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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Jan 29. 2021

방송통신위원회 신고접수

- 나에게 날아온 경고장

"안녕하세요. 000님의 사연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보내주신 내용에서 각색이 들어갈 수 있어요. 

 중복, 도용 사연 아니라고 하셨으니 믿고 방송합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들어주세요~" 


  - "네! 사연에 나오는 형님과 함께 들을게요! 

      고맙습니다~~" 


청취자들의 사연을 받고, 

그 사연들을 꼼꼼히 읽어보면서 

방송에 나갈 사연을 뽑는다. 

그럼 사연자에게 보내주신 사연을 타방송에 중복해서 보내거나, 

다른 사람의 사연 도용은 아닌지 확인을 한 후, 

방송 나가는 날짜를 알려드린다.  


그 날도 이런 과정을 거쳐, 

아무 문제 없이 사연을 소개했다. 


물론 사연 당사자들도 알겠지만, 

날 것(?) 그대로의 사연이 나가지는 않는다. 

대부분 각색이 들어가고, 재미를 위해 효과음을 집어넣거나, 

대사가 과장되기도 한다. 때로는 자연스러운 연결을 위해, 

따로 인터뷰를 해서 비슷한 상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번 것은 손이 은근 많이 가는 사연이었다. 

소재 정도만 제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사연이 뽑힌 건... 지금 다시 생각해도, '소재' 하나 덕분이었다. 


디제이는 사연을 아주 잘 소화했고, 

방송 반응도 괜찮았으며, 

문제없이 사연은 잘 송출됐다. 


그런데 난데없이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분명 형님과 잘 듣겠다며 답장까지 친절하게 보냈던 000님이 

<선물>에 문제가 있다며 따지기 시작했다. 


사연에 당첨이 되면, 감사한 마음에 선물을 보내드리는데... 

본인이 받아야 할 상품권의 액수가 부족하다는 거였다. 


부족한 게 아니었다. 

맞는 액수였다. 


평일에 방송된 사연이 아닌, 주말에 나간 사연이라

평일에 비해 액수가 적은 게 사실이었다. 

게시판에도 정확히 안내가 돼 있었다. 


올려주신 사연은 주말코너에 소개될 수도 있고, 

각색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이다. 

청취자들도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내용이 재미있다! 이런 일도 있어? 하는 사연은 평일용이지만, 

재미가 살짝 덜하거나 평범한 사연은 소소하게 주말용으로 나간다는 것을. 

그래서 <상품권>의 액수(?)도 다르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안내가 부족한 가 싶어서 

다시 한번 안내를 해드렸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라디오 국장님의 호출이란다.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지만, 전해듣기론 

우리 방송을 듣던 청취자가 나를 방통위(방송통신위원회)에 신고를 했다는거다. 

어떤 내용인가 자세히 읽어보니, 

<상품권>의 액수가 다르다며 따지던 바로 그 청취자였다. 


신고 내용은 이랬다. 


'작가가 나의 저작권을 함부로 남용했다.  

 내 의사와 달리, 마음대로 방송했다. 

 고로 이 작가를 계속 일하게 하는 건, 문제가 있다. 

 여기에 내가 받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해라. 

 원래 받아야 할 상품권의 두 배를 물어내라.' 


그러면서 나와 주고받은 문자내용을 캡쳐해서 올렸는데,

참 교묘하게도 


 - "네! 사연에 나오는 형님과 함께 들을게요! 

     고맙습니다~~" 


라고 보낸, 자신의 답장은 쏙 빼놓고 

마치 내가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마냥 편집을 했더라. 

(- 이게 바로 악마의 편집인가...) 




'세상에!! 그럼 저 잡혀가나요??' 


말도 안되는 소리지만, 

속으로 순간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분하고 괘씸하고 억울한 것보다도 

방.통.위. 라는 어감 자체가 워낙 위압감도 있었고 

신고까지 당했다고 하니, 나 어떡하지? 싶었다. 


금방이라도 양팔을 붙잡힌 채 질질 끌려나가야만 할 것 같았고 

내 머릿속에 벌 한마리가 들어온것처럼, 

웽웽... 울리기만 했다.    


그런데 담당피디의 표정은 '절망'하는 나와 달리, 

'왜 이런 일이? 너무너무너무 귀찮아' 였다.  


부서 부장피디는 아련아련한 눈망울로 내 어깨를 톡톡 두들기며

'힘내!' 라고 하셨다. 


그게 전부였다. 


'우린 잘못이 없고, 모두 다 너의 잘못. 

자. 그럼 책임을 져야 하겠지?'  


마치 이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한 줄기 희망(?)은, 

국장님의 한마디였다. 


'작가가 청취자와 주고받은 문자가 남아있고, 

 보니까 당사자도 잘 듣겠다면서 답장을 했구만. 

 홈페이지 상에도 평일과 주말 선물이 다르다는 안내가 돼 있고, 

 아무 문제 없는 상황!! 

 우리도 이런 얘길 하면서 다시 방통위에

 수습 잘 하겠다는 내용으로 작성해서 보내면 될 듯' 


국장님은 대충 수습하면 안되는 상황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 사건은 라디오국 전체로 일파만파 퍼져나가 

내가 모르던 작가들까지 와서 기운 내라며, 

세상에 별 일도 다 있다며 위로를 건네곤 했다. 


'내가 책임지고 그만둬야 하나...'  

라고 몇날 며칠 고민하고 또 고민했는데, 

'너의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는 다른 작가들 덕분에 

정말 힘이 났고, 이럴 수록 당당해야겠다. 

피식-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잘 넘겨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담당피디는 달랐다. 

수습을 하려면 작성해야 할 문서들이 한두장이 아니란거다. 

청취자와 통화를 해서 상황설명을 해야하고, 

방통위에 보내야 하는 문서는 이번 한번으로 끝날 게 아니라고 했다. 

결론은 '정말 귀찮다' 였다. 


"그냥 이 사람이 원하는대로 상품권 두 배로 주고 끝내자.

 그게 제일 깔끔해!" 


 



피디 앞에선 '네...'라고 마지못해 답했지만, 

뒤에선 왜 이렇게 눈물이 났는가 모르겠다. 


허무하고, 허탈하고.

서운하고, 서럽고. 


누구에게 이런 감정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용기도 없어서 더 비참했던 그 때. 


나는 또, 복권을 샀다. 


TMI 하나>>> 

몇년 후, 

우연한 기회로 같이 일하던 작가언니와 

귀찮아 귀찮아 했던 그 피디와 셋이서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3시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술자리였지만,  

그날 참 많은 말들이 오고갔던 것 같다. 


그 중에 하나가, 

방통위 사건(?)이었다. 


작가언니는 그 때 나는 너를 몰랐는데, 

그 사건을 듣고 너무 속상해서 너를 찾아갔어. 라고 했다. 

기억이 난다. 

가장 먼저 '괜찮아요?' 라며 나를 살펴주던 언니. 


그 순간이 떠올려 눈물이 아롱아롱 맺히려던 그 때.

언니는 생맥주잔을 쾅! 내려치며 

귀차니즘 피디를 향해, 눈을 찌르듯 손가락 하나를 쭉 내밀며

이렇게 말을 했다. 


"그 때! 그렇게 하면 안됐던 거야!! 

 신경쓸 게 많다 해도, 제일 먼저! '괜찮냐고' 물어봐야지! 

 그리고 담당피디가 그 때 막내작가였던 얘한테!!

 '걱정말라고', '나만 믿으라고', '같이 잘 대처해보자고' 그래야 하는 거 아냐? 

 얘한테 혼자 다 떠넘기고, 더 끝으로 몰아가면 어떡해! 

 그럼 안되지! 그러면 안되는거야~~~ 

 팀원을 나몰라라 하면 안되는 거라고..." 


원래도 멋진 언니였지만, 

정말 정말 멋진 언니구나. 새삼 또 느꼈던 그 날. 

맥주가 참 시원하고, 달다고 느꼈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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