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e Sep 10. 2021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또 다시 개편철이다. 

라디오국은 보통 6개월 단위로 개편을 하는데 피디발령이 먼저 이뤄지고, 각 프로그램에 피디가 배치되면!

그 다음으로 작가구성이 이뤄진다. 이 때 DJ를 교체해야 할 만큼 큰 개편을 해야 한다면, 

남몰래 비밀조직처럼 피디와 작가진이 일찌감치, 혹은 느닷없이! 하지만 은밀하게 꾸며지기도 한다. 

방송국 소속인 피디들은 솔직히 프로그램을 말아먹어도 회사를 짤릴 일은 거의 없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프로그램을 옮기면 그만이다. 

(물론 나는 피디입장이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잘은 모르지만, 옮기는 과정에서 각자의 고충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어떨까? 

작가의 상황은 피디와 조금, 아니 굉장히 많이 다르다. 

개편이 다가오면 모 후배는 열심히 원고를 써내려가고 있는데, 자꾸만 그 원고의 글이 지워지는 꿈을 꾼단다. 

원고가 사라지고, 글이 지워지고, 방송이 엉망으로 끝나는 등의 꿈이 시작됐다는 말이 들려오면 

어김없이 개편철이고, 그 때마다 작가들은 눈치싸움을 하며 마음을 조린다. 

방송국 소속도 아니고, 말 그대로 프리랜서기 때문에 혼자서 잘 살아남아야 하는 환경이다. 


그럼 살아남는 방법은 뭘까? 

글을 기똥차게 잘 쓰는 것? 피디와 친하게 지내는 것? 청취율을 쭉쭉 올려놓는 것? 

물론 이 역시 살아남은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피디의 한마디가 중요한 게 현실이다.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들었다면, 작가는 일자리를 잃는 셈이 된다. 한마디로 아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나가주세요 라는 말과 같다. 이 경우 작가들은 흔히 '떴다'라고 표현한다. 자리가 있었지만, 이젠 자리가 없어져 붕 떠 있는 상태. 


이렇게 떠버린 작가들은 어떻게 될까. 

작가는 물론 피디들도 이 소식을 공유한다.  "지금 000 작가가 뜬 상태입니다." 등과 같은 소식을 단톡이든 

만나서 얘기하든, 다양한 방법으로 공유한다. (물론 이런 기회조차 주지 않는 피디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뜬 작가는 하루아침에 구직자가 되어버린다. 어제는 일했지만, 오늘은 실직자이자 구직자가 되는 것이다. 이 때 "마침 우리 팀에 자리가 비었는데, 이 작가와 함께 일해야겠다"라고 생각한 피디가 있다면 다행이다. 바로 그 빈자리로 쏙 들어가는 동시에 구직자 딱지를 내리면 된다. 

때로는 메인작가들이 후배작가를 적극 추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어느곳에도 연락을 못받은 작가. 그 어떤 팀으로부터 콜을 못받은 작가는 그대로 나가야 한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데, 아파도 참아가며 일했는데, 내가 저 작가보다 못난 게 없는데 등등.

억울함을 호소해도 소용없다. 피디가 불러주지 않으면(라디오의 경우) 작가는 원고를 쓸 기회를 잃게 된다. 


"저는 여기서 글 쓰고 싶어요. 이 팀에서 계속 일하고 싶어요" 라고 말해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되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후배작가 A로부터 전화가 왔다. 개편시즌이면 늘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후배인데, 이번에도 어김없이 연락이 왔다. "저는 계속 이 팀에 있고 싶은데, 피디가 바뀌면서 일방적으로 나가게 됐어요. 그러다가 다른 팀에서 콜이 들어왔는데, 백수 안되려면 그래도 꾸역꾸역 하는 게 맞죠?" 

나 역시 프리랜서였던 터라, 내가 한 대답은 "하는 게 맞아" 였다. 


"지금 네 상황에 분기탱천해서 확 나와버린다 쳐! 그런데 아무런 계획이 없다?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갈피 못잡고, 정해놓은 목표가 없다면 그래도 하는 게 맞아..." 

같이 살아남아야 하는 작가로서 내가 후배작가 A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게 전부였다. 


그런데 후배작가 B의 상황은 달랐다. 

"잠도 못잘 만큼, 진짜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 들어갈 자리가 없어요. 콜 받은 곳도 없고요. 

 저는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요?" 

하루아침에 나가게 된 후배작가 B는 늦은 밤, 울먹이며 내게 전화를 했다. 


이런 경우 나는, "기다려봐. 아직 개편 전이고, 기회가 또 있을거야." 라는 말도 여러 차례 해봤다. 

"여기서만 일할 이유는 없지. 능력있으니까 다른 방송국에도 자리 있을거야." 라는 말도 해봤다. 

"자책하지 마. 넌 최선을 다했고, 그거 모르는 사람 없고. 다만 이번엔 타이밍이 안맞았나보다." 

라는 말도 해봤다. 선배의 메뉴얼과도 같은 이 세가지 멘트 중 하나를 골라서 해줘야 하나 싶다가

후배작가 B에게... 아니! 어쩌면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했다. 


"우리는 왜 이렇게 힘이 없냐. 왜 항상 을인 느낌인 걸까. 왜 우리는 바둑알처럼 여기저기 수를 두는대로 옮겨다녀야 하지? 나만의 콘텐츠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 콘텐츠를 가진 작가가 되자. 우리!!!

그게 뭐가 됐든." 


작가들은 개편바람을 칼바람, 피바람이라고 부른다. 그 정도로 모두가 긴장하고 눈치보고, 상처를 받는다. 

살아남으면 휴.. 하고 안도감을 내쉰다. 속상하고 분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답답하고 억울한 현실을 바꾸고 싶어도 어쩌면 1인 자영업자와도 같은 작가들이 하나로 똘똘 뭉치기도 

참 어려운 일이다. 앞에서는 보이콧을 하자며 목에 핏대를 세워도, 갑질로 힘들어하는 작가를 위로하면서도,

뒤에서는 정치하는 작가도 정말 많기 때문이다. 

이 판을 엎어버리고 싶어도, 가장 먼저 바다에 뛰어드는 첫 번째 펭귄은 되기 싫은... 

그래서 뭔가 변화의 흐름이 생기려다가도, 푸념만 늘어놓다가 해산하게 되는... 먼지 쌓인 낡은 판. 


이 글을 쓸까말까 고민이 참 많았다. 

쓰다보면 불평불만이 될 것 같아서. 방송작가의 현실이 다 이모양인가? 오해를 살 것도 같아서. 

하지만 다 비슷비슷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자판을 두들기는 중이다. 


방송국만이 아니라, 작가만이 아니라, 이 세상 직장인들 모두가 비슷한 마음으로 비릿한 감정으로 

마른침 꼴깍꼴깍 삼키며, 억울하고 분해도 월급찍히는 통장보며 그래도 버티고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가끔 웃을 일도 있고, 보람도 느끼고, 행복도 살짝 맛보다가 언제 그랬냐는듯 지옥으로 떨어지는..

그런 단짠짠짠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나는 글로 남겼지만, 누군가는 속으로만 삼키고 있을 뿐.) 


묻고 싶다. 매일 웃을 수 있고, 눈치 볼 일 없고, 하고 싶은 말 다 해도 짤릴 걱정 없는, 일 조금 하고 돈 많이 주는... 그런 신의 직장이 있는지. 

있다면 혼자만 알지 말고, 같이 공유해 주시길.  

 



 


   






   





작가의 이전글 배달의 민족, 사장님들의 댓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