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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내리는 눈 Oct 29. 2020

[바젤] 꾸준한 불면, 루이스 부르주아

2019년 9월의 기록 

 루이스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의 거대한 거미를 처음 만난 건 2007년 이태원 리움에서였다. 그때는 거미의 거대함과 기괴함에 압도되어 '이 작품 제목이 엄마라고?'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곧 잊어버렸다. 당시 개관한 지 3년밖에 안 된 서울에서 가장 현대적이며 트렌디한 미술관에 입장하고 나니 다른 작품들을 구경하느라 들어오는 길에 정원에서 만난 거미는 이미 그 인상이 흐려져 있었다. 

 

 두 번째 만남은 2007년 12월 런던의 테이트 모던 (Tate Modern)에서였다. 지금 검색해 보니 그건 2007년 10월부터 2008년 1월까지 했던 특별전이었다. 소개글에 나오듯 드로잉, 판화, 그림, 조형물 등 200점이 넘는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했는데 다시 만난 루이스 부르주아는 여전히 어둡고 뒤틀려 있고 고통스럽고 기괴했다. 알고 보니 어린 시절 아버지가 자신의 가정교사와 바람이 나서 어머니에게 상처를 주었던 기억으로 인해 가부장제와 남자에 대한 분노가 있었고 그 감정들이 특히 초기작에 많이 반영되어 있다고 한다. '어머니를 안타까워하고 모성을 신성시하는데 왜 거미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지만 여행자는 런던에서 볼 게 한 두 개가 아니었기 때문에 테이트 모던을 서둘러 나와 밀레니엄 브릿지라는 곳으로 달음박질했다. 화력 발전소를 현대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테이트 모던도, 테이트 모던에서 멀지 않은 템즈강 위에 우뚝 선 밀레니엄 브릿지도 없던 시절에 런던으로 배낭여행을 왔던 옛날 사람이니까, 나는.


(다리에 얽힌 다른 세대차이 추억이 있는데 파리에서 만난 한국인 학생과 대화 중 '나는 대학교 때 성수대교가 무너져서 지하철 2호선을 쭉 타고 다니지 못하고 버스로 갈아타느라 경기도에 있는 집에서 학교까지 아침에 3시간씩 걸릴 때도 있었다'라고 하니 그녀가 "네에?!"하고 거의 비명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굳건한 다리가 무너졌을 때도, 지금은 우뚝 서 있는 다리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에도 나는 있었다.)


 그렇게 살면서 가끔 스쳐 지나가기도 했지만 '어, 나 그 이름 알아!'라는 반가움 정도에 그쳤던 루이스 부르주아를 2019년 9월 바젤에서 다시 만났다. 


 2007년 테이트 모던 전시 소개글에서 90대의 나이에도 기존 질서에 대한 전복과 반항을 멈추지 않는 활력의 소유자로 소개된 루이스 부르주아는 2019년 파운데이션 바이엘러 (Foundation Beyeler)의 '루이스 부르주아, 불면의 드로잉 (Insomnia Drawings)' 전시 소개글에서는 Louise Bourgeois (1911 Paris – 2010 New York)으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아직 있다. 


 라텍스, 브론즈, 대리석, 거울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조형물을 만들었고 무엇보다도 그녀를 세상에 널리 알린 거미 '마망 (Maman)'의 크기에서 알 수 있듯이 거대한 규모의 작품으로 자신을 표현한 그녀지만 이 전시는 오롯이 그녀의 드로잉에 집중한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오랫동안 불면증을 앓았다. 잠이 오지 않는 수많은 밤에 억지로 누워 뒤척이다가 침대 머리맡에 놓인 아무 종이에나 (우편물의 겉면, 잡지 표지, 메모지, 공책 닥치는 대로) 주로 붉은 펜으로 가끔 까맣고 파란 것들로 드로잉, 스케치, 시구들을 썼다. 그렇게 1994년 11월부터 1995년 6월까지 그녀가 그린 220점의 드로잉이 모여 파운데이션 바이엘러의 지하 전시실 한 층을 가득 채웠다.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나선과 곡선, 식물, 집, 빌딩의 모티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을 채웠던 잡념들이 종이 위에서 불안한 붉은 선으로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며 나는 묻는다. 8개월. 240일. 5,760시간의 시간 동안 이토록 괴로웠나요, 그대...... 


루이스 부르주아, 불면의 드로잉 전, 바젤.

 시카고의 작은 스튜디오 내 방 침대에 누워 억지로 눈을 감으면 논문과 이메일의 단어들이 나를 공격하고 눈을 뜨면 천장이 무너져 내려앉아 내 가슴 위를 덮치는 환상을 보았다. 파리의 아파트 침실에서 하도 뒤척여 옆에 누운 사람이 나 때문에 잠을 못 잘까 봐 멀쩡한 침대 놔두고 거실 소파로 나가 거기서 웅크리고 누워 밤을 지새웠다. 이메일 미스커뮤니케이션으로 벌어진 오해를 결자해지 한다고 파리에서 비행기 타고 날아간 시카고에서 돈을 아끼려고 싸구려 호텔을 잡았는데 옆방에서 밤새 파티가 벌어지고 수상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듯하여 무서워 커튼을 치고 문 앞에 작은 탁자를 밀어 놓아 막은 후 눅눅한 베드 시트에 얼굴을 파묻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몸부림쳐 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불면증을 앓아 본 사람만이 알아보는 무언가가 전시실의 공기를 타고 부유하고 있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현대인은 불면증을 앓을 테니 관람객들 중 다수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불안한 생각들과 이어지는 개인적인 경험을 하고 있었을 거다. 


 아무튼 확실한 건 하나였다. 무엇이든 꾸준하라는 것. 불면이든, 고통이든, 창작이든 꾸준해야 의미를 만들어 낸다. 대가도 이렇게 꾸준했는데 내가 뭐라고 그동안 간헐적 노력파로 살아왔지? 한 번 해 보고 잘 안 되면 금방 포기하고, 하루 밤새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이틀 자고, 이번 생은 망했으니 다음 생은 안 태어나겠다고 건방진 농담을 찍찍 내뱉으며. 


 전시실을 나서니 계단 올라가기 전 구석에서 아이들 읽는 동화책을 팔고 있다. '거미 엄마, 마망 (Cloth Lullaby—The Woven Life of Louise Bourgeois)'이라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유년 시절을 그린 그림책이었다. '이렇게 어둡고 뒤틀린 유년 시절을 그림책으로 아이들한테 소개한단 말이야?'라는 지극히 오만한 어른의 고정관념으로 놀라서 책을 들춰 보았다. 애들도 어둡고 슬픈 세계를 알 자격이 있다는 걸 자꾸 잊는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집은 태피스트리 복원을 업으로 하는 집이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를 도와 천을 짜는 일을 했던 그녀는 자신이 엄마의 좋은 친구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엄마와 자신은 나란히 앉아 실을 짓는 거미 같았다. 아, 그래서 거미였구나. 거미는 구멍을 메우고 슬픔과 기쁨을 엮어 의미를 만들어 내는 엄마였구나. 그래서 작품 '마망'의 배에 대리석 알을 품고 있는 알주머니를 달아 작품의 주제인 모성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리움에서 본 '마망'은 작품 밑으로 들어가서 볼 수 없게 해 놨었기에 그냥 스쳐 지나갔었다. 리움이 잘못했네, 내가 무식한 게 아니라...... 그러고 보니 2007년에 테이트 모던에서 본 전시도 말년에 이르러 아버지로 대변되는 가부장제와 폭력성과의 긴 싸움에서 한 발 물러서 관조하는 듯한 시선으로 다시 모성 주제에 회귀하듯 천을 많이 사용했다고 하는데 왜 천이어야 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애들 읽는 동화책으로 많이 배운다.


 졸작이라고도 이름 못 붙일 글들을 세상에 공개하기로 나름대로 큰 결심을 하고 과연 나를 사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 글만 보고 좋아해 줄까 의심했는데 한 명, 두 명 좋다고 표시해 주니 얼떨떨하다. 브런치를 떠돌면서 수많은 루이스 부르주아를 보았다. 그들의 꾸준한 불면, 고통, 도전, 창작의 시간에 경의를 표한다. 파리, 시카고에서와 달리 난 이제 엄마라서 어른의 시간이 아닌 아이의 시간을 따라 살고 있다.  불면증도 없으면서 사는 게 너무 재미있어 잠들기 싫어하는 애를 위해 기도하고 노래 불러 주고 간지럼 태워 주고 간지럼 당해 주고 발 만져 주고 웃어 주고 웃겨 주다가 겨우 재우고 새벽녘에 찾은 불면의 시간에 커피 한 잔 들이키며 나도 꾸준히 써 봐야겠다.


'밤의 풍경이 낮시간을 침범했다.' 루이스 부르주아 불면의 드로잉  No. 57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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