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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실 Jul 04. 2017

2017 제주혼자걷기 :: 1일차 올레 17코스

걷기와 우리내 인생은 닮은꼴

2017년 7월 3일 월요일

날씨 습하고 더움


제주도를 온전히 한 번 걷고 싶다.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은채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정해 놓지 않은 여행은 삼십 평생 이번이 처음이다. 시간과 장소에 얽매이기 싫었고, 계획도 숙박도 그날 그날의 운에 맡기자는 것이 이번 여행의 컨셉이자면 컨셉. 11시 50분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비행기의 익숙한 떨림이 나쁘지 않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또 무엇을 얻게 될까? 여행은 무언가를 채우는 것이 아닌 비우는 것이라고 했던가. 이론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마음을 내려놓는 여행을 하기가 아직까지 쉽지는 않다. 얻는 것은 얻는대로, 비우는 것은 비우는대로 그렇게 하늘에 이번 여행을 맡겨보련다.



이왕 걷기로 한 이상 제대로 한 번 걸어보고자 꿈꿔왔던 올레길을 걷기로 한다. 공항을 기점으로 시계 방향으로 걷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해서 그렇게 할까 잠시 고민해봤지만 내키지 않는다. 익숙한 반시계 방향을 선택한다. 공항 올레를 시작으로 17-16-15...코스의 역방향으로 내려간다. 역방향을 나타내는 오렌지색 화살표만 따라가면 된다. 대략 계산해보니 공항올레를 포함 17코스를 다 도는데 4~6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오늘의 목표는 17코스의 시작점까지 걷는 것이다. 마침 근처의 게스트하우스도 하나 있다.



나름 멋을 내고자 PK티를 입었는데, 걷기 시작한지 10분도 안돼서 후회한다. 7월의 제주는 생각보다 훨씬 덥고 습하다. 결국 얼마못가 편한 기능성 옷으로 갈아입는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지치기 시작할 무렵 황홀한 광경이 시작된다. 제주공항과 한라산의 완벽한 하모니. 비로소 제주에 온 것을 실감한다.




걱정했던 날씨는 아직까지 문제없다. 내일 태풍이 북상한다고 했던가? 내일 되보면 알겠지 뭐. 간혹 빗방울이 떨어지긴 하지만 비는 문제될게 없다. 뜨거운 햇살과 습도가 문제이다.



예전 제주를 여행할 때 곳곳에 묶여있던 저 리본은 도대체 뭘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올레에 대하여 무지했었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저 리본만 부리나케 찾아 다니고 있다. 잠시라도 리본이 보이지 않으면 걱정과 초조함이 몰려온다.



두 시간쯤 걷고나니 조금씩 허기가 지기 시작한다. 여행을 자주 하다보면 간판만 보아도 그집의 맛이 어느정도는 느껴지는데, 지금과 같은 여행에서 맛은 사치이다. 가격만 맞고 문만 열었으면 무조건 들어가서 먹어야 한다. 제주도 첫끼로는 해물라면이 먹고 싶었는데, 거짓말처럼 라면집이 나타난다. 지침, 더움, 다리아픔, 배고픔, 음식에 독을 타거나, 주인이 욕만하지 않으면 크게 칭찬해 줄 수 있는 컨디션이다.


자금이 넉넉하진 않지만, 첫끼부터 몇천원에 목숨걸기 싫어서 제일 먹고 싶었던 문어라면을 시킨다. 일단 내부 청결도와 비주얼은 합격. 맛도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다. (사실 홍합에 문어를 넣은 라면이 맛없기도 쉽지 않다.) 오픈한지 얼마 안 된 식당 인 것 같은데, 잘됐으면 좋겠다. 다음에 지나가게 된다면 꼭 다시 한 번 들릴 것이다.



이제는 옆 동네처럼 익숙한 어느 항구 마을과 이호테우 해변을 지난다. 이쯤에서 혹시 몰라 오늘 가기로 (나혼자)정한 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하고, 이번 여행의 1차 당황스러움이 시작되었는데, 오늘 영업을 하지 않는단다. (??) 제주도는 특성상 월요일, 화요일에 문닫는 식당은 많이 보았는데, 게스트하우스가 문을 닫는다니...? 하하 이것이 바로 즉석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스스로 위안을 하고 17코스 중간에 있는 눈여겨 보았던 다른 게스트하우스로 전화를 한다. 다행스럽게도 문제 없단다. 원래 가기로 했던 게스트하우스보다 1시간정도 가까운 위치에 있는 '돌돌게스트하우스'가 오늘의 숙소로 결정되었다. 웬만하면 하루에 한 코스는 꼭 걷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지 뭐, 오늘은 약 10km정도 걸었는데 몸도 많이 피곤하다. 결과적으로 잘되었다.



농가 민가를 개조해서 만든 전형적인 제주의 게스트하우스. 사장님도 친근하고 전체적인 느낌도 나쁘지 않다. 보통 게스트들이 많으면 파티도 하고 저녁도 같이 먹는 것 같았는데, 오늘의 게스트는 나혼자 뿐이라 알아서 저녁을 먹어야 한다. 마침 근처에 있는 괜찮은 식당은 월요일 휴무, 막걸리도 살겸 오늘의 저녁은 삼각김밥이다.



물론 케바케이긴 하지만, 내가 경험한 모든 제주의 게스트하우스들이 내부에서 밥을 만들어 먹을 수 없다.(조식제외)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 먹거나, 인스턴트로 한 끼를 떼울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전자렌지니 가스렌지니 조건은 다 갖추어져 있지만 실행을 할 순 없으니, 그림의 떡이다. (사장님에게 잘 얘기하면 가능할 것 같긴했지만, 나름의 규칙과 틀을 깨고 싶진 않았다.)


올레를 혼자 걷고 있다는 얘기에 사장님이 '올레 함께 걷기'를 추천하신다. 날짜별로 해당 코스를 함께 걷는 프로그램이 있다는데, 내일은 4일이니 4코스란다. 시작장소와 종료장소로 픽업도 해주신다고 한다. 무거운 배낭 없이 걸을 수 있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으니 솔깃해진다. 하지만 누군가의 페이스에 맞추어 걷기가 썩 내키지는 않는다. 조금 생각해 보아야 겠다.



홀로 막걸리에 과자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

.

.


그렇게 제주도의 첫 날은 별일없이 지나가나 했는데, 웬 남자 두 명이 방으로 들어온다. 오늘 함께 묶을 게스트인데, 간단하게 맥주 한 잔 하자고 한다. 28살의 건실한 대구 친구 두 명. 오늘 처음 만난 두 명이지만 제주의 향기속에 어색함은 사치다.

그들과 인연이라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내일은 태풍이 북상하고 하루종일 비가 온다고 한다.

내일은 어떤 하루가 될까.

비가 올까.

올레 함께 걷기를 할까.

아니면 정처없이 길을 따라 걸어볼까.


조금은 늦게 잠이 들었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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