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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love Mar 16. 2017

#14 드디어 만난 아드리아해

세상에 단 하나, 바다 오르간





 플리트비체를 벗어나 몇 시간을 달렸다. 언니의 오빠의 도움으로 겨우 정신을 차렸고 자다르에 도착했다.

자다르는 바다 오르간 하나만 보고 온 곳인데 내 컨디션처럼 날씨가 흐렸다. 우린 바로 숙소로 향했다.

오늘 숙소는 제일 기대되는 자다르 아파트이다. 75유로에 5명이 묵을 수 있는 아파트인데, 예약할 때 본 사진부터 우리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아파트 창문으로 보이는 자다르


 크로아티아답게 주황색 지붕들이 줄지어 서있고 가을이 왔다고 알리는 듯 단풍나무가 뻗어있다.




 빨간색 커버를 씌운 더블 베드룸 하나, 트윈베드룸 하나, 넓은 거실 한 켠의 침대 겸 소파 하나.

우리가 예약한 숙소 중 가장 비쌌던 숙소였지만(사실 1인당 금액으로 보면 비싸지 않다.) 그만큼 쾌적하고 좋았다.



 그 날 저녁, 몸이 괜찮아진 나는 일행들과 함께 자다르 밤거리를 걷고 바다 오르간 소리를 들으러 갔다.




아파서 플리트비체도 못 봐놓고 나는 다 나아서 좋다고 신나게 뛰어다녔다. 신나 하는 나를 D오빠가 찍어줬다. 이렇게 신나 있을 때, 저 멀리서 바다 오르간 소리가 들렸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하늘은 짙은 네이비색을 띠고, 이런 날에 파도와 바람이 만나 만들어내는 바다 오르간 소리는 우리를 모두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 누가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파도와 바람이 만나서 내는 소리다.

오카리나, 플루트를 부는 것처럼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우리의 귀를 간지럽힌다.


 해안가를 타고 내려오면 만나는 자다르, 밤이 이렇게 이쁜데, 낮은 어떻겠니.

자다르의 아침이 기대된다.






2014. 10. 24



 이른 아침, 자다르의 올드타운 안에는 아침 시장이 열렸다. 꽃시장은 유럽 어딜 가나 빠지는 법이 없다. 매력쟁이 소국들이 한가득이다.

 꽃을 좋아하는 나는, 어딜 가던지 꽃 사진을 찍게 된다. 나도 모르게 카메라 렌즈가 꽃을 향해 있는 것을 발견한다. 항상 꽃과 화분을 사고 싶어 하지만 화분은 가져가지 못하니까 사지 않게 되고, 꽃은 이내 시들해져 버릴 것을 아니까 '예쁘다'라는 말로 끝이 난다.




 시장을 둘러보다가 우리는 다시 바다 오르간으로 향했다. 울퉁불퉁한 올드타운 거리를 걷다가 젤라또를 하나 사서 입에 물고 느릿느릿 걸었다. 햇빛이 쨍하게 비치는 날, 오래된 건물들 사이,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거리를 걷는 게 이상하고도 편안했다. 올드타운 한가운데 있는 광장을 지나면 넓게 펼쳐 저 있는 바다와 반대편에 있는 산이 나타난다. 따뜻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우리는 천천히 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면서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세상의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그런 시간이었다.




S오빠의 하얀 스웨터와 트렌치코트가 자다르의 바다랑 너무 잘 어울렸다. 나도 모르게 셔터를 누르고 싶어 졌다.


"오빠 그대로 있어요, 사진 하나만 찍을게요."




 내 앞에 앉아있던 오빠들의 사진을 찍고 또 내 사진도 부탁해본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다 보니 내가 피사체가 되는 경우는 정말 없다. 오랜만에 나의 뒷모습과 앞모습을 담았다. 나보다 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J오빠는 무심한 듯하더니,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어제는 비가 와서 그렇게 흐리더니 오늘은 해님이 빛을 쏟아붓는다. 빛이 쏟아져 반짝이는 바다는 무대가 되었고 우리가 앉은 곳은 관객석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오르간 연주는 끝이 없었다.



 카메라를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탓에 조잡한 동영상이 되었다... 동영상은 바다 오르간의 그 울림까지 전달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다.

 앉아서 넋 놓고 바다 오르간을 듣던 우리는 서둘러 스플리트로 출발했다.






스플리트로 가는 해안도로



 자다르에서 스플리트로 가는 길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고속도로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해안도로를 따라 국도로 가는 길이다. 렌트를 한 목적이 해안도로로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내비게이션을 무시하고 해안도로를 찾아 달렸다. 한국의 네비나 크로아티아의 네비나 둘 다 빠른 길만 안내하지 감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바닷가 쪽으로 달리니 네비가 결국은 우리한테 국도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이겼다. 꼬불꼬불, 말도 안 되는 절벽길을 달리다 보니 우리는 어느새 감탄사를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파란 아드리아해가 눈앞에 나타났다. 지중해만큼 파란 그 색깔을 보며 감탄사를 내뱉던 입은 조용히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우리는 당장 갓길에 차를 세웠다.





 땅 가까이에는 에메랄드 빛이 나고 멀어질수록 파란빛이 나는 아드리아해.

지중해도, 에게해도, 아드리아해도 참 예쁘다. 어떻게 바다색이 에메랄드 색일 수가..!

말도 안 되는 그림 같은 풍경들이 이어지는 크로아티아였다. 바닷가 쪽으로 비스듬히 서있는 소나무가 이해가 됐다. 소나무도 바다가 얼마나 예뻤으면 저렇게 바다 쪽으로 기울어져 있냐며 재미없는 농담을 했다.


 스플리트로 들어가는 길목부터 이렇게 예뻐버리면 스플리트, 흐바르, 두브로브니크는 얼마나 더 이쁘려나.


 운전만 계속한 S오빠는 한숨을 돌리고, 우리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진을 찍고, 신이 나서 지나가는 차에 손을 흔들었다.




 우리가 온 길을 찍으려고 뒤돌았을 때, 하늘에는 하얀 구름이 무성했고 하늘은 정말 파스텔 하늘색으로 가득 찼다. 물감을 쏟아낸 듯한 하늘은 우리의 마음을 더 일렁이게 했다.


 보는 것처럼 해안도로는 길이 꼬불꼬불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차가 많이 없다. 우리끼리 가다가 예쁜 곳을 발견하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놀면서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런 게 렌터카 여행의 재미이고 렌터카 여행을 하는 이유다. 가다가 들어가 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섰다가 가고, 놀다가 가고, 사진 찍다 가고..! 이 매력이 너무 크다. 



 바다를 가까이 보고 싶어서 차를 세우고 조심히 내려왔다. 뜨거운 햇살 위로 구름이 떠다니고, 시원한 나무 밑에서 파란 아드리아해가 보이고. 행복해지려 하지 않아도 마냥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떠나기 전에 힘들었던 순간들을 다 잊은 듯이, 나의 감정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내가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구나. 나도 행복을 느낄 수 있구나. 나도 웃을 수 있구나. 다 알면서 나오지 않았던 감정들이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하루였다.


 행복하다. 이 여행 하나로 나는 앞으로 몇 년은 행복해질 거다.


 사람들은 묻는다. 여행을 하면 정말 느끼고 깨달아서 바뀌냐고.

아니, 절대. 여행으로 사람이 깨닫고 변한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말할 수 있는 건, 하루하루를 순간에 맞기다 보면 나도 모르는 나의 감정들을 찾았고 웃지 못했던 내가, 여행을 하는 한 달 내내 웃었고 행복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했다는 거다. 나에게 있었던 모든 것들이 행복하고 감사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숨을 쉴 수 있었다.



 해안도로를 따라온 탓에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스플리트에 도착했고, 우리는 숙소로 가서 짐만 내려놓고 항구 쪽으로 걸어왔다. 야자수 나무와 함께 어우러지는 스플리트는 유럽 같으면서도 또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지는 해와 요트가 아름다워지는 순간, 우리는 이 도시에 반해버렸다.


 크로아티아, 이렇게 도시마다 예뻐도 되는 거니?! 응?!


 석양의 오케스트라가 끝나고 우리의 하루도 이렇게 끝이 났다.








[당신의 순간을 담습니다]


필름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여행한 이야기.

유럽의 여름, 가을, 겨울을 필름으로 담아낸 사진집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필름으로 세상을 담는 것이 즐거웠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했다.

풍경보다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담고 싶었다. 필름은 찍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너무나 달라지는 사진이기에, 여행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겪었던 순간의 감정들을 온전히 담아내려고 했다. 어린 시절 아빠가 찍어주었던 사진처럼, 그리움의 감성이 묻어나는 사진들이 힘든 시간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 알지 못했던 유럽의 매력, 볼 수 없었던 영화같은 순간들, 책에서는 더 많은 필름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랑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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