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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Jan 04. 2021

복권을 삽니다.

- MBC 공채 작가 도전!  

아직 내 딸이 '돌'이 되기 전이었다. 

경인방송에서 라디오 작가 일을 하던 나는, 

MBC 라디오에서 '공채작가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쓸데없이 고민만 앞서는 타입이라 머릿속으로 별별 생각을 부풀리고 있는데, 

친구가 이러더라. 


'원고 써보고 고민해도 안늦어!' 


맞는 말이었다. 

아직 무어라 한줄도 안썼으면서 앞서 고민하긴... 


1차는 이력서와 원고제출이었다. 

몇몇 프로 오프닝과 시그니처 코너 대본을 썼고 

몇 날 며칠 쓰고 지우고 수정하고를 반복했다. 


내 기준에선 마지막 수정을 거친 원고가 최선이었고 

간절한 마음이 온 몸에 전해졌는지,

오만인상 찌푸리며 지원 메일을 발사했다.  

잘 부탁드린다. 열심히 하겠다는 뻔하고 흔한 인삿말과 함께... 


그리고 며칠 후 연락이 왔다. 

1차에 합격했노라고. 


'어? 와? 진짜? 내가?' 


아직 8개월 밖에 안된 아이를 

수동 바운서에 눕혀 놓고

앙앙 울 때마다 발로 쓱쓱 밀어대며 쓴 원고였는데... 

그래서 사실 기대를 '반'만 하고 있었는데

됐단다! 


이번 공채시험 담당 피디라고 밝힌 분은,

2차 실기시험을 보러 언제 몇시까지 MBC로 오라고 했다. 


그 때만 해도 집에서 내가 쓰던 노트북은 

상태가 영 메롱이었다. 

무기로 써도 되겠다 싶을 만큼 무거웠고 

배터리를 충전해도 툭 하면 헥헥 거리며 배고프다며 

위잉위잉 헐떡이는 소릴 냈다. 


이런 내가 안돼 보였는지 남편이... 

회사에서 쓰던 노트북을 건네 주더라. 

그나마 둘 중 이게 더 낫겠다며.  


한마디로 내것보단 조금 덜 구린 노트북을 들고 

여의도로 향했다. 

임원 회의실로 쓰인다는 곳에 도착해보니 

1차 서류시험을 통과한 여러 다른 작가들이 보였다. 


생김새 부터가 '나 방송작가야' 하는 분도 보였고, 

시험 끝나자마자 곧장 파티하러 가도 될 만큼

옷을 아주 화려하게 입고 온 분도 있었다. 


잠시 후, 담당 피디가 들어오면서 2차 실기시험 종이(?)를 나눠줬다. 

나는 구성작가 쪽 지원이었는데, 시험 내용은 이랬다. 

'마음에 남은 노래 10곡을 적고, 그 노래에 맞게 짧은 사연을 적어보라'는 내용이었다. 

제한 시간은 2시간! 


나는 이걸 이렇게 해석했다. 2시간 동안 10개의 오프닝을 써봐라! 

그런데 노래 10곡을 생각하는 것 자체부터 난관이었다. 

무작정 뭐라도 써야했다. 


뒤늦게 들었지만, 어디서 타닥타닥타닥....

게임하듯 빠른 키보드 소리가 들렸는데 '그게 너였구나' 라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그게 사실.. 글을 빨리 썼다기 보단, 노트북이 구려서 그런 건데.....) 


아무튼 어찌저찌 2시간 안에 노래 10곡과 짧은 글 10개를 적어냈고, 

연달아 3차 면접 시험까지 이어졌다. 


3명씩 팀을 이뤄 면접을 보게 됐는데,

면접관은 각 부서 담당 피디님들이었다. 


"이전 방송국에서 일할 때 원고 때문에 좌절하거나 크게 한 소리 들은 적 있나요?" 

   - "네! 있습니다. 심지어 제 눈 앞에서 '이게 글이냐?' 면서 흩뿌린 분도 계셨습니다~"  


실제로 있었다. 이건 나중에 쓰겠지만, 와..... 

그 땐 화가 난다기보단, 자존감이 저 아래 땅 속으로 푹 파묻히더라. 


"결혼을 하셨네요? 아이도 있고요?" 

  - "네! 그래서 이제 일하다가 중간에 쉴 일이 없을 겁니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으니까요~" 


이 말에 피디님들이 웃으셨다. 

나도 따라 웃었다. 

 

마지막 질문은 이랬다. 

"심야 방송 괜찮아요?" 

   - "네! 성시경의 음악도시! 심심타파! 주로 들어왔던 게 심야 방송이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3차 면접까지 끝이났다.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현관문 비밀번호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최종 '합격' 연락을 받게 됐다. 

세상에......!! 


들려오는 말로는, 누가 전해주기론, 

최종 합격된 4인! 500대 1을 뚫었다나 뭐라나... 

나는 당장 '심야방송'에 투입될 거라 철썩! 찰떡같이 믿었다. 


그런데 출근한 첫 날!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멍 하니 자리에만 앉아 있어야 했다. 

나와 함께 합격한 3명은 A 피디가 우르르 데려갔는데, 

나만 안데려가더라... 


이 때 보살 같은 미소를 짓던 부장님께서는 

조금만 기다려보라며 다독다독 해주셨는데...

첫 출근 날! 나는 아무것도 못한 채 

집에 와야했다. 


휴 - 복권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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