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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설 Nov 17. 2022

이방인의 기록 2 (2022)

이방인의 기록 2 - 사랑.

1999년 9월 10일, 선선하게 바람이 불고, 이제 가을이 왔다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을 때가 되었을 때 나는 부모님의 은총과 사랑을 받으며 태어났다. 경기도 평택시 오전 4시, 나는 이름 기억나지 않는 산부인과에서 모두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세상에 발을 디뎠다.


현재는 충분히 가지고 싶은 것 대부분을 가질 수 있고, 가고 싶은 곳 대부분을 갈 수 있는 수준의 능력을 갖춘 부모님 덕에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이에 언제나 감사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났을 직후만 해도 집의 경제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때문에, 나는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떠나 할머니 덱에서 살아야만 했다. 도시의 소음과 매연이 가득한 곳이 아닌, 마을 한가운데에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냈을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큰 느티나무가 있는, 생명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4살, 5살이 되었을 때 할머니의 곁을 떠나 부모님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때의 정확한 기억은 없다. 그러나, 좋지 않은 순간이었음은 확실히 기억한다.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의 기억을 상기할 때마다 느껴지는 불쾌함이 이를 증명한다. 이유는, 아마 과거에 느꼈던 사랑을 느끼지 못한 탓에. 진심 어린 사랑을 느끼지 못한 탓에. 그곳의 그들이 뱉은 이름다운 문장에는 전부 가식과 거짓이 섞인 악취가 가득했다.


초등학교 1학년, 남들보다 작은 키와 체구, 그리고 겁이 많은 성격 탓에 친구들 사이에서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왕따에 가까운 쪽이었다. 어린 나에게 이것은 큰 스트레스였고,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체중이 급격하게 늘어나니 이는 더욱 심해졌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아름답게 꾸며진 문장조차 들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살이 빠지며 또래 친구들보다 빠르게 성장했다. 이른 시기에 변성기가 왔으며, 골격이 넓어졌다. 그사이에 친해진 친구들, 그때쯤 나는 이사 탓에, 학교를 옮겨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전학을 온 학교에서도 나는 또래보다 발달이 빠른 애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는 큰 관심사가 되었고, 기피의 요인이 되었다. 일부는 ‘더럽다’ 표현하며 내 옆자리에 앉는 것을 꺼리기도 하며, 내가 만진 물건을 손대는 것조차 불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때가 초등학교 5학년, 아마 이때의 기억은 현재 강박적으로 사랑을 원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짧고 가벼운 친구들의 연애, 그 시기의 아이들이 그러하듯 그것의 반복이었다. 쉽게 만나고, 얕게 사랑하며, 쉽게 헤어진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러한 만남도 없었다. 그렇게 주변의 쉬운 만남과 이별을 지켜볼 때마다 사랑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사랑은 분명 그러한 것이 아닌데, 나의 세계는 유년기의 환상과 같이 무너지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 아마 반 배치고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전교 5등의 성적을 거두며 선생님들의 기대를 받으며 치른 첫 중간고사, 결과는 처참했다. 그 때문에 거부하던 학원도 강제로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근처 중학교의 한 여자, 학원 내에서도 예쁘장한 외모로 유명했던 사람이었다. 첫 만남에서 보였던 밝은 미소, 그것에 빠졌다.


사랑, 나는 아직도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이때 느낀 감정이 사랑과 가장 유사한 감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고, 남들이 연애라고 부르는 것을 시작했다. 10년이 지난 그때의 기억은 행복, 그때의 기억은 봄이렷다, 3월의 봄. 타인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진심으로 사랑했고, 사랑했다. 내가 저지른 행동에 대한 후회, 그러나 이 사랑에는 후회가 없다. 이때만큼 진심으로 순수하게 사랑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젠가 찾아올 이별의 아픔과 사랑의 회의감을 견딜 수 있을까, 나는 이 의문의 답을 찾지 못해 10년이 지난 지금도 누구도 만나지 못한다.


그 누구보다 사랑을 원해,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한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방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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