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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리 Nov 05. 2019

적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그럼에도 난 웃고 울며 함께 오늘을 살아간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가끔씩 주인공이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들에 의해 죽거나 배신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믿었던 친구나 주변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배신을 당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다른 어떤 악역들보다도 충격적이고 더한 씁쓸함을 선사한다. 그만큼 배신이란 단어가 주는 임팩트가 강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세상을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알고 지내던 이들과 등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있고 평생을 함께 해온 죽마고우도 한순간의 잘못으로 인연을 끊게 되는 경우도 있다.


글을 막 시작할 무렵 나도 이런 씁쓸한 경험들을 했다.


글도 홍보가 관건인 시대. 독자에게 사랑받는 글이란 첫 번째야 필력이 좋아야 하는 게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요즘은 소설이나 웹소설의 경우도 출판사와 계약 시 프로모션이나 홍보에 관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내 글을 알아주는 좋은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되면 더없이 좋은 일이겠지만 그렇지 못한 신인이나 작가 지망생들의 경우는 SNS나 주변 지인들을 통해 먼저 내 글을 적극적으로 알리는 것이 답일지 모른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 해도 읽어주는 독자들이 없다면 넘쳐나는 작품들 속에 내 작품은 소리 없이 묻혀 사라지고 말 테니까.


그럼에도 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가까운 직장 동료들과 친구들, 알고 지내는 주변 사람들 어느 누구에게도 내가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당시 나의 글을 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 만큼의 자신감이 부족했고 알고 지내는 지인들보다는 순수한 독자님들과 더 소통하며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첫 직장에 입사하고 지금까지 거의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해 온 분이 있다. 직장에서는 하늘과 같은 선배였지만 언니가 없던 탓에 직장 밖에서는 언니라 부르며 가깝게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다.


지금은 서로 다른 지역에 있게 되며 문자와 전화로만 연락을 주고받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도 기쁜 일이 있을 때도 누구보다 언니를 먼저 찾았다.


피를 나눈 친자매는 아니지만 친자매 이상으로 믿고 때로는 의지하며 힘들고 지친 직장 생활에 나에게 있어 언니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였다.


첫 글을 연재하고 고민 끝에 언니에게는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을 알리려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주고받던 인사 끝에.


"언니, 저 작가 되려고 글 쓰기 시작했어요."

"뭐?"

"작가 되려고 글 써서 연재 시작했다고요."

"누가? 네가? 네가 글을 쓴다고?"


순간 높고 강한 어조의 네가?라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서운하게 들렸을까? 단순히 내뱉은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당시 내 마음속엔 여러 가지 감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전화를 끊고 언니도 조금 그랬었는지 "누구보다 응원할게, 이 작가님 파이팅!"이라는 문자를 보내왔지만 문자를 받고서도 이미 내 마음은 갈기갈기 너덜너덜 해진 뒤였다.


그 마음이 괜찮아지기 며칠 지나지 않아 또다시 씁쓸함이 폭풍우처럼 밀려오고 말았다.


선플이 있으면 악플도 있는 법. 웹소설 다음화 연재를 위해 들어간 플랫폼에서 악플을 읽고 어쩐지 마음이 또다시 슬퍼져 버렸다.


악플을 달던 그분은 처음이 아니었다. 다른 작가님께서 말하시길 나에게 도움이 되는 댓글이면 그게 악플이라 해도 받아들이고 무조건적인 공격형 댓글이라면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라고.


하지만 내가 슬퍼진 건 악플 때문이 아니었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 그 악플 다셨던 분이 같은 작가분이었다는 것. 그래서 세상에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있는 건가?


친분이 두터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 서로 응원의 말을 주고받던 동료 관계였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내 마음은 화나기보다는 걷잡을 수 없이 슬퍼져 버렸다.

어느 날 알고 지내던 다른 작가님께서도 너무 심한 악플러들이 두 명 있어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아시는 분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그분 역시 악플러들 중 한 명은 같은 작가, 또 다른 한 명은 급기야 오랜 시간 가까이 알고 지낸 지인이었다고 하셨다.

그 작가님 역시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겠지.


세상 모든 곳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이 존재한다. 경쟁의 시대에 사는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이 그 대열에 섞여 살아남아야 하는 게 현실이겠지만 그래도 난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서로의 믿음을 등 돌리면서까지의 경쟁이라면 피하고 싶다.  


요즘 같은 세상 바보 같은 생각이라 할지 몰라도 함께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돕고 축하받을 일에는 진심으로 축하도 해주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울게 되더라도 그렇게 살고 싶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같은 작가님으로부터 받은 짧은 격려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던지.



누군가의 뒤늦은 꿈들에 "잘할 수 있어요, 노력한 만큼 잘 될 거예요, 응원할게요!"라는 진심의 말을 건네며 비록 또다시 믿었던 사람들에게 상처 받는 때가 오더라도 상대방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 믿고 서로 응원하며 그렇게 함께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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