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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Jan 05. 2021

너에게 주는 첫 미션!

- 그게 바로 캠페인, <오늘 읽은 책> 

영화에서 보면 그랬다. 

새까만 선글라스를 낀 '보스'가 

이제 때가 되었다며 요원에게 첫 미션을 주는 장면. 


의욕 넘치는 요원은 

그동안 갈고 닦은 훈련의 연습 결과를 

이제야 보여줄 수 있게 됐다며 

발걸음 하나하나에 리듬을 실어 걸어나간다. 


나 역시 그랬다. 

보살 미소 부장님께서는 '이제 바쁘게 글 써야겠다!' 하셨고 

잠시 후 B 피디가 나를 찾아왔다. 


"매일매일 나가야 하는 책 캠페인이에요. 

 읽은 책 가운데 인상 깊었던 구절을 적고 

 그 뒤에는 짤막한 메시지가 들어가야 하는 구성이에요. 

 듣고선 한번쯤은 생각할 수 있게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배경으로 깔린 음악을 들려드릴게요. 그럼 분위기 바로 아실 거에요" 


내게 주어진 첫 임무는...!! 

1분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데일리 책 캠페인이었다. 

MBC 라디오에 들어간 이후, 

처음 쓰게 된 원고다보니 

'브런치' 공간에 처음으로 저장한 글도 '오늘 읽은 책'이었다. 

(-지금도 틈 날 때마다 3개씩 부지런히 올리는 중이다) 


임무를 전해받은 나는, 

그동안 내가 읽었던 '책'의 목록을 정리해봤다. 

어쩜 이렇게 '고전문학'만 보이는 걸까. 

딱 학창시절 필독도서 뿐이더라. 

(- 그 아득히 먼 옛날에 읽었다는 게 아니라, 나는 고전문학 빠다. 

   문체가 좋아서, 느낌이 좋아서 몇 번이고 다시 읽는 사람...) 


다양한 장르의 책 소비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매일매일 방송되는 원고였지만, 

한번에 일주일치를 녹음해야 했기 때문에 

책 일곱권과 일곱 가지의 메시지 원고가 필요했다. 


요령을 부리려면 부릴 수도 있었다. 

눈을 감고 책을 휘리리릭 넘기다가 딱 멈춤!

그 때 보이는 구절 아무거나 골라잡아 

어떻게든 메시지를 탕약 짜내듯 짜내본다. 


그런데 나는 그런 능력자가 아니었다. 

아무 구절이나 골라잡는다 한 들

그 구절에 담긴 메시지를 끄집어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소'처럼 책을 읽었다. 

일단 무작정 읽기로 했다. 

어느 정도 내용파악이 되어야 글이 나올 것 같았다. 


매일매일 다른 책을 한권씩 읽어내야 하는데

어느 날은 눈물이 나오더라. 

책을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담아야 하는데 

억지로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과식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방송은 나가야했기에 

마음에 드는 글, 마음에 안드는 글이 뒤섞여 

B 피디 책상에 올라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마음에 안드는 글이 드는 글보다 조금 더 많이 섞인 날은 

어김없이 더부룩하고 체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 때마다 B 피디는 체기를 뻥 뚫어주는 '바늘' 역할을 했다.  


- 착한 내용! 착한 결론에 대한 부담을 벗었으면 좋겠어요. 

- 가르침이 드는 느낌은 어딘가 무겁고, 좋지 않아요. 다른 표현 없을까요?

- 결론이 시와 따로 노는 느낌이에요. 추상적인 단어를 써서 공감이 안되기도 하구요, 

  이럴 땐 유머를 좀 가미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구체적으로요. 


물론 가끔은 그 '바늘'이 가시처럼 느껴져서 

마음 쓰리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 덕에 체기가 쑥 내려가는 것도 같았다. 


내 글이 못났다. 잘났다가 아니라 

이 방향으로 조금 틀어보면 더 나을 거라는 코멘트였으니까. 


돌이켜보면, 이런 시간이 있어서 스펙트럼이 한뼘 넓어졌고, 

어떤 청취자는 직접 전화까지 해서 나를 응원하기도 했고, 

또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아침마다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며 

방송 파일을 받고 싶다는 연락도 있었지만, 

당시엔 글이 안써져서 괴로웠고! 

그래서 종종 원고를 쓰다가 복권에 마킹할 숫자를 생각하느라 

원고가 또 엉망이 된 적도 있었다. 


피디와 아나운서, 작가. 

셋이서 아웅다웅하며 만들어갔던 캠페인, <오늘 읽은 책>은 

추웠던 겨울에 시작해 낙엽이 말갛게 물들던 가을 무렵에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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