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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리 Oct 04. 2019

조금 더 따뜻하게

다른 사람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대학 졸업 후 취업까지 하게 된 나는 사랑스러운 딸이자 말 그대로 이 씨 가문의 영광이었다.


신입이던 난 한 달이란 시간이 어떻게 지나는지도 모를 만큼 적응하느라 배우느라 매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직장에서 받은 첫 월급은 비록 병아리 눈물보다 아주 조금 더 많은 금액이었지만 오롯이 내 힘으로 최선을 다해 번 돈이었으며 비싼 물건을 아니어도 가족들에게 무언가를 사 줄 수 있다는 기쁨에 한 달간의 피곤함이 눈 녹듯 사라졌었다.


하지만 나의 첫 직장에는 이런 기쁨과 행복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고작 한 달의 경력을 쌓고 있는 동안 그곳엔 5년 차 경력을 자랑하던 그녀가 있었다당시 이제 겨우 출근을 한 달 넘긴 나에게 5년이란 경력은 엄청나게 높은 산을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


신입이란 단어의 뜻이 그렇듯 그 시절 아무리 잘해보려 노력하고 하루 종일 바쁘게 종종걸음으로 이리저리 쫓아다녀도 모든 게 서투르며 의도치 않은 실수에 실수를 반하기 마련인 법.


나를 포함한 신입들에게 5년 차 경력의 그녀는 아쉽게도 신이 아닌 쌈닭과도 같은 존재였다. 



백전백승의 승률을 자랑하듯 누가 뭐라도 하나 잘못했다가는 바로 달려들어 쪼아버리려는 싸움닭처럼 종일 미간을 찌푸린 채 신입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부터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모든 일들에 버럭 화를 내기 일쑤였고 하여 그런 그녀를 신입들 사이에선 쌈닭이라 칭했다


그 사소한 일들이라는 게 직장에 큰 해를 입힌다거나 손해를 끼치는 일들도 아닌데 업무와 관련 없는 일이나 신입들의 말투, 표정, 행동 하나하나까지 그녀에겐 모두 비아냥과 조롱, 꼬투리에 꼬투리로 이어졌다. 


그녀가 우리에게 헬렌 켈러의 설리번 선생님 같은 존재였다면 두고두고 고마워하며 존경하며 오래도록 잊지 못할 좋은 기억이 되었을 텐데 정말이지 어떤 날은 "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넌 그렇게 잘났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고 오르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런 그녀 때문에 눈물 흘리는 신입들이 종종 생겼고 나 역시도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지쳐가며 출근조차 하기 싫을 정도의 날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월요병은 극에 이르렀고 그 당시 난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도 사람에게 받는 정확히 그녀로 인해 오는 스트레스 지수가 훨씬 더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머리는 쓰라고 있는 거다." "오늘 옷은 왜 또 그래?" "넌 잘하는 게 뭐냐?" 미간을 잔뜩 찡그리며 하는 말이라곤 늘 이런 식의 말들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누구보다 밝게 누구보다 상냥하게 웃을 때도 있었다. 본인보다 높은 직장 상사 앞에서나 자신과 관련된 가까운 사람들에겐 눈이 반달이나 못해 아주 닳아 없어져 버릴 정도로 돌변하며 친절함을 보였.


부리로 쪼아대려던 조금 전 모습과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쌈닭 같은 그녀에게도 분명 서투르고 실수 연발이던 신입 시절이 있었을 텐데 정말이지 망각의 차라도 마신 건가 싶었다.


지킬 앤 하이드 같은 그녀를 보며 어느 날 문득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세상엔 아직도 분명 갑과 을이라는 게 존재하지만 모든 인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누구나 알고 있는 당연한 사실을 그녀 혼자 모르고 있던 게 아니었을까?


돌이켜보니 그런 한 사람 때문에 하루 동안의 내 감정과 기분이 롤러코스터처럼 흔들리며 파도친다는 게 시간 낭비이자 의미 없는 일들로 느껴졌다.


어차피 평생 볼 사이도 아닐뿐더러 그녀 역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일 뿐일 텐데라는 생각을 하고 그녀가 막무가내로 내뱉는 날카로운 말들에 하나 둘 신경을 끄기 시작하니 끝없는 스트레스의 나날들이 어느 순간 조금씩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라는 속담이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렇게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서투르고 늘 실수투성이기 마련이니까 다그치기보다는 좀 더 따뜻하게 그리고 상냥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 상하지 않게 다치지 않게 마주 대하는 편이 일의 효율성과 능률적인 면에서도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 후 그녀가 퇴사하기 전까지 2년의 시간을 함께 더 보내며 느낀 한 가지.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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