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을 깨물며 보낼 수밖에 없었던, 잊을 수밖에 없었던 단어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말하는 것보다는 쓰는 것을, 내가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보다는 대화를 듣는 것을 즐겼다. 타인의 생각을 듣고, 그것을 글로 다시 쓰는 것을 즐겼다. 이 사실을 깨달았던 시기는 2017년 4월, 그리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습관처럼 쓰던 글은 2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고, 여러 친구들과 얼굴을 알지 못하는 지인들, 이름을 알지 못하는 인파들이 축하의 말을 전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아마 19년 겨울 즈음에, 글을 써주어서 고맙다는 말.
하루의 연속은 계절이 되었고, 계절의 반복은 1년이 되었다. 그저 짧은 여행이라 생각하며 옮긴 발걸음은 나를 여정으로 이끌었다. 여러 친구들을 만났고, 여러 친구들을 보냈다. 찬사를 받기도 했으며, 야유를 받기도 했다. 환호와 함께 내게 장미꽃을 던지기도 했으며, 야유와 함께 내게 돌을 던지기도 했다. 이때가 아마 2019년 3월.
타인보다는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정리되지 않은 서류들처럼 흩뿌려진 기억의 편린들을 되짚으며, '그때는 이런 일이 있었지' 생각하며, 나는 그 이야기를 담아 글을 썼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기억들은 글이 되었고, 글의 집합은 작품이 되어, 나에게 작가라는 이름을 선물했다. 과분한 경험과 몇 년의 긴 여정, 수많은 인연과 경험을 지나, 다시 혼자가 되었다. 남겨진 것은 작가라고 적힌, 바라지 않았음에도 내 손에 쥐어진 이름과, 내가 적은 것은 나의 글인가에 대한 의문.
모방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나는 그 둘의 의견을 모두 동경하고 존경하며, 존중한다.
창작의 근원은 모방에서 비롯되며, 우리는 모방품으로 본질의 형상을 상상하며 배움과 즐거움을 얻는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본질이 될 수 없다.
언제나, 나의 손끝에서 탄생한 모든 문장은 나의 진리이자, 진실이며, 본질이라고 믿었다. 나의 나를 닮았으며 담았고, 나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문득, 내가 적은 글은 본질이 아니라는 사실이 머리를 스쳤다.
학습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문장, 모방으로 만들어진 문장. 나는 수만 개의 문장을 뜯어 수 천 개의 단어를 선택해, 수 십 개의 문장을 만들어, 하나의 글을 적는다. 이 반복에서 수만 개의 문장과 사별해야 한다. 예술은 나에게 있어 처절한 살육의 현장, 그리고 내 본질을 가리는 가면무도회.
문득, 사별한 단어들이 그리워졌다.
숨기고 싶었던, 가리고 싶었던 내 본질을 닮은, 사별한 단어들이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