 승무원은 충분히 설명을 잘한 것 같은데……
“손님 죄송합니다. 기내 소음 때문에 잘 안 들렸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내가 다 황당한데 승무원은 즉각적으로 사과를 하고 너무나 프로답게 대응했다. 나는 기계적인 친절을 완벽하게 체화시켜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감정노동자의 프로다움에 감탄하기보다는 분노가 치밀었다. 왜 이 사회는 타인에 대한 기본 예의를 지키지 않는 소비자를 대우해 주어야 한다고 노동자를 교육한단 말인가!
다양한 국적의 비행기를 이용하다 보면 한국 항공사의 승무원들이야말로 가장 친절하고 빠릿빠릿하며 일을 잘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외국 항공사 직원들은 훨씬 차갑고 고압적일 때도 많고 절대 굽실대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친절하고 일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막말과 무례함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함부로 대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잘해 주면 오히려 더 만만히 보고 함부로 대하는……
누구나 비겁한 구석이 있다. 사람을 봐 가며 행동하기 마련이다. 어려운 사람이 있고 쉬운 사람이 있다. 편한 사람이 있고 불편한 사람이 있다. 누구에게나 젠틀한 문화시민이 되기 힘들다면 최소한 어려운 사람 앞에서는 하지 못할 언사를 쉬운 사람, 만만한 사람에게도 하지 않는 기본 예의만이라도 지켜 주면 좋겠다. 윽박지르고 억지 사과를 받아 내는 사람은 이 난감한 대화의 승자라고 본인은 느낄지 몰라도 옆에서 들어 보니 정말 보기 안 좋은 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