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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설 Nov 12. 2022

4월 옥보단 전시회

4월 옥보단 전시회 작품 중 일부.

불안과 불면의 상관관계


겨울은 한 생명의 탄생을 동반함과 동시에 한 생명의 멸종을 초래한다. 우리는 겨울에 태어났고, 우리의 선조는 겨울에 죽었다. 한 계절의 순환이 시작되는 계절은 봄이 아닌 겨울. 겨울을 혐오함과 동시에 동경하는 이유, 무언가 멸망하고 탄생하는 그 순간은 경이로움과 불안을 유발한다. 무너진 나무와 그 위에 싹을 피우는 이름을 존재, 그 모든 모습이 나임과 동시에 내가 아니다. 그 모든 모습, 그 모든 모습이 전부 나, 하지만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을 과연 나는 나의 모습이라 칭할 수 있는가?

태양이 짧아진다, 나는 그날 죽었다. 밤이 길ㅇㅓㅈㅣㄴㄷㅏ, 나는 그 순간에 태어났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고독한 존재, 허무와 허상에 물든 칠야와 그 속을 유영하는 모습은 아름다움과 예술의 척도가 되었다. 그것이 아름다움이라면, 나를 그곳까지 데려가 주시겠어요? 우리가 알던 신은 모두 이곳에 빠져 죽었다.

밤은 길어지지만 잠은 짧아지는 아이러니. 반복되는 독백, 그리고 독백은 불안을 증대한다. 때문에, 가끔은 중대한 사실을 망각하곤 하지. 나는 무엇을 쓰고자 했지? 길을 잃은 이방인, 방황, 이는 목표를 향한 지향으로 인한 방황과는 다르다. 눈을 가리고 헤엄친다. 구원을 바라는 나의 입을 파도가 가린다. 파도가 범람하는 땅 위의 모래성, 불안에 떨고 잠을 설쳐봐도 넘쳐흐르는 파도를 막을 방도는 없지.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불안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눈을 감는다, 눈을 감는다고 잠을 자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영생을 이뤘을 텐데.

불안이 숨 쉬는 나의 내면은 쉼 없이 단어를 토한다. 이는 본능. 살아있고자 하며 살아있음을 인식하기 위한 방어 기제. 끝없이 문장을 만든다. 끝이 보이지 않는 문장의 나열, 이는 하나의 글이 된다. 그 누구는 이를 작품이라 부른다. 그리고 작품을 보며 나를 문인이라 부른다. 나는 문인, 문인, 나, 나, 나는 문인? 자문하고, 자답한다. 이 또한 방어 기제.
나는 문인, 나는 문인?

부조리와 허무, 명제 없는 진리의 정의를 묻는다. 나는 이를 살아있음이라 답한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나는 아직 살아있고, 존재한다.

문인의 삶이란 가히 매혹적이다.
문인이 쓴 마지막 문장은 유서가 된다.

점진적으로 증대하는 나의 불안과 비례하게 증가하는 단어의 산란, 이는 나의 유서가 될 수 있다.

잠이 드는 그 순간에 쓴 마지막 문장은 유서가 된다.
때문에, 나는 잠을 이룰 수 없다. 이는 본능. 혹은 발악.



실존주의적 저항


Life is Nothing, 삶을 부정하는 그들과 삶에 대한 열정을 그들 모두를 설명할 수 있는 문장. 우리는 우리 안에 존재하는 이 두 모습을 모두 인정해야만 한다. 그러니 우리는 다르지 않아, 우리는 전부 같은 존재. 부정하고 반항하고 저항해도 우리는 결국 같은 존재. 하나의 우주와 두 개의 세계, 하나의 몸과 두 개의 자아.

끝없는 물음, 나는 누구인가? 문을 두드리지만, 폐가인 듯 누구도 답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러한 상태를 부조리라 정의하였다. 도달할 수 없는 진리를 향해 행진하는 모습은 참으로 우습다. 이는 저항, 내가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 움직인다. 이 시기에 우리가 신이라 말하던 모든 존재는 사망한다. 불멸을 말하던 존재들은 전부 죽고, 불면의 원인이 된 나의 움직임은 나라는 존재 자체의 의미와 가치가 된다. 걸음을 멈춘 예술가는 모두 사망한다. 저기 늘어진 시체들을 보라. 그들의 추모를 위한 고요한 축제를.

가면무도회는 끝, 우리 모두 가면을 던지고 축제를 즐깁시다. 단추를 풀고, 바닥에 끌리는 길게 늘어진 치마를 찢고 춤을 춥시다. 칠야와 백야가 공존하는 공간, 우리는 이곳에서 모두 울분과 기쁨을 토하며 취합시다. 우리가 이 공간에서 내뱉은 모든 소리는 때맞춰 떨어지는 빗소리와 함께 사라질 테니, 무너져 없어질 존재들이니 입에 머금은 사체를 모두 토합시다. 우리 모두 춤을, 춤을 춥시다.

두 세계의 대립, 끝나지 않는 전쟁 속 우리는 숨을 쉰다. 하나는 타협과 공존을, 다른 하나는 기생과 잠식을 말한다. 삶의 부조리를 인식함과 동시에 우리는 존재한다. 이에 저항하기 위해 움직인다. 행복은 만족, 만족은 나태, 그러니 진정한 행복이란 즉 우리가 걸음을 멈추는 그 순간에 도달할 수 있다. 부조리가 없는 그 땅 위에 행복은 존재한다. 우리는 행복에 도달할 수 없는 비굴하고 비참하며, 기구한 운명을 품고 태어났다.

전쟁이 끝나길 기도하며 손을 모은 그들의 손을 자른다. 헛된 이상을 꿈꾸며 걸음을 멈추고자 하는 그들의 희망을 무너뜨리고, 고개를 돌려 현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언제나 싸운다. 모두를 지키기 위해,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왼손과 오른손을 맞춰 존재하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하는 것도, 총과 칼을 들고 살육을 하는 것도 우리에게는 필요하지 않다. 종이와 펜을 들자, 기록하자, 우리의 부조리를, 우리의 저항을 보이자.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는 이 땅의 부조리를 알리자, 바다에 빠져 죽느니, 우리는 몸에 기름을 부으리라.


현대인은 모두 우울증을 앓고 있고, 그 속에 존재하는 나는 정상인.
행복에 도달하거나, 저항하거나. 이는 죽음 혹은 생존. 우리는 모두 생존을 택한다.
이는 본능. 우리, 살아 숨을 쉬는 인간만이 보일 수 있는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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