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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리 Oct 15. 2019

인생에 정해진 길과 답은 없다

인생에 정해진 때란 없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하고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직장 생활을 이어다.


멋모르고 무조건 열심이었던 신입 시절을 지나 출퇴근 시간조차 잊은 채 이어졌던 고된 직장생활 끝에 어느 날 뒤돌아보니 내 뒤엔 나를 따르는 다른 신입들이 있었 직장에서 경력이 쌓이는 만큼 맡게 되는 직책도 한 단계 높아졌으며 그만큼 책임감과 무게감도 더해졌다.

  

십 년 넘은 직장생활이 그리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매일 더해지는 업무량에 그칠 줄 모르는 야근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적잖은 스트레스들로 체력조차 바닥이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길다면 긴 직장생활 동안 세 번의 이직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새로운 환경과 그곳에서 만난 또 다른 사람들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노력했었다.




어느 주말 계절이 바뀜에 따라 모처럼 대청소를 하기로 마음먹은 난 곳곳을 닦고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책꽂이 깊숙한 한편에서 어렸을 때 즐겨 사용했던 손때 묻어 낡은 캐릭터 수첩 발견했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글씨체. 

수첩을 넘겨보다 멈춘 "나의 꿈"이란 글자 밑에 연필로 쓴 내가 되고 싶은 것들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날 따라 유독 내 눈에 들어왔던 한 문장.


"작가로 성공해서 내 이름으로 된 책에 사인해주기" - <1번은 엄마>



어릴 적부터 꿈이 뭐가 그리도 구체적이었는지 큼직 막 한 글씨에 구체적인 내용까지 보고 있노라니 그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보면 난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일도 되고 싶은 것도 참 많은 아이였다. 유치원 선생님부터 집주인, 작가, 아나운서, 스튜어디스, 미스코리아까지.


극심한 고소공포증 탓에 일찌감치 스튜어디스의 길은 접었고 미스코리아의 평균 신장에 조금 아주 조금 미달되어 모든 게 전적으로 키 탓이었다 우기며 미스코리아의 꿈 역시 포기했으며 사람들 앞에 나서길 좋아하지 않는 어쩌면 과거 소심했던 성격 탓에 아나운서의 꿈도 나에겐 무리며 포기해버렸다.  


이런저런 말도 안 되는 핑계 아닌 핑계들로 나의 꿈 목록에서 그렇게 이루고 었던 꿈들이 하나 둘 지워갔던 것 같다. 


그럼에도 끝까지 꼭 이루고 싶었던 하나가 작가였다.



이십 대를 지나 취직을 하고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정착하고 안주하여 힘들고 지쳐도 이게 내 길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전공을 살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이라 생각하고 지냈다.

 

다른 무언가를 시작해보려 생각했다가도 어쩌면 늦은 건 아닐까?


 애매한 나이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끝도 없이 밀려오는 두려움에 눈 앞에 닥칠 금전적인 문제까지 꿈만을 좇기에는 이런저런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처럼 순수하게 마냥 꿈만 꾸기에는 어느새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내가 되어 있었다.


그랬던 내가 그날따라 낡은 수첩에 적힌 작가라는 단어에서만은 웬일인지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꿈꿔 왔던 일, 무언가에 이끌리듯 이것저것 끄적여놓은 노트들과 메모, 아이디어 수첩들을 꺼내어 컴퓨터를 켜고 무작정 글을 쓸 수 있는 곳부터 찾았다.


그러다 우연히 찾게 된 것이 웹소설이었다. 그날부터 난 출퇴근 시간, 퇴근 후 그리고 주말까지 시간이 잠시라도 나면 나만의 소설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처음이라 서투르고 어색했으며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수정할 것 투성이었지만 그럴수록 더 열심히 정신없이 써 내려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핸드폰 메모장엔 생각날 때마다 적은 글의 소재들과 내용으로 가득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한편 두 편 글이 쌓고 어느 정도 글이 모였을 때 플랫폼에 처음 연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내 글이 처음으로 연재되던 날 그날의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첫 연재한 글에 좋아요 하트와 댓글을 보던 순간. 어떤 순간보다도 가슴 떨리고 설레는 일이었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나의 첫 번째 독자님을 잊을 수가 없다. 만나서 따뜻한 차라도 한잔 사드리고 싶을 만큼 부족한 내 글을 읽고 응원해주시며 첫 댓글을 적어주신 독자님이 너무 고마웠다.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했지만 작가님이라는 글자를 처음 본 날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용이 다소 이상하고 개연성이 부족하더라도 일단 무조건 글을 써 내려갔고 그 사이 용기 내어 도전한 공모전에서 비록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실패했던 공모전을 통해 오히려 내 글의 부족한 점과 보완할 점을 발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가 좋지 않다고 실패했다고 해서 포기해버리기보다는 그걸 계기로 보완해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는 발판으로 생각하고 퇴근 후 아무리 피곤하더라도 어떤 글이 되었던지 하루에 정해진 양을 매일 조금씩 채워나가도록 노력했다.  


그렇게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꾸준히 연재한 덕에 모두가 꿈꾸던 대형 출판사는 아니었지만 작은 출판사에 컨택이 되고 첫 작품 출간으로까지 이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많이 서투르고 부족한 첫 작품이었지만 그런 내 글을 읽고 댓글을 적어 응원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글을 쓰기 시작하고 가슴이 벅차오르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행복함을 느꼈다.



그리고 나의 또 다른 도전의 시작 브런치.


거창하게 무언가를 소개하고 지식을 전달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고 느낀 이야기들로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와 소소한 행복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망설임 끝에 도전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조금 더 일찍 브런치의 문을 두드리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들지만 사람 냄새 묻어나는 글로 많은 분들에게 때로는 공감을 지친 일상에 웃음을 잠시 생각하며 쉬어갈 수 있는 여유를 드리고 싶다.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아서는 이룰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여러 가지 생각들로 누군가 도전하기를 주저하며 망설이고 있다면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머뭇거리며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보다 조금 실망하게 되더라도 일단 도전하라 말하고 싶다.


해보고 후회하는 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단 나을 테니까.


글을 쓰면서 주저앉고 싶을 때도 포기하고 싶을 순간도 있겠지만 언젠가 내 글을 읽고 공감하며 함께할 나만의 독자님들을 기다리며, 어렸을 때 꿈처럼 내 글을 사랑해주는 분들께 이름 석 자 적어 드릴 수 있는 그 날을 위해 오늘도 나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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