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캠페인 <잠깐만>
책 캠페인 <오늘 읽은 책> 원고를 쓰는 동안,
네 명의 피디를 만났다.
방송국은 보통 6개월 단위로 개편인데,
편성팀에 속해있던 캠페인 방송은 유독 피디 변화가 빠르고 잦았다.
훗날 돌이켜보면 이런 여러 인연이 있었던 탓에
"이보시오~ '나'라는 사람이 여기 있소이다!
여기서 일하고 있소~
왔다갔다 시간만 때우다 가는 사람 같지만,
홀짝홀짝 믹스커피만 축내는 사람 같지만,
나름 글쓰는 사람이올시다~"
이렇게 내 존재감을 알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책 캠페인을 함께하던 B 피디에서,
C피디로 바뀌게 됐는데
이분은 나를 보자마자 이런 얘길 하셨다.
음. 그럼 많이 주시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이렇게만 된다면 모두가 하하호호 행복한 세상일텐데,
현실은 일한 만큼 챙겨 주는 것만으로도 땡큐 쏘 머치인 세상.
보통은 어떻게든 굴릴 수 있을만큼 굴리고,
눈치 한번 슥 보다가, 적당히 수고비를 주는 세상 아니던가.
와... 일 시킨거에 비해 쥐꼬리다 쥐꼬리!
입을 삐죽 내밀면서도 그 입금이 내일의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기도 하고.
(- 택배를 보며, 충치를 감싸며,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 물건들을 보며
더럽고 치사해도 우린 사직서 대신 또 일을 하지요...)
그렇게 나보다 나의 살림살이를 더 걱정해주던 C피디는
적은 원고료에 늘 한숨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분을 위로하듯 이렇게 말했다.
궁지에 몰리면 에라 모르겠다. 하는 편이라서,
이 말처럼 생각했던 건 맞는데,
일단은 C피디의 한숨부터 걷고 싶었다.
그런데 이분은 나를 정말 많이 걱정했나보다.
일주일 치 책 캠페인 원고를 겨우 끝내고 나면
또 다음 주 걱정에 책을 꾸역꾸역 읽어가던 어느 날.
C 피디는 내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잠깐만 캠페인!!?
'우리 이제 해봐요~ 사랑을 나눠요~'
라며 노래 부르던 캠페인??
여러차례 들었던 터라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캠페인을 내가 쓴다고??
주변에선 너도나도 잘됐다고 한마디씩 건네줬는데
그 한마디가 약 1g짜리 모래주머니 같아서,
이게 점점 쌓여갈수록 어깨가 푹푹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어느 선배는 무조건 하겠다고 하고, 고민은 뒤에 가서 하면 된다고 했는데
나는 저지르고 고민하는 간댕이가 아니었다.
워낙 작고 물러서, 좋은 기회가 와도 한참을 망설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C피디가 이러더라.
궁지가 아닌 기회.
여기서도 '에라 모르겠다' 정신이 필요했다.
<잠깐만 캠페인>은 AM / FM 에서
연예인, 최근 화제가 된 인물,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 등등을
섭외해서 인터뷰와 함께 1분 동안 본인의 이야기를 전하는 캠페인이다.
1분짜리. 익히 책 캠페인에서도 1분 안에 메시지를 담는 게
진짜진짜 어려운 작업이었는데,
이제는 1분 안에, 그러니까 60초 동안,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야기해야 한다니...
이름만 잠깐만 캠페인이지,
나는 그 잠깐만이 잠깐만이 아니었다.
<잠깐만 캠페인>을 맡게 된 첫 날.
나는 또 복권을 샀다.
부적마냥.
아직은 나를 못믿겠으니,
너라도 믿자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