눌러앉고 싶은 카파도키아의 매력
새벽 4시 30분, 이스탄불 숙소를 떠나 공항으로 가서 아침 비행기를 타고 카파도키아로 왔다.
이스탄불의 소중한 인연들도 각자의 길을 떠났고 나도 거의 마지막으로 그곳을 떠나왔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아쉬운 순간이 바로 만났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순간이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라는 공식이 존재하는 여행길이지만 그래도 헤어짐은 언제나 적응이 안된다.
시골인 카파도키아는 공항에서 내려 1시간 넘게 차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그 덕분에 꼭두새벽부터 출발했지만 점심 때가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에 들어가니 누군가가 벌써 도착해 있었다. 인사를 하고 보니 같은 비행기를 타고 이스탄불에 도착한 언니였다. 터키는 여행경로가 거의 비슷해 많은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나라였다.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가 친해질 수 있는 계기는 충분했다.
언니 덕분에 또 다른 여행자를 만나게 되었다. 세계여행을 시작한 도형오빠와 잠깐의 휴가를 내고 온 석호오빠.
이 만남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질긴 인연이 될 줄은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다.
카파도키아를 갔다 온 모든 사람들은 그 곳을 잊지 못했다. 해가 질 때 기암괴석 사이로 비치는 빛은 정말 환상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해 질 녘의 저곳을 로즈밸리라고 부른다. 처음 간 곳부터 매력이 넘치는 이 시골마을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돌아온 기분 좋은 우리는 숙소 마당에서 술자리를 펼쳤다.
새로 온 태수오빠, 그리고 옆 침대에 있던 지은언니, 6명이서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했다.
태수오빠는 어머니랑 8개월을 여행하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시고 다시 오빠 혼자 세계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결혼한지 3년 되신 분인데 그 용기가 대단해 보였고 여행을 허락한 와이프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참 대단한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된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나는 그러지 못하는데 하는 생각에 속상하기도 하다. 1년 동안, 아니 몇 년 동안 한국을 떠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멋있다. 자기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혹은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여행길에 오른다는 것은 돈을 떠나서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 중에 직업이 괜찮아서, 돈이 너무 많아서, 시간이 남아돌아서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말 열심히 일하고 아낀 돈으로 떠나오는 사람들이 많다. 세계여행을 한다 하면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마음이 아팠던 일이 많은데 여행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도전이다. 여행을 많이 다닌 나도 세계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면 일단은 겁이 나니까.
그렇게 와인과 맥주를 홀짝이며 분위기가 무르익을 쯤에 일이 터졌다. 하, 터져도 크게 터졌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이 난리가 났다. 여행사에서 열기구 투어 예약을 한 사람을 찾는다는 전화를 여러 번 했는데 그 예약한 사람들이 도형오빠랑 석호오빠였다. 도형오빠랑 석호오빠는 급하게 예약을 하고 오느라 여행사에서도 이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숙소에 전화를 계속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괴레메 마을에서는 자기가 투숙하는 숙소에서 투어 예약을 안 하면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숙박업만 하는 호텔들도 많지만 그 작은 마을에는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어서 숙소사장님은 자기 숙소를 통하지 않은 예약의 전화를 계속 받아야 하니 화가 났었다보다.
오빠들은 그런 걸 모르고 예약을 한 상황이고 숙소에서도 그들이 누군지 우리에게 한 번도 묻지 않았지만 사장님의 심한 말들이 쏟아졌다. 다 언급할 수 없지만 우리는 충분히 기분이 나빴고 그 순하디 순한 도형오빠가 화를 냈다. (도형오빠가 화내는 모습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그렇게 술을 먹다가 기분이 상했고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