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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설 Nov 17. 2022

태양이 내리쬐는 한여름에 쏟아지는 폭설

하설(夏雪)

예술의 의미는 창조와 파괴에서 시작되고, 비롯된다. 즉, 예술이란 창조, 혹은 파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 수 있고, 존재하지 않는 인물을 만들 수 있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지워낼 수도 있다. 그러나 존재하는 것을 지워낸 세계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창조이니, 예술의 본질은 창조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예술을 하는 이들은 이 세계 창조에 매료되어 예술이라는 행위를 멈추지 못한다.


세계적인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아가씨와 밤'에 나오는 한 등장인물은 '더 이상 책은 나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유서에 적은 후 자살을 택한다. 즉, 예술이란 창작자와 독자 모두에게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창조하는 행위이다. 그러니 아름다운 작품이 아니니 예술이 될 수 없다는 평론은 틀렸다.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 자체로도 이미 아름다움이라 정의할 수 있다. 예술이라 정의할 수 없는 작품은 단 하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지 못하는 작품. 모방만 존재하고 창조는 죽은 작품.


Writer's Box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고, 점차 문학이라는 예술이라는 모습으로 정착하게 되며, 나는 나의 작품에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쓰며,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보다 타인이 만든 길을 따라가는, 그런 나의 모습이 나는 혐오스러울 정도로 싫었다.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 이전에 1,000 팔로워를 가졌던 계정을 어떠한 공지 없이 탈퇴했다. 문득, 내가 이렇게 글을 계속 쓴다면 정말 나는 펜을 부러뜨릴 것만 같아서.


고민했다. 멈추지 않고 고민하고 고뇌하며 방황했다. 그리고 군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복무한 곳은 유난히 추운 전방 지역이었다. 밤이 되니 눈이 쏟아지고,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저 눈을 치울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여름에는 눈이 내릴 수 없는가? 분명 여름에도 한기는 있고, 겨울에도 온기는 있다. 하지만 여름에는 눈이 내리지 않는다. 그 말이 되지 않는 작은 의문으로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도달한 결론은 그러한 세계를 만들면 된다는 것. 여름에도 눈이 내리는 세계를. 문학의, 예술의 본질은 창조, 그러니 모든 문장은 진실이 될 수 있다.


7월의 한여름, 폭설이 내린다.

이것은 이 순간부터 진실이 된다.


나는 4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한 이름을 버리고 하설이라는 필명을 선택했다.


누군가 하설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답할 수 없었다. 이것을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이제 나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예술적 가치관이라고 말한다.


가끔은 예술을 하는 척하는, 예술병 환자라는 이야기도 듣는다. 재능도 없는 사람의 두서없는 문장이라며. 나는 그 말을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긍정하는 편이다. 나는 강박적이고 병적으로 이 문학이라는 예술에 집착하고 있지만, 그것을 뒷받침할 재능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뿐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우습기도 하다. 열정이 넘치는 여름에도 발악하고, 반항해야만 하는 습,


하설은 이런 의미를 가졌다. 나의 예술적 가치관과, 그리고 비참하고 비굴한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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