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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설 Mar 17. 2022

우리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한다면

트라우마를 대하는 공동체의 자세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전시회 - '기록, 기억'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전시회 - '기록, 기억'


2019년 3월, 서울 도시재생 이야기관에서 진행된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전시회 '기록, 기억'을 관람했습니다. 서울대학교 정진성 연구팀이 이들의 발자취에 대한 기록을 모았고,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자료를 공개하는 자리였지요. 천천히 관람을 하던 도중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거의 반세기가 지난 후 여성 경험 중심의 역사 쓰기가 시작되고 여성의 목소리에 공감하는 청중이 형성되고 나서야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은 피해를 호소하고 가해 책임을 물을 수 있었다."


여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청중이 많아졌을 때,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아픔이 들려지기 시작했다는 지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트라우마 앞에서 공동체의 역할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긋난 시선이 개선된 것은 1991년 8월 14일 김학순의 공개 증언이다. 이 공개 증언이 앞선 이남님, 노수복, 배옥수 등과 달랐던 것은, 1990년대의 여성인권의식의 신장이 그 바탕에 있지만, 공개 증언의 장소가 여성지가 아닌, 신문과 미디어를 통해서였다는 것과 개인의 피해사실에 그치지 않고, 국가의 책임의 차원에서 이야기했다는 점이다...그동안 남성의 시각에서 거론된 사적 여성의 기억을, 피해를 자각한 김학순의 목소리로 공공의 기억으로 끌어올리고 그것을 기록하기 시작했다는데 김학순 증언의 의의가 있다. 김학순 등 피해자들의 증언은 대중의 인식도 바꾸었다. 과거 속에서만 존재하던 “매춘부”의 이미지가 실체화된 “피해자”의 이미지로 바뀌기 시작했다. 피해자가 당당하게 자신의 피해를 이야기하고 세상으로 나오자, 성적 대상으로서의 ‘위안부’가 고발자 ‘위안부’로 실체화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는 다큐멘터리, 르 포르타주 등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기 시작했고, 피해자들의 증언도 속속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재현물 속에서 성적 요소가 제거되었고, 여성의 시각, 인권 회복의 시각 그리고 전쟁의 피해자의 시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 한혜인, 『여성의 ‘목소리’로 구축하는 젠더 유산(Gender Heritage)으로서의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2018,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여성인권 신장으로 인해, 외면받았던 '위안부' 피해 생존자들의 아픔이 사회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지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공동체가 이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았을 때, 늦게나마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편에 섰을 때, 숨어 지내던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지점은 공동체가 트라우마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렴풋하게 보여줍니다. 


김승섭 교수(현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보건정책관리학부 부교수)는  한국 사회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다 해석하기 어려운 지점을 발견합니다. "귀하는 새로운 일자리에 취업할 때 차별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하는 설문 조항에 대한 답변 때문이었습니다.


설문에 대한 답은 '예, 아니요, 해당사항 없음'으로 구성되었습니다. '해당사항 없음' 아직 구직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선택지였지요. 하지만 직장을 가지고 있는 152명이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대답합니다. 당연히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예, 아니오'로 대답해야 했지만 이들은 '해당사항 없음'으로 답변을 합니다. 무슨 연유로 그들은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변했을까요.


김승섭 교수는 연령, 학력, 소득 수준, 고용 형태, 건강 상태 등 다양한 부문의 정보를 담아 차별을 경험할 확률을 계산하는 통계모형을 만듭니다. 그리고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변한 직장인들에게 적용했지요.


결과는 성별에 따라 극명히 나뉘었습니다. 남성 노동자들이 '해당사항 없음'에 답한 경우는 '아니오(차별받은 적이 없다)'의 결과 값과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가 '해당사항 없음'에 답한 경우는 '예(차별받은 적이 있다)에 가까웠습니다. 


나아가 설문에 포함되었던 '자가평가 건강' 지수와의 연관성을 비교했습니다.'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남성 노동자들은 '차별 없음'이라고 답한 남성 노동자들과 '자가평가 건강' 지수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여성 노동자가 '해당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경우는 '차별 경험 있음'이라고 답한 여성 노동자들에 비해 도리어 약 1.2배 더 아팠습니다. 스스로 차별 경험이 있다고 고백한 여성 노동자들보다 '해당 사항 없음'이라고 답한 여성들이 더 아팠던 것이지요. 


자신의 차별 경험에 대해 '그렇다'라고 답할 수 없었던 여성들, 다시 말해 자신의 차별 경험을 말할 수 없었던 '여성 노동자'들이 가장 아팠던 것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사회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도 남녀에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지극히 개인적인 설문조사에서도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그 격차가 심하리라 생각합니다.


몇 년 후 김승섭 교수는 박사과정의 김지환 학생과 2012년 '전국 다문화 실태조사'를 분석하다 비슷한 상황을 만납니다. 학교 폭력을 경험한 이후 다문화 학생들의 대처 방법에 대해 대해 조사하고, 이들의 우울증상 발생 위험의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는 일이었습니다. 크게 답변은 네 가지 선택지로 나뉘었습니다. A(학교 폭력 피해 경험 없음) B(학교 폭력 경험 후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청함), C(학교 폭력 경험 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음), D(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  


당연히도, 학교 폭력 경험 후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않은 군'이 가장 우울증상 발생 위험이 높았습니다. 이들은 '학교 폭력을 경험하지 않았던 군'에 비해 7배 우울증상 발생 위험이 높았고, '주위에 도움을 요청한 군'과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군에 비해선 2배가량 우울증상 유병률이 높았지요. 하지만 이 설문 또한 남녀가 극명하게 나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넘어갔다'라고 대답한 여학생은 '학교폭력 피해 경험 없음'이라고 대답한 여학생과 우울증상 유병률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남학생의 경우 '별다른 생각 없이 넘아갔다'라고 대답한 학생들이, '학교 폭력 경험 후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음'이라고 대답한 남학생들보다 더 아팠습니다. '학교폭력 피해 경험 없음'이라고 대답한 남학생보다는, 약 8배 우울증상 유병률이 높게 나타났지요. 같은 대답에서 남녀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뉜 것입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대답한 남학생들, 학교 폭력을 경험하고도 누구에게도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자신의 상처를 숨겼던 아이들이 가장 아팠던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남자'에게 요구되는 사회적인 모습 등의 영향이 있었겠지요. 


다시 말하면 사회가 요구하는 '남자'의 모습이 아이들이 더 아픈 상황에 내몰리도록 한 것입니다.

   *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1장, '말하지 못한 내 상처는 어디에 있을까'를 참고하였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할 수 없는 사회적 환경은, 트라우마의 회복을 방해합니다. 이번엔 트라우마에 대해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 '베셀 반 데이어 콜크'는 자신의 저서에서 말합니다.


브로카 영역은 말하기를 담당하는 뇌 영역 중 하나로, 뇌졸중 환자들은 이 부위에 혈액 공급이 차단되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브로카 영역이 기능을 하지 못하면 생각과 기분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우리 연구에서 뇌 스캔 결과 기억이 재현될 때마다 브로카 영역과의 연결이 끊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트라우마는 뇌졸중과 같은 신체 질병으로 발생하는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고, 심지어 몇 가지는 동일한 결과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이 시각적 증거로 확인된 것이다.
◆ 베셀 반 데어 콜크, 『몸은 기억한다』, 제효영 옮김, 을유문화사, 93쪽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의 뇌는 문자 그대로 '얼어붙게' 됩니다. 언어를 관장하는 뇌의 영역인 '브로카 영역(Broca's area)에 혈액 공급이 줄어들고, 언어 기능이 크게 감소합니다. 이로 인해 극심한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실어증을 경험하거나 주위와 소통을 어려워하기도 하죠. 이처럼 고통을 경험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아픔을 공유하는 일은 뇌과학적인 측면에서도 쉽지 않은 일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


그래서 회복의 중요한 부분은, 브로카 영역을 다시금 활성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트라우마 경험에 대해 감정을 담아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지요. 트라우마를 경험한 개인이 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이를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안전한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주변 환경이 이들이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지 못하게 한다면, 트라우마를 경험한 개인은 끝없이 고립되기 쉽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여성 노동자, 다문화 남학생들처럼 말이죠. 


사회적 지지 없이, 아무도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던 척박한 시기에도,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분들을 생각하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공동체가 얼마나 차가웠을지요. 감히 이들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늦게나마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서 죄송하다고, 이제 와서라도 잊지 않겠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정신과 병원에서 환자분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부족한 제게 마음을 열어주시고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실 때, 책임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20대부터 수십 년간 입원 생활을 해오셨던 여성 환자분의 이야기입니다. 


20대 초반, 그녀에게 다가왔던 남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회사의 사장이었고 그녀는 평사원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던 그녀에게 사장은 데이트를 신청했습니다. 만남을 이어오던 도중, 남자는 여자에게 묻습니다. 왜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느냐고요. 여성은 일을 하던 도중, 조현병이 발병했고 외래 진료를 시작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한국 사회에서 정신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열 수 없었고, 만남은 이어지지 못했지요. 그리고 몇 년 후에 입원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각색


담백하게 웃으며 자신의 과거 사랑 이야기를 꺼내는 환자분의 모습이, 기억에 잊히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없었다고 덤덤하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며, 한국 사회에 살아가는 정신장애인들이 얼마나 자신의 아픔을 이야기하기 어려울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트라우마 생존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생존자에게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답해주고 그 고통을 비하하는 사람들에 맞서 함께 싸워주는 이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생존자의 몸속에서 고통의 에너지로 머물던 사건은 언어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 김승섭,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난다, 259쪽


우리 사회가 서로가 서로에게 '사람'이 되어주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혐오와 비난이 일상이 되어가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는 이상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사람'이 되어주었기에 '오늘'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조금은 우리 사회가 서로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며, 이들의 '이야기'가 들려지기를 바라며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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