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의 사회는 안녕하신가요.
과거 조현병은 '정신분열증'이라 불렸습니다. '정신분열'이란 단어는 이들이 '정신이 분열'된 사람으로 생각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정신분열'은 개인의 정신이 분열되었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정신'과 '사회'의 분리를 뜻했습니다. 다시 말해 현실 검증능력의 저하를 말합니다.
"조현병은 자아가 분열되어 여러 개의 인격을 가지게 되는 질환입니다."
"조현병은 현실 검증능력의 저하로 일상생활의 어려움과 불편감이 생기는 질환입니다."
이 둘의 차이는 어떠한가요. 첫 번째 명제는 명백하게 틀린 문장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조현병에 대해 이렇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어의 작은 오해만 풀었지만, 질환을 바라보는 느낌은 사뭇 달라집니다.
정신질환은 크게 '신경증'과 '정신증'으로 나뉩니다. 그 둘을 구분하는 가장 큰 기준은 '현실 검증능력'입니다.
그래서 '우울증' , '공황장애' , '강박장애' 등은 신경증으로 분류됩니다. '조현병' , '치매' , '망상장애' 등은 정신증에 속합니다.
조현병의 증상은 양성증상과 음성증상으로 구분합니다. '환청' , '망상' 등은 양성 증상에 속합니다. 정서적 반응의 감소, 사회적 욕구 감소 등은 음성증상에 속합니다. 양성증상으로 인해 조현병 환자는 현실 적응에 어려움 느끼며, 음성증상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쉬워집니다.
우리는 오해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인간에게 그것은 자연스럽습니다. 더욱이 오해임을 알아도 그것을 바꾸려 하지 않는 성향이 인간에게 있습니다. '확증편향' 효과는 인간이 믿고 싶은 것만 믿게 하며, 보고 싶은 것만 보게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마음의 특징은, 우리가 사랑에 빠지게도 하고 우정을 유지하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타인을 배척하게 하기도 합니다.
조현병에 대한 오해의 원인 중 하나는, 조현병에 대해 모르기 때문입니다. 조현병은 '질환'입니다. 이들은 '환청' , '망상' 등으로 인해 현실 검증 능력이 떨어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조현병을 마주하고 싶어 마주한 사람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책임이 없는 일을 비난하는 것을, 우리는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사고로 인해 다리를 잃으신 분에게 '왜 당신은 걷지 못하느냐'라고 우리는 묻지 않습니다. 그렇게 묻는 것은 조롱이며, 그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에게 '너 왜 헛소리하니? 미친 거 아니야?'는 매우 익숙합니다. 저는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사회적 낙인의 방치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도 한국언론학보에 소개된 내용입니다. 연구팀은 우리나라 근 몇 년간 주요 일간지 10,227건의 정신질환 관련 기사를 분석합니다. 그중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 대해 언급한 기사는 단 322건이었습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정신질환 관련 기사는, 정신질환자의 위험성을 자극적으로 다루는 기사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토양에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편견은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형성된 낙인을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건 조현병 환자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치료받지 못하고 집 안에 머물게 됩니다.
"언론은 여전히 정신질환자를 나약한 성격이나 자기 관리 능력이 부족한 존재로 묘사하여 부정적인 속성을 강조하거나, 정신질환의 원인을 마치 개인의 통제가 가능한 것처럼 묘사하여 정신질환을 환자의 책임으로 돌리고, 치료 가능성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을 강화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더욱 책임 있는 보도에 노력해야 한다"
<정신질환의 낙인과 귀인에 대한 언론 보도 분석> , 백혜진, 조혜진, 김정현, 한국언론학보 61권 3호, p7 - 13, 2017
이러한 환경 속에서, 약을 거부하고 치료받지 않으려 하는 조현병 환자를 우리가 쉽게 비난할 수 있을지 묻게 됩니다.
조현병 환자는 위험한가? 이 질문에 우리는 신중해야 합니다. 단순 범죄율로만 접근해보면, 검찰청 통계 기준(2016년) 조현병 환자는 일반인에 비해 4분의 1 정도로 범죄율이 낮습니다. 단순하게 집 밖에 나갔을 때, 일반인 범죄자를 만날 확률이 조현병 범죄자를 만날 확률보다 4배 이상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데이터를 심층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조현병 환자의 살인 및 방화 범죄율은 각각 5배, 8배가 높습니다. 대부분은 치료를 중단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조현병 환자는 위험하다고 결론 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 데이터를 합리적으로 해석해보자면, '증상을 관리하는 조현병 환자는 일반인에 비해 위험하지 않다'와 '치료를 거부하는 조현병 환자는 일반인에 비해 중범죄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의 2가지의 결론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우리는 '조현병 환자는 위험하다'라고 쉽게 결론을 내려서는 안됩니다. 절대다수의 조현병 환자들은 스스로 증상을 관리하며 잘 살아가고 있기에 그렇습니다. 동시에 증상을 관리하지 않고 있는 조현병 환자를 비난하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사회적 낙인이 심각한 사회 속에서 누구라도 치료를 거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현병 환자가 위험한가?'가 아니라 '우리 사회는 조현병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 환경 제공하고 있는가?'입니다.
전자의 질문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계속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편견을 거두는 일은 어렵습니다. 퇴근길에 편안하게 집에 가고 싶었지만, 조현병 환자가 양성증상으로 인해 지하철에서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본다면 그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낼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현병 환자를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안 하고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이들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같은 상황에서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 주지는 못하더라도 비난 어린 시선은 멈출 수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지요.
" 5년 뒤, 어쩌면 1년 뒤라도, 세상은 더 야박한 곳이 될 수도 있고, 더 친절한 곳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사회는 더 파괴될 수도 있고, 회복을 시작할 수도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들이 우리를 잔인하거나 냉담하게 대한다면 말이다. 하지만 모두 더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아주 현실적인 의미에서, 우리가 택하는 방향과 우리의 집단적 운명은 각자가 어떤 감정을 느끼기로 결단하는가에 달려 있다. 더 친절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 "
<공감은 지능이다> , 자밀 자키, p38
조현병 환자에게 친절한 사회는, 우리 모두에게 친절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조현병에 대한 오해를 거두게 된다면, 얻게 되는 또 다른 장점이 있습니다. 이를 이야기하기 위해 사회적 낙인으로 차별받는 집단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HIV/에이즈 환자들이 그렇습니다.
조현병의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현대 의학의 발전으로 조현병의 원인이 뇌 속의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조현병의 원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에이즈는 다릅니다. 질환의 원인이 밝혀졌고, 수십 년간 효과적인 치료법이 개발되었습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2017)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HIV 감염인이 항바이러스제 치료를 꾸준히 받으면, 체내 바이러스 농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내려가게 됩니다. 이후엔 콘돔을 사용하지 않고 성관계를 맺더라도 바이러스가 전염되지 않는다는 결과를 발표합니다.
다시 말해 HIV는 과학적 지식에 기반해, 치료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기대 수명이 일반인과 비슷하게 유지될 수 있는 관리 가능한 질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뭇 분위기가 다릅니다.
2010~2014년 제6차 세계 가치 조사에 따르면, '당신은 에이즈 환자와 이웃으로 지낼 수 있나요?' 전 세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스웨덴 6.1% , 미국인 13.9%가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한국인은 88.1%가 같은 대답을 선택합니다. 30여 년 전, 에이즈에 걸린 사람의 반이 2년 안에 사망하는 시기였다면 이해가 되는 수치입니다. 하지만 현재 에이즈는 관리 가능한 질환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차별 어린 시각이 바뀌는 것은 힘든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현병 환자들에 대한 시각도 그렇습니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발간한 '2021년 국민 정신건강 지식 및 태도 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조현병 환자와 업무를 가깝게 할 의향이 없다 (56.3%) , 친목 모임을 가질 의향이 없다 (55.0%), 친구로 지낼 의향이 없다(53.0%), 정신질환자의 이웃으로 이사 갈 의향이 없다 (67.7%) , 결혼으로 가족이 될 의향이 없다 (81.0%)로 나타납니다.
"자신의 감염 사실을 숨기게 되면 주기적으로 먹어야 하는 약을 먹지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미국 질병관리본부의 발표처럼, 치료약을 제대로 복용하는 것만으로도 성관계 시 파트너가 감염될 위험을 없앨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낙인으로 인해 감염 사실을 숨겨야 하는 현재의 한국 상황은 HIV 감염 전파 위험을 높이는 원인이 됩니다... 혐오는 쉽습니다. 가장 약하고, 아픈 당사자들을 욕하면 되니까요. 어떤 이들은 HIV 감염인에게 ‘네가 잘못해서 걸린 거다. 네 치료에 들어가는 세금이 아깝다’고 함부로 손가락질합니다. 인권과 사회보장의 관점에서 그릇된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혐오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 아니라, 상황을 더 악화시킵니다. 혐오와 낙인은 한국의 HIV 신규 감염을 증가시키고 더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30년 전에 머무른 에이즈에 대한 인식> , 김승섭, 시사IN , 2018.04.26
조현병 환자의 증상이 심해지는 양상과 비슷합니다. 어쩌면 사회적 낙인으로 상처받은 이들에게 숨는 일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조현병의 발병률은 약 1%입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2019년도 기준 약 23만 명의 환자가 조현병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전체 국민 대비 약 0.4% 정도이지만, 정신과에 대한 거부감,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정신과 진료를 받지 않는 인원을 고려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국내 조현병 환자가 약 50만 명 정도 일 것으로 추산합니다. 다시 말하면 약 27만 명의 환자는 현재 적절한 진료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현병 환자가 오해받지 않는 사회, 이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는 전국에 숨어있는 27만 명이 자유롭게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회적 약자에게 시선을 돌려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우리 모두의 안녕을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질환자가 자신이 아프다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사회'는 우리의 안녕이 지켜지는 곳이라고 저는 감히 확신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조현병 환자에게 오해를 거두게 된다면, 우리 모두가 누리게 되는 결과이지요.
조현병 환자들이 자유롭게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맺습니다.
오늘, 당신의 사회는 안녕하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