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피디와의 두 번째 만남.
사랑은 타이밍이다.
오해도 타이밍이다.
인생 역시 타이밍이다.
사랑하는 그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
꼬여버린 오해를 풀 수 있는 시간.
선택하고 기회를 잡아야 하는 시간.
이런걸 일종의 '골든타임'이라고 한다면,
그 시간안에 해내야 이뤄지고, 풀리고, 잡는 일이 조금은 쉬워질 것이다.
A피디와의 첫 만남은 황당 그 자체였다.
내 인사를 받자마자,
'알아서 제 갈길 가세요!' 라며 문을 쾅 닫아버린
무례했던 사람이니까.
그 이후로 부디 마주치지 말자는 사람이었는데,
이를 어쩌나.
<잠깐만 캠페인>을 하면서 여러 피디를 만나게 됐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제 갈길 피디. A 피디였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며 인사를 건넨 그 피디는
세상 해맑게 웃고 있었다.
'나를 기억 못하는 건가?
나는 당신의 그 한마디로 아직도 이따금씩 열이 나는데,
당신은 새카맣게 기억 못하고 있는 건가?
정말 너무하네! 너무한 사람이야!'
내심 나를 알아보고,
표정이 굳어지면 어쩌나 걱정을 하면서도
이렇게 나를 못알아볼 수 있나,
괜히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반말과 존대 사이의 말투를 쓰던 A 피디는
무례하고 목소리만 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섭외에도 적극적이고, 원고에 대한 피드백과 다양한 감정을
그 때 그 때 표현하고, 내 의견을 귀담아 듣고 존중해주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오해'를 단단히 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날은 맛있는 밥도 먹고, 술도 한잔 하게 된 날이었다.
동시에 오랜 시간 맴돌기만 했던 궁금증!
그걸 해소할 수 있는 타이밍이기도 했다.
"피디님! 대체 그 때 왜 그러셨어요?
제가 인사하자마자 왜 저한테...
"작가님은 알아서 제 갈길 가세요!" 이러면서 문을 쾅 닫으셨어요?"
- "내가??"
"네. 피디님이요! 제 동기들도 다 봤다구요~
문이 닫히는 틈새로 절망하는 제 표정도 봤대요"
- "내가 왜 그랬지? 근데 그런 뜻이 아니야~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내가 진짜 그 때 정신이 없었어!
빨리 문닫고 회의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거든~
마음 상했다면 미안. 에이~ 기분 풀어~~ "
A피디는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자기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민망한 듯,
계속 웃기만 했다.
- "오해니까 오늘 다 풀었으면 좋겠어요!"
방송국에 있다보면 (-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사실 별별 소리를 다 듣고 산다.
내가 이런 소리를 들으려고 여기까지 왔나 싶은, 더러운 말도 있고
내가 이런 소리 들어도 되나 싶은, 맑은 말도 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놀라운 공통점은
나에게 그 말을 뱉은 상대는 대부분 기억을 못한다는 거였다.
그저 모르쇠. 기억이 안난다였다.
오히려 그걸 꾹꾹 담아놓고 사는 나를 이상하게 보기도 했다.
그래서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또 한번 느꼈다.
솔직하게 터 놓고 오해를 풀 수 있는 타이밍.
참아야 하는 순간이 더 많지만,
때로는 화가 나고 상처받은 내 감정을 상대에게 알려야 하는 타이밍.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면
잘못을 인정하고 빠르게 사과해야하는 타이밍.
물론 우리는 그 타이밍을 놓쳐서 문제지만.
어쨌든 그 이후로 나는 A피디와 잘 지내고 있다.
오히려 인상깊었던 그 만남으로
얘깃거리가 생기고, 오해가 풀어지면서
더 단단히 신뢰할 수 있게 됐달까.
TMI 하나>>>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오해도 풀린 그 날.
기분이 좋아져서 인지
A피디와 함께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데
마침 내가 타야할 버스가 도착했다.
빨리 타야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뛰었는데,
어? 뭐지? 내가 날고 있네? 라는 생각과 동시에
자빠지고 말았다.
청바지가 찢어질 만큼, 무릎에선 피가 철철 났고
지나가던 한 청년이 '괜찮아요?' 라고 물었지만,
자빠진 내 꼬락서니(?)가 너무 처참해서
A피디가 했던 그 말을 나도 하고 말았다.
"전 괜찮습니다... 알아서 갈길 가세요~~ (제발)"
그 일이 있고서일까?
아니면 그저 오해가 풀려서일까?
A피디와 부쩍 친해진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