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고기 그리고 뒷담화 #8화

남자가 좋아

by 호랑영

은유는 식당 의자에 엉덩이만 걸친 채 앞을 향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식판 위 제육볶음은 이미 차갑게 식어 기름기가 겉돌고 있었다. 그의 시선 끝엔 건너편 테이블에 등을 보이고 앉은 현수가 있었다.


‘뒷머리 라인 봐라. 어느 미용실에서 한 거지? 다운펌을 한 건가? 뒤통수 굴곡이 무슨 서양 모델 급이네. 저게 말로만 듣던 장두형인가?’


그는 손깍지를 낀 채 현수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구내식당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저 니트 브랜드를 안다고 해도 나한테는 소용없겠어. 어깨 떡 벌어진 것 봐. 내가 입으면 완전 어좁이 되겠는데? 게다가 바지는…….’


“현수 과장님!”


은유는 그의 앞에 등장한 여자를 바라보았다.


“혼자 식사하세요?”


서 대리는 자연스럽게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은유는 놀란 기색을 감추며 마주 보고 앉아있는 둘을 쳐다보았다. 현수는 귀에 꽂혀있던 에어팟을 뽑으며 말했다.


”네, 대리님은 왜 이렇게 늦게 식사하세요?“


그의 중저음 목소리가 뒤편에 앉은 은유의 귀에까지 선명하게 들렸다.


”커피 마시고 왔어요!“


“보통 커피는 식사하고 마시지 않아요?”


“오늘 한 팀장님이랑 커피 약속이 있었는데, 오전에 너~무 바빠서 못 갔거든요. 그래서 점심시간 되자마자 같이 다녀왔어요.”


“한 팀장님은 잘 계시죠? 요새 못 뵌 지 오래됐네요.”


“그럼요~ 여전히 말이 하나도 없으세요!”


은유는 상체를 앞으로 쭉 빼고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겉보기엔 시답잖은 일상 대화 같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꽤나 두터운 친분과 편안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국그릇에 코가 빠질 듯 기울어졌던 은유의 탐색전은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등장으로 중단됐다.


“야, 밥도 안 먹고 뭐 해.“


맞은편에서 시야를 가리며 누군가 앉았다. 형식이었다. 그의 손에는 샐러드가 들려 있었다. 은유는 입술 안쪽을 씹었다. 더 잘 듣고 싶었는데, 형식의 어깨가 그 모든 통로를 막았다.


”아, 그냥요. 속이 좀 안 좋아서.“


”속 안 좋다는 애가 밥은 왜 받았어?“


계속되는 그의 방해에 짜증이 난 은유는 식판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야겠어요. 형 맛점해요.“


은유는 건조하게 말하고는 휙 하고 퇴식구를 향해 걸어갔다.


”잔반은 한 곳에 모아야 하는데…….“


형식이 혼잣말을 하며 샐러드 뚜껑을 열었다.


”아이씨, 오이 빼 달라니까 또 넣었네!“


은유는 식판을 반납하고 최대한 느린 걸음으로 출구를 향했다. 여전히 대화에 한창인 서 대리와 현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한 팀장과 있을 때 못지않게 친근해 보였지만, 묘하게 결이 달랐다. 서 대리와 한 팀장 사이에 흐르던 미묘한 긴장감과는 다른, 담백한 그림.


‘잘 어울리네.’


그는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흠칫 놀라면서도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잘생기고 체격 좋은 남자와 예쁘고 사교성 좋은 여자를 붙여 놓으니 정말이지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


시스템운영부 전산팀 김금강 대리

머리는 감고 왔어?

너 진짜 그 머리는 아니었다야


경영지원부 경영지원팀 표은유 대리

그 길로 바로 나가서 샤워 한 판 때리고 왔지

그래서 그 과장은 누구야?

최현수 과장


시스템운영부 전산팀 김금강 대리

인사팀 최현수 과장 몰라?

너도 진짜 답답하다야

우리 회사 최고 미남!

일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몸도 좋고 능력도 좋고

근데 성격이 싸가지 없어서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야


경영지원부 경영지원팀 표은유 대리

그런 사람이 우리 회사에 있었어?

나 왜 전혀 몰랐지


시스템운영부 전산팀 김금강 대리

그래서 니가 답답한 거야

물론 얼마 전에 휴직에서 복귀해서 잘 모를 수도 있겠다야


경영지원부 경영지원팀 표은유 대리

휴직?


시스템운영부 전산팀 김금강 대리

그래, 휴직


경영지원부 경영지원팀 표은유 대리

무슨 일로 휴직을 했대?


시스템운영부 전산팀 김금강 대리

그건 나도 잘 모른다야

그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은유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금강의 다음 메시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대화창에는 ‘입력 중’ 표시조차 뜨지 않았다. 애간장이 탄 은유는 의자에서 허리를 곧추세우며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경영지원부 경영지원팀 표은유 대리

아 무슨 소문!


시스템운영부 전산팀 김금강 대리

맨입으로?

커피라도 사라 야


‘쪼잔한 자식’


은유는 속으로 씹으며 답장을 했다.


경영지원부 경영지원팀 표은유 대리

아, 알았어 이따가 살 테니까 얼른 말해봐


시스템운영부 전산팀 김금강 대리

매독 걸렸었다더라야


은유는 ‘매독’이라는 두 글자에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


경영지원부 경영지원팀 표은유 대리

매독?

그거 성병 아니야?


시스템운영부 전산팀 김금강 대리

맞아, 성병

그래서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야

본인 말로는 전신 피부 발진 때문이라고 하는데

알만한 사람들은 매독 때문이라는 걸 다 안다고 하더라야


경영지원부 경영지원팀 표은유 대리

와... 대박

엄청 문란한가 보네?

매독 걸릴 정도면 여자를 막 만나고 다니나 봐


시스템운영부 전산팀 김금강 대리

그게...

여자가 아니라 남자를 만났다는 게 문제다야


은유는 금강의 메시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남자?’


자신이 본 것이 맞는지 그는 눈을 한번 비비고 다시 대화창을 살폈다. 불행히도 그가 제대로 본 것이 맞았다. 마치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금강이 연이어 메시지를 보냈다.


시스템운영부 전산팀 김금강 대리

남자 맞다야

그 과장, 게이라는 소문이 있다야


경영지원부 경영지원팀 표은유 대리

게이?

아니 아까 점심에 봤을 때에는 서 대리하고 대화 잘하고 있던데...


시스템운영부 전산팀 김금강 대리

야, 게이는 여자랑 대화도 안 하냐?

아무튼 너 조심해라야 괜히 그 과장 눈에 들어서 좋을 거 없다야


경영지원부 경영지원팀 표은유 대리

어, 어어...


은유는 찜찜한 기분으로 점심시간을 회상했다. 마주 보고 앉아있던 두 사람. 자연스러운 대화와 거리낌 없는 태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보고도 두 사람이 이성적인 ‘썸’ 관계일 것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였나?’ 서 대리가 한 팀장과 같이 있을 때 느껴지던 텐션과는 분명 달랐다.


‘최현수 과장이 게이?’


은유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외적으로 완벽하고 업무에 있어서도 프로페셔널한, 닮고 싶은 직원이라 잠시 생각했던 그가 게이라는 소리를 듣자 마음이 이상했다. 과연 그를 따라 해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괜히 따라 했다가 나까지 게이 소리 듣는 거 아니야?’


은유는 모니터 구석에 띄워뒀던 최현수의 사내 프로필 사진을 황급히 껐다. 누군가 뒤에서 자신이 최현수를 관찰하고 있다는 걸 본다면, 억울한 오해를 살 것만 같았다.


경영지원부 경영지원팀 표은유 대리 나 팀장이 불러서 잠깐 다녀올게


은유는 금강에게 거짓말을 했다. 팀장은 은유를 부르지 않았다. 그는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탕비실로 향했다.


탕비실에 들어서니 긴 머리의 여자가 등을 돌린 채 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서 대리?’


은유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낀 여자가 뒤를 돌아봤다. 은유는 순간 숨을 삼켰다.


“응? 은유?”


미나가 입가에 묻은 과즙을 닦으며 반쯤 먹은 방울토마토를 내밀었다.


“이거 스테비아 토마토야. 너도 먹어볼래?”


서 대리를 기대했던 은유는 김이 팍 샜다.


“에휴, 너냐.”


“에휴라니! 누굴 생각했길래 그런 말이 나오는 거야?”


“아니다, 됐다. 근데 너 머리가 이렇게 길었던가?”


“당연하지. 내가 하루아침에 머리라도 붙였겠어?”


은유는 미나가 건넨 토마토를 거절하고 통에 담긴 새 방울토마토를 하나 꺼내 입에 넣었다. 스테비아 토마토의 단맛이 기분 좋게 올라왔다.


“씻어서 먹지, 그냥 먹네.”


“괜찮아. 어릴 때 흙 먹어 본 적 없어? 그거에 비하면 이 정도쯤이야.”


은유는 짐짓 센 척을 했다. 그러다 문득 최현수 과장에 대해 생각이 난 그는 미나에게 물었다.


“근데 너 최현수 과장 알아?”


“알다마다! 우리 회사에서 잘생기기로 TOP 3 중 하나잖아.”


“TOP 3? 그럼 나머지 두 명은 누구야?”


“그건 좀 의견이 갈리는데, 내 픽은 지역교육지원부 박성지 대리랑 차세대 TF가 있는 홍재훈 팀장님!”


“팀장?”


“홍재훈 팀장님 본 적 없어? 지금 TF에 계셔서 건물이 다르긴 하다만, 진짜 찐~하게 잘생기셨어. 아~ 유부남만 아니면 진짜 고백해 버렸을지도 몰라.”


미나의 눈에 초롱초롱한 하트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녀의 말은 진심이었다.


“박성지 대리는 또 누구야?”


“성지 대리님은 작년까지 여기 계시다가 고향에서 근무하고 싶다고 전근 신청해서 지금은 광주팀에 계셔. 내가 잘해보려고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고향에 여자 친구 있는지도 모르고! 지금 생각해도 화나네.”


미나는 씩씩거리며 콧김을 내뿜었다.


“그 TOP 3는 누가 정한 거야?”


“누가 정하긴. 내가 정했지~”


그녀의 말에 맥이 빠진 은유는 ‘그럼 그렇지’ 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누가 TOP 3를 뽑더라도 빠지지 않는 사람이 바로 최현수 과장님이야. 이건 불변의 진리! 과장님 냉미남처럼 생겼는데 은근 친절하게 물어보는 거 다 알려주고 대답해 주고 츤데레가 따로 없다니까. 거기다 몸은 또 얼마나 좋은지, 매일매일 헬스장 가시잖아. 그렇게 부지런하고 잘생긴 사람이 하필이면….”


미나는 순간 못할 말을 한 듯 자기의 말에 놀라 입을 다물었다. 은유는 뒷말이 무엇일지 대강 짐작하면서 미나를 떠보았다.


“하필이면 뭐?”


미나는 조용히 눈치를 살폈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지만 그녀는 더욱 목소리를 낮추며 은유의 귓가에 다가서 속삭였다.


“남자를 좋아한대.“


그녀의 말에 은유는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듯 짐짓 놀란 연기를 했다.


“진짜?”


그의 목소리에 미나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쉿’ 소리를 냈다.


“그냥 그런 소문이 있어. 입사한 지 10년이 다 되어 가는데 과장님이 여자 친구를 사귀었다는 얘기를 아무도 들은 사람이 없어서 다들 그렇게 추측해.”


“그렇구나... 하긴 뭐, 회사에 사람이 몇 명인데 그럴 수도 있지.”


은유가 쉽게 납득하자 그녀는 의아하게 물었다.


“생각보다 놀라지 않네? 알고 있었어?”


은유가 고개를 가로젓자 그녀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말했다.


“하긴, 네가 알고 있을 리가 없지. 너처럼 소문에 둔감한 둔탱이는 내가 처음 봤다. 근데 그래서 네가 좋아. 좀 편하달까?”


“사랑 고백은 사절입니다만.”


미나는 못 볼 것을 본 듯 표정을 찡그리며 말했다.


“말을 말자!”


미나는 은유를 지나쳐 탕비실을 빠져나갔다. 홀로 남겨진 은유의 머릿속은 다시 최현수로 가득 찼다. 남자를 좋아한다는 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모로는 회사 내 최고로 꼽히는 남자.


‘닮고 싶지만, 가까이하기는 싫어.’


이중적인 감정이 은유를 괴롭혔다. 셈이 복잡해진 은유는 토마토 하나를 더 입에 물고 터덜터덜 탕비실을 나섰다. 입안에 퍼지는 단맛이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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