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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에 내리는 눈 Nov 03. 2020

[시카고] 대인 커뮤니케이션의 기초 수업 (1)

픽션 에세이 (fiction essay)

 중간고사 시험 문제를 내느라 며칠 동안 밤을 새웠다. 아침 9시 수업이라니...... 학생일 때는 어떻게든 1교시 수업을 피해서 수강신청 표를 짜려고 했던 내가 이제 와 학교가 정해주는 시간에 가르치러 나가야 하니 ‘모든 선생들이 다 아침형 인간은 아니었겠구나, 그들도 나처럼 아침에 일어나 수업 오기가 죽을 만큼 힘들었겠구나’ 싶다. 밤을 새워서 마지막까지 시험 문제를 점검하고 혹시 있을지 모를 오탈자를 찾아내다가 늦어서 부랴부랴 과 사무실에 가 시험지를 프린트하고 교실에 뛰어 들어갔는데 한 자리가 비었다.  


 ‘이 녀석, 다른 날은 몰라도 중간고사 날까지 빠지다니......’


 진심으로 오늘 빠진 녀석의 학점이 걱정된다. 학교 수영부 소속인 그녀는 다른 운동선수 학생들과 달리 무단결석을 자주 했다. 학칙에 따르면 운동선수들은 시합과 훈련으로 부득이하게 수업을 빠지게 될 경우 코치의 사인이 들어간 사유서를 미리 강사에게 제출하고 빠진 수업에 대해서는 추후 별도의 과제로 보충하게 되어 있다. 내 수업에는 운동선수들이 많다. ‘대인 커뮤니케이션의 기초 (Introduction to Interpersonal Communication)’라는 수업명이 어떤 이유로 운동선수들과 타과생들을 혹하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커뮤니케이션 학과 전공 필수 과목인데 사회과학대학 소속이 아닌 학생들의 질문에 대응하고, 운동하느라 바쁜 학생들의 행정적인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가뜩이나 일주일에 세 번이나 만나는 수업의 업무량은 상상 초과였다. 가르치는 것과 연구 중에서 연구를 훨씬 더 중요시하는 소위 ‘R1 School’에서 아무리 잘 가르쳐 봤자 커리어에 이로울 것 없으니 애들은 대충 가르치고 그 시간에 논문을 한 줄 더 쓰는 게 낫다는 선배들의 팁은 아무리 들었어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논문을 심사하는 리뷰어들은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 학생들을 대충 가르친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래서 늘 허덕이면서도 ‘이번 학기는 티칭에 집중하고 방학 때 밀린 리서치를 해야지’, 하다 보니 그다음 학기에도 그 다음다음 학기에도 여전히 학술지에 제출할 수 있게 완성된 논문이 없었다. To be or not to be가 아니라 To publish or to perish (논문을 내느냐 망하느냐)라는 아카데미아에서 이렇게 현격하게 떨어지는 생산성으로 언제까지 붙어 있을 수 있을까, 불안한 나날들은 불면증과 히스테리를 발전시켰고 나는 과연 이 성질머리로 대인 커뮤니케이션의 기초를 가르칠 자격이 있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운동하느라 공부에 소홀할 것 같다는 선입견과 달리 대부분의 운동선수 학생들은 매우 성실했다. 자유분방한 미국이라지만 어릴 때부터 단체 활동에 익숙해서 덜 개인주의적이고 코치, 감독, 트레이너 등 어른들의 권위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 그런지 여타 미국 학생들과는 달리 선생을 윗사람으로 인정하고 공손한 태도를 보여서 흐뭇하기까지 할 때도 있었다. 정교수가 아닌 일개 강사인 나에게도 꼬박꼬박 프로페서,라고 부르는 그들의 순박함이 나의 열등감을 잠시 치유해 주었던 걸까. 더욱이 그들은 평점이 B0 이하로 떨어지면 그다음 학기에 대표 선발로 뛸 수 없다는 학교 규정 때문에 어떻게든 학점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시켜야 팀에 누를 끼치지 않고 장학금도 받고 자신의 미래도 보장되기에 오히려 다른 학생들보다 더 열심이었다. 비록 일반 학생들보다 이해는 느릴지라도 빠진 수업을 보충하기 위해 내 준 리딩과 숙제를 열심히 해 왔고 한 두 번 잊을 때는 있어도 대부분 결석 사유서를 미리 제출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문제다, 수영선수 앨리스 킴.  


 외국에 오면 제일 조심해야 할 사람이 한국 사람이라 했던가. 학생들을 만나기 전엔 기대도 있지만 두려움도 있다. 특히 외국인 신분으로 그들을 만나려니 ‘우리 아들(딸)이 왜 B+가 나온 거죠? 얘는 전과목 A0 이상 받는 애라고요! 우리 애가 로스쿨 (메디칼 스쿨)에 못 가면 당신이 책임질 거요?’라는 미국판 ‘스카이캐슬’ 부모들의 전화를 받을까 봐 떨고 (실제로 학과에 종종 전화가 온단다), 때로는 내가 강한 악센트와 슬랭을 못 알아 들어서 학생 질문에 대답을 못할까 봐 떨고, 때로는 학기말 강의평가에서 ‘Go back to your country.’ 같은 인종차별적인 코멘트를 받을까 봐 떤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선의를 갖고 열심히 가르치면 아무리 되바라져봤자 10대 후반, 20대 초반인 순수한 영혼들은 잘 따라와 주고 가끔은 그들로부터 학기말에 코 끝 찡한 감동적인 인사도 듣는 (‘네 강의가 대학 와서 들은 강의 중 제일 도움되었어.’라든지 ‘네가 우리 학교에서 가르치는 선생들 중에서 옷을 제일 잘 입는 것 같아.’) 그 맛에 ‘티칭은 대충, 리서치에 집중’이 안 되고 ‘티칭에 올인, 리서치는 작파’하는 지난 3년이었다. 나와 인종도 국적도 문화도 다른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지 아주 작은 일부분은 가르치는 데 성공했다고 자부했는데, LA에서 온 재미교포, 한국계 수영선수 학생 앨리스 킴이 그런 내 자부심에 작은 균열을 가져왔다.  


 단 한 번도 사유서를 제출하지 않고 무단결석은 밥 먹듯이 하고 그다음에 만나 왜 빠졌는지 물어보면 어떤 미안한 기색도 없이 구체적으로 변명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고 그냥 ‘훈련이 있었어’ 해 버리는 앨리스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그렇게 빠지다간 수업 진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보나 마나 중간고사에서 낙제점을 받을 게 뻔했다. 나도 이제 더 이상은 초짜 강사가 아니라 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하기에 수업 시간은 물론 오피스 아워 동안에도 한국계 학생에게 단 한 번도 한국어를 써서 대화한 적 없지만 만약 그녀가 오피스 아워에 찾아오면 한국어로 ‘이 놈 정신 차려라’, 부드럽게 한 마디 해 주고 싶은 큰 언니의 심정이었다. 물론 수업도 안 오는 앨리스가 오피스 아워에 찾아온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시험 감독을 마치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사겠다고 방금 시험을 끝낸 내 수업 학생들과 눈인사를 하며 같은 줄에 서서 어색한 침묵을 버텨 겨우 벤티 사이즈 아메리카노를 픽업했다. 어쩌랴, 이것이 없으면 채점하는 동안 나는 제정신이 아닐 것을. 한 손으로는 학생들의 답안지 무게로 너무 무거워진 캐리어를 끌고 다른 한 손으로는 출렁거리는 커피를 들고 나는 한 방울이라도 쏟을세라 펄펄 끓는 아메리카노를 입 속으로 털어 넣으며 얼얼한 혓바닥으로 땅을 짚어 가며 캠퍼스 호숫가 이 쪽 끝에서 저 쪽 끝으로 겨우 겨우 헤엄쳐 갔다.


여기서 저기까지 겨우 겨우.


 150년 된 학교 캠퍼스에서 커뮤니케이션 과는 다행히 엘리베이터가 있는 신식 건물에 자리해서 2층의 사무실까지 문제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상상해 보라. 만약 이 와중에 엘리베이터까지 없었으면 나는 지옥불처럼 끓는 벤티 아메리카노를 입에 물고 하도 마우스 클릭질을 해서 건초염이 온 손목으로 중간고사 답안지의 무게로 15kg이 넘게 나갈 것 같은 기내 가방을 들고 계단을 등반해야 한다. 인생은 늘 그렇게 나에게 숨 쉴 수 있는 마지막 한 구멍을 남겨 주곤 했다. 더 이상은 못해 먹겠어, 하며 다 집어던지고 탈출하기 바로 그 직전까지 나를 몰아가서 거기에서 멈추면 핑계를 대고 도망가는 것 같아 계속 쳇바퀴를 돌게 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게 행운이었는지 불운이었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폭발할 수 있게 커뮤니케이션 단과대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었더라면...... 그렇다면 그 날 나는 캐리어를 집어던지고 하루라도 더 빨리 그 지독한 아카데미아에 대한 지난한 집착을 버릴 수 있었을 텐데.


 사무실에 도착해서 랩탑을 켜고 새 이메일을 확인하는 순간 나는 힘들게 들고 온 커피를 마침내 쏟을 뻔했다.

 

‘나 언제 중간고사 안 본 거 make up 할 수 있어?  from 앨리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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