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디어 프로그램 입성!??
면접 볼 당시 분명 그랬다.
"심야 방송 괜찮아요?"
나는 여러번 고개를 끄덕였고,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애청하던 심야 프로그램 이름을
자연스럽게 투척하며 심야 방송을 원한다고.
나는 주로 밤 방송을 즐겨 들었노라고.
눈으로 이글 레이저를 쏘며 어필했다.
그리고 마침내,
편성팀에서 캠페인 원고만 쓰던 나에게
드디어 프로그램 작가로 제안이 들어왔다.
그 때만 해도 각 프로그램과 피디님 얼굴을
바로바로 떠올릴 수 있는 짬(?)이 아니라서,
12시 라는 말에 심장이 파도타기를 해댔다.
'12시?? 어머! 나 심야방송 가나봐...
어쩐지~ 그래서 계속 면접볼 때 심야 얘길 하셨구나~ 그랬구나~'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저 잇몸 만개 좀 해도 되죠?
윗입술 좀 앞니에 착 붙이고 있어도 되죠?
공채 합격하고서 10개월 넘게 '섬'처럼 살았잖아요~
나는 그 순간 느꼈다.
'나 살아있구나.
내 심장소리를 이렇게 듣다니!
어쩜 이리 우렁찰 수 있지?'
쿵쾅쿵쾅! 쿵짝쿵짝!
내 심장 속에 사는 작은 아이가 계속 둥둥둥 북을 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순간! 신나게 북을 치던 아이를 멈추게 만든 한마디.
'음.오.아... 예예...
아니 그럼 면접볼 때 왜 심야 얘길 꺼내셨어요?
왜 제 마음에 불을 지르셨어요?'
그 짧은 순간 내 마음은 데이브레이크 노래마냥,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내 행동은 앉으나 서나 당신생각 했다는 현철쌤의 노래처럼,
앉았다 섰다 앉았다 섰다를 두어번 반복했더랬다.
밤 12시가 아닌, 낮 12시라서 실망한 건 아니었다.
그냥 내내 심야방송만 너무 생각했나보다.
중요한 건, 프로그램 입성이었다.
그래! 밤 12시건, 낮 12시건... 뭐가 중요하리.
내 갈길 굳게 정한 나는,
온 몸이 설렘 100% 완충된 상태로 카페에 도착했다.
응? 그런데 카페 맞나요?
방송국 안에 있는 카페가 다 이런 건 아닐진데... 여기 뭐죠?
그곳은 커피향 솔솔 풍기고, 노래가 흐르고,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가 아닌
곧 폐업하나 싶을 정도로 어둑어둑하고,
회색빛의 서늘한 벽과 하얗디 하얀 형광등 조명이 탁 켜진,
취조실(?) 분위기의 장소였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 맞게,
담당 피디는 마치 호통을 치듯, 말씀하셨다.
스케줄 표는 매주 나와야 하고, 다다다 다다다다다다. 우다다다다다다~
쉴 새 없이, 이것도 니가! 저것도 니가! 고것도 니가! 요것도 니가!
내가 뭘 해야하는지 그 리스트를 계속계속 화수분처럼 꺼내 놓으셨다.
그리고 '내일 봅시다' 라며 연기처럼 사라지셨다. (-응? 이렇게 간다고..?)
가만. 내가 한 말은 '네' 밖에 없는 것 같은데...
원고료 얘기도 못들었고, 질문도 한가득 있는데...!?
하지만 나는 말 한마디 못했고, 일어서는 그 분을
다시 붙잡을 용기도 없었다.
면접을 본 후, 한 없이 작아진 나는
조용히 화장실 맨 끝칸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앉아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을' 정도도 아닌,
갑을병... '정' 이 된 것 같았다.
(-자존감이 낮을 때이기도 하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너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고, 지금 너는 일이 없잖아?
그러니까 무조건 해야지. 안그래? 라는 식의 면접과
밀린 빨래를 넘기듯, 일을 순서없이 뒤죽박죽 넘기고
빠릿빠릿 움직여야 한다는 일방적인 통보.
못해도 해야하고, 무리여도 해내야 한다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야 된다는 압박.
조금 전 설렘으로 쿵쾅거렸던 내 심장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감정으로 쿵쾅거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이분이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여보세요? 저 아까 면접봤던 작가입니다.
내일 출근해서 어디로 가면 될까요? 스튜디오는 몇 번이에요?"
- "그런 걸 왜 물어? 알아서 찾아와야지!"
네... 라는 내 대답도 듣기 전에,
이미 전화는 끊어진 상태였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다음 기회에 함께하고 싶어요.
이번에는 못할 것 같습니다."
거절은 고백만큼이나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걸 거절이라 해야할지, 도망이라고 해야할지
당시엔 정말 많이 헷갈렸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를 위한 거절'이었던 게 맞는 것 같다.
부담이어도 거절 못하고
싫은 소리 못하면서 살았는데
처음으로 '나'를 위해,
'나'를 생각해서 한 거절.
그날 나는 '복권' 한장 부여들고
배고프다고 앙앙 우는 딸과 함께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