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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Jan 05. 2021

알아서 제 갈 길 가세요!

- A 피디와의 첫 만남.

500대 1을 뚫든 뭐든

공채 작가로 합격딱지 받으면 뭐하나.

나를 찾는 이가 아무도 없는데...!


첫 출근 날은 그야말로 좌절이었다.

미팅 나갔다가 그 누구에게도 선택 못받은 외톨이마냥

두 눈을 막고 두 귀를 막고

캄캄한 어둠속에 내 자신을 가둔 시간이었다.


그러던 중에 보살 같은 미소의 부장님이

 A피디에게 가보라고 했다.

가면 일을 주실 거라고, 네가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콩닥콩닥 나대는 심장 부여잡고

알려주신 곳으로 갔다.


문 밖에서도 목소리가 쩌렁쩌렁 들릴만큼

뛰어난 목청을 자랑하는 피디였다.


나는 당당하게 문을 열었고,

저 앞에는 나와 함께 합격한 동기생들이 보였고

방향치, 길치인 내가 한번에 잘도 찾아왔구나~  

뿌듯해하며, 최대한 공손한 척 인사를 하는데!!


A 피디가 나를 보자마자 이러더라.


"아! 작가님은 알아서 제 갈길 가세요!"  


예? 제 갈 길이요?  

제가 갈 길은 여기인데요?

부장님께서 여기로 가면 된다고 하셨는데요?

여기 가면 제가 할 일이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요?


그 짧은 순간, 질문이 팝콘처럼 튀어나왔지만

나는 '어...어어....'

누가 내 성대에 풀 발랐나 싶을 만큼

순간적으로 가위에 눌린 건가 싶을 만큼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그냥 황당, 당황. 이게 뭐지? 싶었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은,

 

'아! 죄송합니다...'  


보살 미소 부장님께 가려면 다시 한층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다리가 엿가락이 된 것 같았다.


"부장님... 저 혹시 합격이 취소된 건가요?"


지금 생각해도 참 바보 같은 질문이었는데...

그 때 내 기분이 그냥 그랬다.


실은 내가 합격자 명단에 없었는데

실수로 연락을 해서 일이 이렇게 된 건가?


오늘도 부장님은 나를 다독다독 해주셨다.

그러면서 또 말씀하셨다.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공채작가로 합격했지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눈만 깜빡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웃사이더의 '외톨이'를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날도 나는 복권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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