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장롱 속에 오래도록 잠들어있던 필름 카메라를 손에 제대로 들기 시작한 건 작년 가을이었다.
아빠의 손때가 묻은 카메라, 나와 나이가 똑같은 카메라, 나의 어린 시절은 담아준 카메라.
무엇이 그리웠는지 그 카메라를 손에 쥐었다.
힘이 들었고 현실이 답답하기만 했다. 영화에서만 보던 일이 나에게 일어났고 나의 모든 상황을 바꿔놓았다.
갑작스러웠던 아빠의 입원, 갑작스러운 휴학, 스트레스. 많은 것들이 나를 흔들기 시작했고 도망가서는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나는 도망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내가 먼저 무너질 것만 같았다. 변명 아닌 변명으로 그때는 내가 먼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조금 안정되었을 때 모아두었던 돈을 탈탈 털었고 터키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떠나는 날 아침까지도 취소할까 말까 수없이 고민을 했다. 혹시나 내가 나가 있는 동안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가도 되는 걸까, 내 욕심만 부리는 건 아닐까... 그때 지연이한테 전화가 왔다.
지연: 짐 다 쌌어?
나: 아니.. 아직. 사실 지금도 고민 중이야.
지연: 미친 x. 너 안 가면 평생 후회한다. 일단 너도 살고 봐야지.
나: 그래. 가야겠다. 뭐가 어찌됐든.
그녀의 말 한마디에 마음을 먹고 짐을 구겨 넣기 시작했다.
큰일 났다 3시 30분 비행기인데.. 짐을 다 싸고 보니 12시다. 망했네 망했어.
공항버스가 12시 40분, 도착하면 아마 2시. '비행기를 탈 수는 있을까' 의문을 품으며 집을 나선다.
놓치면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냥 오자! 그래 출발!
바보같이 필름도 다 챙겨놓고 카메라를 집에 두고 나왔다. 미친 듯이 다시 올라가서 가지고 왔다.
진짜 간다!
나의 미친 터키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