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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nowlove Oct 13. 2017

#22 이스탄불에서 돼지고기 찾기

터키만의 향기. 가을 유럽, 마지막 이야기



11월 3일


익숙한 거리를 걸었고, 익숙한 숙소로 돌아왔다.


한 달간의 여행의 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내일이 지나고 5일이 되면 정든 이곳과도 인사를 해야한다. 문득 돌아가려고 하니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날이 흐렸다.


그래. 흐린날은 고기를 먹어야지.

우울한 생각은 잊고 우리는 고기파티를 시작했다. 불가리아에서 사온 목살 양이 꽤 된다. 2근은 넘게 사왔으니..!




필름 사진은 없다.. 하하 파채무침에 목살에 햇반에 소주까지. 정말 신나도 너무 신났던 점심이었다. 터키에서 돼지고기를 먹을 줄이야. 상상도 못했던 일이 눈 앞에 펼쳐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돼지고기를 더 사올걸. 정말 쌌는데. 발칸반도 쪽 돼지고기가 그렇게 맛있단다. 그중에 루마니아 돼지고기가 그렇게 맛있다고 들었다. 꼭 루마니아를 가야겠다.


혹여나 돼지고기 냄새가 퍼져나갈까봐 엄청 걱정했는데, 목살이어서 그런지 냄새가 심하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오랜만에 돼지고기를 먹는 주인오빠와 여행자들은 둘러앉아서 호사스러운 점심을 즐겼다.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나가기만 해도 바다가 펼쳐지고, 사람들은 늘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다. 여유롭고, 또 여유로웠다. 바닷가 앞에 있는 네로카페에서 카푸치노를 시켜서 걸었다. 공원에는 조깅하는 사람,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 책읽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없이 여유가 넘치는 이곳은 꽤 부자마을인 모양이다.


우리도 그 속에서 여유를 즐기는 척 해본다.


내일이면 마음껏 먹을 수 없는 쿰피르도 하나 샀다. 오늘도 내가 좋아하는 토핑을 잔뜩 올렸다. 자기전에 생각나는 맛, 쿰피르의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이었다.



가을이라 그런지 어딜 가든 국화가 많았다. 꽃을 팔고, 꽃을 사고.. 꽃은 누구든 기분 좋게 해주는 매력을 가졌다. 오늘도 우리는 꽃향기를 따라 킁킁거리며 걸었다.



파란 터키만의 가을하늘도 그리울거야.


그립기만 하겠지.


한 달의 여행이 스쳐지나 갔다. 나혼자 살겠다고 도망쳤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도망을 갔다. 인정하기가 싫었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현실이었다. 도망친 나의 길은 힘들었던 만큼 더 행복했다. 가끔은 이 행복이 불안하기도 했고,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오히려 너무 행복해서 내 마음을 괴롭히는 순간도 있었다. 그래도 다시 살아갈 힘이 되었다.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해주었다. 정말 못됐던 나의 선택이었지만 나는 다시 숨을 쉴 수 있었다.


어디선가 뛰어내릴 용기는 없었다. 다만, 욕을 먹을 용기는 있었다.


그렇게.. 그런.. 한 달이 지나갔다.



날이 좋아서 그런지, 지는 해도 엄청난 기운을 내뿜으며 넘어갔다. 빛이 가득한 이 순간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했다. 우리는 다리위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해가 넘어갈 때 까지 그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행의 시작점에 있는 사람, 여행의 끝에 와있는 사람. 시점은 달랐지만 우리가 보는 모든 순간은 그대로 남을 것이다. 지는 해가 강렬했던 어느 늦 가을 날, 함께해서 행복했다고.







[당신의 순간을 담습니다]


필름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여행한 이야기.

유럽의 여름, 가을, 겨울을 필름으로 담아낸 사진집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필름으로 세상을 담는 것이 즐거웠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행복했다.

풍경보다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담고 싶었다. 필름은 찍는 사람의 감정에 따라 너무나 달라지는 사진이기에, 여행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겪었던 순간의 감정들을 온전히 담아내려고 했다. 어린 시절 아빠가 찍어주었던 사진처럼, 그리움의 감성이 묻어나는 사진들이 힘든 시간을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


* 알지 못했던 유럽의 매력, 볼 수 없었던 영화같은 순간들, 책에서는 더 많은 필름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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