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순기능

by 하설
상실(喪失) : 어떤 것이 아주 없어지거나 사라짐.
상실이란 무엇인가 고민했다.
상실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최근 글과는 조금은 먼 삶을 보냈다. 정확하게는, 브런치 작성과는 먼 삶을 살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만 같다.


그동안 뭐를 했나-, 고민도 하게 되면서도, 돌아보면 생각보다 바쁘게 8개월을 보냈다. 지난 6월에는 20년도부터 준비했던 '죽은 단어'를 출간했다. 2020년 처음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2022년 작업을 시작하였다. 원래라면 23년에는 출판이 완료되었어야 했는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Group 2085664819.png 죽은 단어(하설), 부크크 출판사

2017년 6월, 19살에 처음 출판을 마쳤을 때의 기분을 여전히 기억한다. 나의 책이 네이버에 등록되었던 날, "이러다가 베스트셀러에 올라가고, 만약 진짜 노벨상까지 받으면 어떡하지?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고민하며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영상을 보며 밤을 지새웠던, 무지했기에 순수했던, 그때를 기억한다.


그리고 2025년 6월, 5년을 준비해서 출판한 책이 등록되었을 때의 기분은 기억하지 못한다. 어떠한 느낌도 들지 않았다. 그저 '아, 올라갔구나.' 생각할 뿐이었다.


9월에는 생일을 기념하여 여러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그래서, 9월부터는 퇴근한 후 습관처럼 카페로 가 새벽까지 책을 읽고 있다. 예전에는 한 권의 책이 끝을 보일 때쯤이면 다음 책은 무엇을 읽을지 고민했었는데, 최근에는 책의 마지막장을 넘길 때면 무언가 다른 기분이 느껴진다.


10월에는 예전부터 볼까 고민했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사이버펑크 : 엣지러너"를 보았다. 왜 미루고 이제 보았나 싶은 후회가 들었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다. 그리고 지난 9월 경에 개봉한 "체인소맨 : 레제편"을 보고 왔는데, 벌써 3번을 보고 왔을 정도로 정말 재밌게 보았다. 두 작품의 공통점이라면, 정말 잊기 힘들 정도로 큰 후유증과 여운, 그리고 공통된 하나의 질문을 남겼다는 점이다. 번외로, OST도 정말 좋으니 꼭 들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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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체인소맨 : 레제편 OST "Jane Doe", (우) 사이버펑크 : 엣지러너 OST "I Really Want to Stay at Your House"

내 인생은 늘 상실의 연속이었다. 좋아하는 커피를 입에 머금은 채 좋아하는 책의 한 페이지를 읽고 넘기는 것조차도. 유의미한, 혹은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며 나는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시간을 상실한다. 무의식으로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의식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두려움이 목을 조른다.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는, 조금 더 이상에 가까운 생각을 가졌었다. 내 곁의 모든 것이 평생 함께하기를 바랐다. 보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이별이란 나에게 마치 손가락 끝에 박힌 작은 가시와 같다. 마치 잊지 못하게 하려는 듯한 작은 고통과 같은. 그리고, 그것조차 두려움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시를 뽑은 자리에서 쏟아지는 피, 어쩌면 상실을 상실하는 것조차 나는 두려웠던 것일까-.

웃기게도, 무언가를 잃는 것에 익숙해진 지금에서야 상실의 존재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한 듯하다. 상실을 잃은 세계는 초침을 잃은 시계. 반복과 순환은 종착지 없는 절망점. 결국, 무언가를 보내야만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가락에 박힌 가시를 뽑으니, 가시로 채워졌던 살의 틈에서 피가 쏟아졌다. 피가 멎으니 공허한 구멍만이 남아있었고, 다음날 눈을 떴을 때는 새살이 돋아나 있었다.


상실의 순기능, 어쩌면 그건 새로운 만남.

상실의 다른 말은 어쩌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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